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가 더 두려워…거리에서 방진복 입고 ‘절규’합니다

2020.04.25 06:00 입력 2020.04.25 11:16 수정

[커버스토리]해고가 더 두려워…거리에서 방진복 입고 ‘절규’합니다

비정규직·이주·문화예술 노동자
장애인·노숙인 단체의 활동가 등
‘모범 방역’ 그림자에 가려진 삶들
그들에게 ‘안녕한가요?’ 물었다

김수억(전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장·‘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소집권자)은 지난해 7~9월 사내하청 노동자 직접고용과 현대기아차 불법파견 처벌을 촉구하며 47일간 단식했다. 세 번째 단식투쟁이었다. 건강부터 물었다. “살아 있으니까…. 먹고, 이야기도 하고….” 2005년 비정규직 투쟁을 시작한 뒤 그의 삶은 투쟁, 단식, 해고, 구속, 투옥으로 이어졌다. 2009년 불법파업 혐의로 기소돼 2년6월 실형을 선고(수원지방법원)받고 법정 구속됐다. 직전 선고에서 강간 전과 3범이 자신과 같은 2년6월을 받은 일을 떠올리며 말했다. “성범죄와 재벌 불법엔 관대한 대한민국이니까요.”

코로나19로 연기된 재판이 재개되면 다시 감옥으로 갈지 모른다. 김수억은 문재인 정부 들어 10건의 재판을 받는다. 9건은 경찰이 국회와 청와대, 대검찰청, 국회와 노동청 앞 투쟁에 대해 집시법 위반 등으로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들이다. 2018년 파업으로 김수억을 포함한 노조 간부 7명에겐 10억800만원의 손해배상까지 청구됐다. 불법파견을 처벌하라고 벌인 파업이었다.

코로나19로 집회가 금지된 상황에서 김수억은 또 한번의 구속을 각오한다. 비정규직 이제그만은 5월1일 노동절 ‘해고를 금지하라! 악 소리도 못 내는 비정규직 긴급행동’을 진행한다. 김수억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악’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소리소문 없이 잘려나간다.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도 크지만 당장 해고되거나 휴업수당, 실업급여도 없이 살아가야 하는 고통의 두려움은 더 크다”고 했다.

마스크와 방진복을 착용하고 2m씩 거리를 둔 채 청와대로 행진한다. 김수억은 “왜 방진복까지 입고 거리로 나서는지 정부가 절박한 당사자들 요구에 귀 기울이고 생계 대책을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김수억도 실형을 선고받고 해고됐다. 출소 뒤 5년 동안 해고 상태로 지냈다. 그는 “부모님께서 연세가 많다. 여동생이 투병 중인데 해고돼 감옥에 있을 때 가족 생계나 치료비 문제가 갑갑했다. 누나 혼자 감당해야 했다. 조합원들이 한 푼 두 푼 모아 후원해주신 걸로 생계를 이어갔다”고 했다. 그는 “동료 윤주형은 해고 3년 뒤 세상을 떠났다. 다른 동료는 15년째 해고 상태다. 해고는 죽음이다. 가정이 파괴된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특수고용노동자 등에게 월 50만원씩 3개월간 지원하는 대책을 지난 22일 내놓았다. 김수억은 “통계청자료를 보면, 임금노동자 2056만명 중 고용보험 가입자는 1380만명으로 680만명이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 4대보험을 적용받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 220만명도 지원 대상에서 배제된다”고 했다. 정부 지원 대상은 93만여명이다. 이탈리아 등에서 시행 중인 한시적 해고금지 같은 대책은 빠졌다. 그는 “일시 지원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 달에 50만원 가지고 살 수 있나 묻고 싶다”고 말했다.

