코로나19와 삶

박점규 “밑바닥 사람부터 허문다”

2020.04.24 19:01 입력 2020.04.25 00:16 수정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매주 책 한 권 분량의 갑질 제보를 읽는다. 지난 10일 그는 곳곳이 형광펜으로 그어진 인쇄물을 들고 인터뷰 장소로 나왔다. 매일 90~100건이 들어온다고 했다. 3월 한 달 제보 3410건 중 1219건(37%)이 코로나19 관련 제보다. 제보 묶음을 두고 “제가 만나는 세상이다. 가장 생생한 세상”이라고 했다. 제보를 읽는 게 힘겹다는 그는 코로나19가 밑바닥 사람부터 허문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제보는 하루 어느 정도 들어오나.

“매일 90~100건 들어온다. 다양하다. 월급 떼였다, 휴가 못 쓰게 했다, 해고당했다가 있고

이메일 들어오면 1주일에 한번 프린트해서 회의한다. 용기를 내서 자기가 어떻게 사는지를 이야기하는 분들의 사례가 1주일에 책한권 분량씩 들어와요. 매주 책 한권 읽는 거다. 제가 만나는 세상이다. 가장 생생한 세상이다.”

- 코로나 갑질 제보가 늘었는데.

“2월 말부터 들어와 늘어났다. 3월 한달 제보 3410건 중 1219건이 코로나 제보다. 37%다.. 직장갑질이 절반까지 올라갔다. 법이 생기니까 그랬는데, 지금은 코로나 제보가 37%다. 나머지는 괴롭힘 등등이다.”

-읽기 힘들 듯하다.

“행복한 시간이 당연히 아니다. 이메일 팀이 같이 읽는데, 제보에 다라, 언론에 연결하거나 노동부에 근로감독을 요구하거, 심리상담 도움을 해주려고 한다. 하나하나 읽으면서 도울 방법을 분석한다. 제보자의 문제를 실제 해결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분석한다. 모든 사람들이 갖가지 사연을 쏟아낸다. 시장에 나간 느낌이다. (사연이) 너무 생생해서 그렇다. 2년 반 넘게 제보를 읽고 분석했는데, 이런 일도 당할 수 있구나 할 때가 있다. 오늘 본 것 중 제일 속상한 건 인천공항면세점 일하는 분 사연이다. 월급이 삼십 몇만원 들어왔더라고 하더라. 통장이 마이너스가 된 거다. 회사에선 권고사직 하라고 한다.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그걸 읽다가 가슴이 먹 해졌다. 부부가 같이 키우면 둘 중 하나 해고당해도 하나는 버틸 수 있는데, 혼자 키운 사람에게 닥친 재앙이 너무 커보였다. 코로나19가 왜 밑바닥 사람부터 허무는지를 이 분 이야기가 가장 보여주는 것 같다. 팀원 모두가 이 사연을 읽다가 우울했다. 다들 한동안 가만 있었다. 코로나 제보 받은 지 한달 넘었는데, 정부 대책은 태풍 몰아치는데 비닐 우산 나눠주는 꼴이다. 위기에 빠진 사람은, 물에 빠져 있는데, 건질 생각은 하지 않고, 대한민국이 잘 하고 있다는 식만 이야기가 하고 있고….”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이 지난 3월 31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영종도ㆍ항공산업부터 해고금지 도입 인천 중구 고용위기지역지정 촉구 기자회견’을 주최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이 지난 3월 31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영종도ㆍ항공산업부터 해고금지 도입 인천 중구 고용위기지역지정 촉구 기자회견’을 주최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정부 정책은.

“3월1일 첫 코로나 갑질 보도자료 내면서, 특별고용 지원업종을 전 사업으로 확대하라고 했다. 항공운수쪽 위기가 닥친 건 맞는데, 항공은 대한항공 밖에 없다. 하청은 다 인력 파견업이다. 항공업이 아니다. 파견업쪽 사람들이 지금 다 해고되고 있다. 거기가 아니면 뭐가 특별고용지원 업종인가, 현실을 아는가. 하청업은 기타업으로 등록한다. 무슨 특별한 업종으로 등록하겠나. 그때는 75% 주는 거, 그걸 확대하라고 했고. 25% 하청업체한테 물라는 건데, 어느 하청이 할 수 있겠나, 2주 지나니까 정부가 받았다. 특별고용 지원업종 확대했다. 두 번째 낸 보도자료에서 권고사직 문제를 짚었다. 채용과 해고 수시로 반복하기 때문에 고용유지 지원 대상이 안 되는 문제를 따지며 개인에게 직접 주라고 했다. 특수고용 노동자는 사각지대다. 고용보험 없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4주에 걸쳐 각각 이야기했는데, 일부는 수용했다. 정부는 무급휴직 50만원씩 두달, 특수고용직 50만원씩 두달 이야기했다. 정부 대책을 보니 무급 휴직자들은 아닌 개인이 청구해도 주겠다고 마지막 한 줄 써 있더라. 정부가 위기란 걸 느끼긴 한다. 조금씩 변화도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 대책이 고용보험 밖에 있는 이들을 구제할 수 없다. 언발의 오줌누기라고 썼다.”

- 근원적 해결책 있나.