‘모범 방역’ ‘영웅 만들기’ 분위기에서 근본 대책을 마련하라는 노동자들의 요구는 뒷전으로 밀린다. ‘모든 해고금지’ ‘휴업·실업수당 지급’ ‘4대보험 적용’ ‘상병수당 보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코로나19 이후 새로 꺼내 든 요구가 아니다. 상병수당은 국민건강보험법 50조에 시행 근거가 마련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의무화를 권고한 게 2006년이다. ‘예술인 고용보험 제도(한국형 앵테르미탕) 도입’은 대통령 공약사항이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가 장애인 격리 때 지침 등을 담은 ‘감염병 위기관리 표준매뉴얼 작성 및 운영’ 마련을 요구하는 장애인차별구제 소송을 낸 게 2016년이다. 당시 정부는 법원의 강제조정안을 거부했다.

비정규직·이주·문화예술 노동자, 장애인·노숙인 지원 단체 활동가 6명을 만나 코로나19와 삶, 투쟁에 관해 물었다. 운동가이자 당사자인 이들에게 어떻게 사는지, 무엇을 하며 살지에 대해서도 들었다.

◆비정규직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 묻자 답했다 “어떻게 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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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억과는 지난 14일 만났다. 22일 추가로 e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자 김수억은 “어떻게 살란 말인가”라고 답했다. 당장은 해고금지가 살길이라고 했다. “무급휴직을 강요받고 해고가 남발되지만 그야말로 악 소리도 내지 못하고 길거리로 내몰린다. 노조가 없는 대다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비빌 언덕조차 없다.”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회장 김수억

코로나 끝난다고 해고도 끝날까
또 노동자에게만 고통 분담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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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기존 한국 현실과 모순은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3개월 동안 230여명이 죽었다. 매달 전염병으로 200여명이 죽어난다면, 과연 사회가 침묵할 수 있을까. 한 해 2400명, 매달 200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산업재해로 죽어가는데도 대한민국은 조용하다”고 했다. 그는 산재 사망자 명단을 전면에 실은 ‘오늘도 3명이 퇴근하지 못했다’(경향신문 2019년 11월21일 1면 보도)와 작가 김훈의 기고 ‘죽음의 자리로 또 밥벌이 간다’(경향신문 11월25일자 1면 보도)를 두 달 동안 가지고 다녔다고 했다. 그는 “일하다 죽지 않게 해달라는, 이윤보다 생명이 우선이라는 상식적인 요구가 실현될 수 있도록 모든 이들이 함께 나서야 한다”고 했다.

김수억은 코로나19가 진정돼도 원래 생활로 돌아가지 못하리라 본다. 1997년 외환위기를 떠올리며 말했다. “나랏돈은 기업에만 퍼주고 정리해고제와 파견법이 통과되면서 대량해고 사태가 벌어지고, 1100만 비정규직이 양산됐다. 고통은 노동자들에게만 전가됐다.” 고통분담이 고통전가, 고통전담으로 이어지는 과거가 되풀이될까봐 걱정한다. 이런 걱정을 하는 데는 근거가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달 23일 경제·노동 분야 40대 입법 과제를 국회에 제출했다. 경영상 해고 요건 완화, 점거 형태의 쟁의행위 금지를 요구했다. 근로시간 위반이나 파견법 위반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폐지도 과제로 냈다. 그는 정부가 재벌 편에 서리라고 본다. “코로나19가 진정되면 해고도 끝날까요?”

■직장갑질 119 운영위원 박점규

30여만원 월급 받은 비정규직
밑바닥 사람부터 허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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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만나는 세상이다. 가장 생생한 세상이다.” 박점규(직장갑질119 운영위원)는 매주 책 한 권 분량의 갑질 제보를 읽는다. 지난 10일 그는 곳곳이 형광펜으로 그어진 인쇄물을 들고 인터뷰 장소로 나왔다. 매일 90~100건이 들어온다고 했다. 그는 “시장에 나간 느낌이다. (사연이) 너무 생생해서 그렇다”고 했다. 3월 한 달 제보 3410건 중 1219건(37%)이 코로나19 관련 제보다.

제보를 읽는 건 힘겹다. “2년 반 넘게 제보를 읽고 분석했는데, 이런 일도 당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 사례도 나왔다”며 인천공항면세점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사연을 전했다. “월급이 삼십 몇만원 들어왔다고 하더라. 통장이 마이너스가 됐다. 회사에선 권고사직하라고 한다.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그걸 읽다가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는 코로나19가 밑바닥 사람부터 허문다고 했다.

정부 대책은 “태풍 몰아치는데 비닐우산 나눠주는 꼴”이다. “제보자들은 ‘50만원을 준다고? 장난하나, 나가서 실업급여 받겠다’고 한다. 그 말은 곧 실업급여 정도 주면 남겠다는 거다. 평소 월 200만원을 받았다면 140만원이면 버티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자에게 주는 140만원 중 90%인 126만원은 정부에서 받는다. 기업이 내는 돈은 1인당 14만원이다. 박점규는 “(실업급여에 해당하는 돈을) 무급휴직자, 특수고용직이나 고용보험 밖 사람들에게 주라는 게 우리 요구다. 정부 변화가 없는 건 아니지만, 미약하다. 대한민국이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나 하고 있고….”

직장갑질119는 ‘무급휴직 신고하기’ ‘아프면 쉬기’ ‘코로나는 거리 두기, 직원은 곁에 두기’ ‘누구나 4대 보험’ 캠페인을 계획하고 있다. 그는 “4대 캠페인은 죽을 때까지 일하는 시대가 아니라, 아프면 쉬고, 쉴 때 그 비용은 국가가 내는 시대를 끌어내자는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는 협력하고 공생할수록 우리가, 사회가 위험에서 안전할 수 있다는 점을 배우게 했다. 천천히 걷고, 조금 덜 벌더라도, 안전과 고용안정을 삶의 지향점으로 바꿔야 할 때다.”

■성서공단노조위원장 김희정

이주노동자 미지급 월급 문의에
“한국 사람이면서 누구 편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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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들도 코로나19 대책의 사각지대에 놓였다. “3월 말 노조로 마스크를 받으러온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 ‘한국인들은 왔다갔다 하는데, 사장이 우리한텐 CCTV로 보고 있으니 공장과 기숙사 바깥에 나가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김희정(대구 성서공단노조 위원장)은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이런 취급과 대접을 받았다”고 했다.

초기엔 코로나19 관련 정보가 중국어로만 번역됐다. 5부제 시행 이후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마스크를 구할 수 없었다. 등록 노동자들도 마스크 구할 시간을 내기 힘들었다. 김희정은 “(정보 부재와 고립 등으로) 불안감이 커졌다. 한국에서 나를 지켜주는 세력이 아무도 없다는 데서 오는 공포감도 크다.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귀국을 서두르는 친구들이 생겼다. 이미 많은 이들이 돌아갔다”고 했다.

이주노동자 상담센터를 운영하는 성서공단노조는 이주노동자들의 미지급 월급과 퇴직금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 “퇴직금이나 임금을 달라고 하면, 한국인 사장들이 ‘당신 한국 사람 아냐? 누구 편을 들어’ 이런다. 모든 한국 사람이 그렇지 않겠지만, 맘속에 이주민 차별, 배제가 깔려 있지 않나.”

이주노동자들은 재난기금 대책 대상에서 빠졌다. 김희정은 “150만명의 외국인 노동자, 결혼 이주여성 등을 포함하면 250만명이다. 이주노동자들이 없으면 공장 안 돌아가는 데가 많다. 유럽 같은 경우 외국인도 주지 않나. 한국은 왜 이럴까. (이주노동자들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는 실업수당과 생계비는 보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코로나19 초기 사각지대와 빈틈을 메운 건 시민사회와 주민들이다. 노조는 전국에서 마스크 2만5000장을 지원받았다고 한다. 한 지역 주민은 코로나19 초기 마스크를 구하기 힘들 때 몇 시간을 기다려 산 12장을 보냈다. 서울대병원 간호사 4명도 20장을 모아 전했다.