“50만원씩 두달 100만원 그걸 로 살 수 없다. 제보자들은 ‘50만원 장난하냐, 나가서 실업급여 받겠다’고 한다. 월급의 70% 정도 받으니까. 권고사직 하는 게 낫다. 그 말은 곧 실업급여 정도 주면 남겠다는 거다. 평소 월 200만원 받았다면 140만원이면 버티겠다는 거다. 기업이 노동자에게 주는 이 140만원 중 90%인 126만원은 정부에서 받는다. 기업이 실제 주는 돈은 1인당 14만원이다. 그러니까 고용 유지하자는 것이다. 정부 돈으로 1인당 126만원 주는 거 아닌가. 그 돈을 무급휴직자, 특수고용직이나, 고용보험 밖 사람들에게 주라는 게 우리 요구다. 50만원 생색내듯 주고 끝내려는 듯 해 걱정된다. 정부 변화가 없는 건 아니지만, 미약하다. 지금 코로나 대책의 모순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게 고용유지 제도다. 지원금 얼마 안 되고, 정규직 일부만 대상이다. 인천 공항업계 일하는 사람이 8만4000명 정도다. 이중 9개 항공사 일하는 사람은 4000명 정도 밖에 안된다. 나머지 8만명 고용유지 지원금 받아서 유급 휴직하는 사람이 몇 명 되겠나. 그 8만여명의 사람이 다 유령인가. 그 사람들이 고용보험 안으로 들어오고, 누구나 실업급여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액 소득자, 자본 소득자, 임대 소득자나 재벌 책임도 물어야 한다. 코로나는 폭풍우가 밀려오는데 아래에서 쓸려나가는 사람들 방어하는 게 더 먼저 할 일이다. 50만원, 재난지원금받고 다 쓰면 모두 어디로 쓸려나가겠나. 자영업자 되면 노동자를 공격하듯, 못 사는 사람들끼리 싸우게 만드는 구조가 강화된다.”

-해고 상황은 어떻게 될 듯한가.

“IMF 버금가는 해고대란으로 가는 과정이다. 초기에 물에 빠지는 사람 건지지 못하면, 막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 미증유의 사태고, 미증유의 돈을 쏟아 붓고 있는데, 기업에 100조가 들어가면, 고용유지를 전제해야 한다. 일자리 유지가 가장 중요하다. 700만명이 고용보험 밖에 있다. 이 수치엔 특수고용직이 빠져 있다. 그거 포함하면 1000만명 될 것이다. 고용보험 안에 있더라도 계약직은 해지된다. 파견직은 고용유지 지원금이 소용 없다. 밑바닥 사람들, 노동자들 위한 전면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 근거는.

“2월만 해도 제보 중에 경제가 어려워서 나간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2월말부터 여행, 항공, 숙박 이런 데서 해고가 나왔다. 3월 중순부턴 서비스업, 제조업으로 늘었다. 일반 사무직 노동자도 제보한다. 실물 위기가 확대되는 거다. 전반적 소비위축 눈앞에 다가온다. 거리두기 영향도 있다. 회사가 어려워지니, 임금삭감이나 무급휴직으로 시작해 해고로 나아가는 게 산업 전반에서 확산되는 게 보인다. 3월 말 낸 자료 제목이 ‘코로나 해고대란으로 가고 있다’였다. 그 해고대란의 축소판이 인천공항이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 김영민 기자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 김영민 기자

- 직장갑질 활동 계획은.

“새로운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다. ‘처음부터 신고하기’, ‘아프면 쉬기’, ‘코로나는 멀리, 직원은 곁에 두기’, ‘누구나 4대 보험’이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은 포괄영역이 넓다. 건강보험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미국보단 적다. 나머지 3개 보험은 극명하게 드러난다. 명확한 근로계약 관계가 있는 사람, 일은 똑같이 하는데 근로계약을 안 쓰는 사람들, 프리랜서라고 하는 노동법 밖 노동자 등등 고용보험 밖 노동자를 양산해왔다. 최근 다시 플랫폼 노동으로 ‘법적 근로자’인데 ‘법적 근로자’가 아닌 유령을 만든 사회가 지난 20년간 이어졌다. 이 법과 제도 밖 노동자들을 노동자로 들이는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4대 캠페인은 죽을 때까지 일하는 시대가 아니라, 아프면 쉬고, 쉴 때 그 비용은 국가가 내는 시대를 끌어내자는 것이다. OECD 국가 대부분이 시행하는 제도다. 지금 기존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될지 모른다. 캠페인은 우리 사회가 고속 성장해 더 많이 벌어 더 소비하던 패러다임, 서로 더 경쟁하고 독점하려던 사회를 바꾸자는 것이다. 국민이 이 시기 국가에 협력했다. 전 세계에서 자동차 공장이 돌아가는 데가 한국과 중국 밖에 없다. 그건 현대기아차, 노동자들이 잘 (협력)해서 그런 것이다. 많은 노동자들이 거리두기 등 협력하고 있다. 우리는 사회적, 유기적으로 연동돼 있다. 코로나는 협력하고 공생할수록, 우리가, 사회가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는 점을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천천히 걷고, 조금 덜 벌더라도, 안전과 안정을 삶의 지향점으로 바꿔야 할 때다.”

※경향신문은 비정규직·이주·문화예술 노동자, 장애인·노숙인 지원 단체 활동가 6명을 만나 코로나19와 삶, 투쟁에 관해 물었다. 운동가이자 당사자인 이들에게서 어떻게 사는지, 무엇을 하며 살지도 들었다. 보건 전문가, 인문학자 의견도 들었다. 24~25일 [코로나19와 삶 연속인터뷰]를 연재한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