몇몇 주민들은 일요일이면 노조로 와 이주노동자들에게 보낼 마스크를 함께 포장했다. 한 경북대 4학년 학생은 소독제 200㎖ 40통을 만들어 전달했다. 다들 알아서 물품을 보냈다.

노조는 자발적 후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마스크 나눔에 들어갔다.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보내달라고 공지했다.

김희정은 “다만 이주노동자들을 동정하는 마음으로 보내지는 마라, 권리에서 배제된 노동자로 인식하고 보내주면 좋겠다고 알렸다”고 했다. 노조는 강제추방 위험이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직접 찾아 마스크를 나눴다.

노조는 26일 이주노동자 집회를 연다.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속에 연대와 투쟁의 끈을 이어가는 듯했다. “대우전자가 대유로 넘어갔는데 거기 비정규직 노조 분들이 만든 구호가 ‘코로나도 무섭지만, 비정규직이 더 무섭다’이다. 코로나로 죽게 생겼는데, 사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하는 생각도 든다.”

김희정은 코로나19 이후 노동자가 존중받고,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는 사회가 오길 바란다. 그는 기존 정당에 의존하기보다는 변혁운동이 필요하다고 했다. “소수정당들이 민주당과 차별성이 별로 없어서 표를 못 받았다. 정의당이 비정규직 철폐, 무상의료, 무상교육 같은 노동자들 요구를 전면에 확 걸고 나갔어야 한다. 민중당도 마찬가지다. 총선에 비정규직 철폐를 내건 당은 노동당뿐”이라며 성서공단의 주축은 이주노동자, 여성노동자, 고령노동자라고 한다. “이 노동자들이 만든 부품이 없으면 엔진도, 자동차도 안 굴러가지 않나. 이런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시인·다울협동조합 대표 조기현

일할 곳도 갈 곳도 없는 노숙인
이들에 삶을 묻는 것 자체가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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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현(시인·다울협동조합 대표)은 대구에서 노숙인들에게 도시락 나눔을 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때 대구에 있으면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코로나19 때는 뭐라도 하자, 저 사람들 굶어죽게 놔둘 수는 없지 않나 생각했다.” 조합 예산으로 무작정 시작했다. 다울은 ‘너도 나도 다 우리다’라는 뜻이다. 가난한 동료 시인들이 십시일반 돈을 보냈다. 코로나19로 폐업위기에 빠진 몇몇 마을기업도 동참했다.

조기현이 전한 대구 사정은 암울하다. “전쟁도 아마 이것보다는 더 심각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거의 초토화했다. 식당은 문 닫고, 거리엔 사람이 없다. 생산할 거라곤 아무것도 없으니 노숙인들이 일 못 나가는 것도 당연하다.” 그는 노숙인들이 저성과자라는 이유로, 아프다는 이유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고용 기회가 박탈당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조기현은 “망치를 놓는 순간 빈민으로 전락한다”고 말했다.

대구 노숙인들은 거동이 불편한 이들을 빼곤 건설 일용직이나 청과시장 하역 일용직으로 일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샤워장을 둔 만화방이나 찜질방으로 갔다. 코로나19 이후 일감이 끊기자 지하도로 내려갔다. 조기현은 “이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지 묻는 거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노숙인 수는 증가했다. 다울은 코로나19 초기 다울은 하루 도시락 100~120개를 준비했다. 이후 대구노숙인지원센터도 도시락 나눔에 참여했다. 최근엔 도시락 수가 60~70개 늘어났다고 한다.

조기현 개인에게도 큰 위기다. 마을목수학교는 7주간 중단했다가 4월 중순에 다시 열었다. “직원이 6명이다. 나야 노동운동을 했으니까, 체불은 못한다. 계속 월급 주고, 월세 주다 보니까 3000만원 손실이 생겼다. 생산으로 이윤, 수입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그는 대구 가난한 동네 상인들이 보증금을 까먹으며 산다고 했다.

조기현은 코로나19 이후를 두고 비관한다. “회복 기미가 안 보이면 고통은 더 심해질 것 같다”고 했다. “노숙인들은 생명에 대한 질긴 의지 같은 것을 갖고 있다. 그런데 노숙인이 아닌 사람들 중에선 자살하는 이들도 나오지 않나. 코로나 희생이 비관 자살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다.”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위원장 정윤희

3개월간 30만원 벌이가 전부
예술인 복지, 재난 때 더 취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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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위원장)는 최근 3개월간 번 돈이 30만원가량이라고 했다. 시각예술가인 그는 원래 수입이 일정치 않았다.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일엔 활동비도 없다. 공연도, 전시도 멈췄다. “긴급 상황이다. 공연하는 분들, 기초예술하는 분들이 특히 피해를 본다. 외국에선 여러 예술가들이 (자가격리 중) 베란다에서 공연하며 즐겁게 보내기도 하지만 생계 자체가 긴급하고 어려운 분들은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문화예술인 복지제도는 재난상황에서 더 힘을 못 쓴다. “예술인복지재단이 하는 건 대출 정도다. 긴급 상황에서 이 제도는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문화예술 노동자들이 오랫동안 요구해온 예술인의 고용보험 가입을 골자로 하는 고용보험법 개정안도 통과되지 못했다.

문화예술 노동자들을 베짱이로 보는 시선은 여전하다. 정윤희는 “백수로 보는 이도 있다. 절박한 사정을 모르니 예술가들을 왜 지원해야 하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최고은 작가처럼 누가 죽을 때만 예술인 복지 대책을 하나씩 내놓았다”고 했다.

정윤희는 문화예술은 공유재이고, 문화예술인은 시민이라고 여긴다. 관료들이 시민공동체 일원으로 보질 않는다고 했다. “사회적(물리적) 거리 두기 하면서, 서울시에서 소극장에 공문을 보냈다. 좌석 간 2m 거리를 두지 않으면 300만원의 벌금을 물리겠다고 했다. 공동체 일원으로 매일 자리 소독하고, 관객에게 마스크 주려고 노력하는데, ‘안 하면 벌금 300만원’이라고 협박식으로 한다. 관료들의 행정 갑질이다.” 임대료 지원은 곧 건물주한테로 간다.

정윤희는 창작 행위가 좌절돼 고통스럽다고 했다. 전태일 열사 50주기인 올해 전국 전시 계획도 멈췄다.

그는 “미술 작품을 온라인에 전시하는 방식이 타당한지 의문을 갖고 있다. 어떻게 창작을 이어갈지 고민이 크다”고 했다.

◆활동가들에만 의지한 무대책 공백…“장애인은 언제나 비상사태”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노동의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점에서 장애인은 언제나 비상사태였다. 장애인단체가 메르스 이후 요구한 장애인 격리 시 매뉴얼 마련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장애인 차별 문제는 여전히 곳곳에서 드러난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가 지난 20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시각장애인인 김예지 국회의원 당선인의 안내견 출입 문제를 두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국회가 출입 여부를 검토하는 것 자체가 장애인 차별이라고 했다. 김창길 기자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노동의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점에서 장애인은 언제나 비상사태였다. 장애인단체가 메르스 이후 요구한 장애인 격리 시 매뉴얼 마련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장애인 차별 문제는 여전히 곳곳에서 드러난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가 지난 20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시각장애인인 김예지 국회의원 당선인의 안내견 출입 문제를 두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국회가 출입 여부를 검토하는 것 자체가 장애인 차별이라고 했다. 김창길 기자

정윤희는 코로나19가 예술가들이 창작을 이어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 자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고 했다. “예전에는 그냥 어려운 대로 버텼다.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부분에서 기본소득 이야기가 제일 많이 나온다. 그런 조건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해야 한다.” 그간 노동 측면에서 사회적으로 잘 보이지 않았던, 예술가들을 드러내야 한다고도 했다. “피해와 고통을 공유하면서, 손 맞잡고 해결해야 한다. 코로나 이후는 연대의 삶, 공동의 삶이 더 중요하다.”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 김도현

재난 영웅 만들기·자화자찬 대신
탈시설 등 자립 정책 본격화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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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장애인야학은 다섯개 학급 중 하루 한 학급씩만 등교하는 형태로 부분수업을 진행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교사들은 가정방문 형태의 순회교육에 들어갔다. 야학에서 직접 만든 반찬도 배달했다. 야학은 최옥란 열사가 사망한 3월26일부터 노동절인 5월1일까지 매년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을 해왔다. 올해는 물리적 거리 두기 때문에 모이지 못했다. 지난 20일 2m 정도의 거리 두기를 유지한 채 거리행진과 집회, 장애해방열사 합동 추모제만 진행했다.

장애인들은 거리 두기로 일종의 반자가격리 상황에 놓였다. 야학교사이자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인 김도현은 “지역사회에서 사회서비스 제공 기관들을 일상적으로 이용했던 분들은 어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 그 기관들이 전면 중단됐다”고 했다. 발달장애인이나 중증장애인이 있는 가정은 돌봄 부담이 더 크다. “지난달 17일 홀로 발달장애인을 돌보던 어머니가 자녀를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참사도 있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이미 고통이 누적되어 있던 가정이었을 거라 짐작한다. 설상가상으로 이번 사태가 겹치면서….”

김도현은 국가 차원에서는 이런 가정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다고 했다. 최근 온라인강의도 마찬가지다. 발달장애인 학생들에게는 온라인교육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학의 온라인강의가 길어지면서, 휴학을 선택하는 농인 대학생들도 늘어난다. 김도현은 “무언가를 ‘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적 조건이 더 강화되고 있다”고 했다. 역설적으로 소득 문제에서 느끼는 위기감은 적다. 그는 “많은 중증장애인들이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노동이나 소득 활동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했다”며 “지금은 경제활동 중단이나 침체에 따른 소득 공백이 발생하는 일종의 비상사태인데, 그런 점에서 장애인은 언제나 비상사태였다”고 말했다.

일찌감치 대책 마련을 요구한 일은 제자리걸음이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2016년에 국가를 상대로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기본계획 수립 및 시행’ ‘감염병 위기관리 표준매뉴얼 작성 및 운영’ 등을 요구하는 장애인차별구제 소송을 냈다. “5년 전 메르스 사태 때 자가격리 대상이 된 장애인에 대해 아무런 지침과 매뉴얼이 없었고,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면서 큰 고통을 겪었다. 그래서 낸 소송이다. 법원이 정당한 요구니까 매뉴얼 등을 마련하라고 강제 조정안을 냈는데도 정부가 거부했다. 그렇게 4년간 어떤 대책도 없다가 이번 사태가 터졌다.”

정부의 무대책은 코로나19 때 혼란으로 이어졌다. 정부는 자가격리 대상이 된 장애인에 대해 지방자치단체별로 마련한 격리시설로 가라고 했다. 이 시설은 장애인화장실 같은 기본 편의시설도 갖추지 않아 입소할 수 없었다. “장애인 활동지원은 자가격리 기간에는 24시간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보건복지부가 그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다. 도와 시가 협의하라고만 나와 있다. 장애인이 확진자가 되었을 때 방호복이나 추가 수당 같은 세부적 지침이 없으니 활동지원사가 잘 구해지지도 않았다.” 그 공백을 자립생활센터 활동가나 지인들이 메웠다. 김도현은 “그마저 없으면, 활동지원 없이 방치됐다”고 했다.

“대구 성보재활원에서도 장애인 확진자가 5명 나왔는데, 대구에 병상이 없는 상태에서 서울시가 받겠다해서 서울의료원으로 왔다. 복지부도 어떻게 지원을 할지 모르고 우왕좌왕하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 지원 인력 10명을 구해달라고 연락했다. 어찌 보면 황당한 상황이다.”

정부 대책은 집단시설의 ‘1인 1실 리모델링’ 수요조사였다. 장애인단체들은 정책 방향을 탈시설에 둔다. 김도현은 “장애인 시설이든, 정신요양원이든, 노인요양원이든 시설들은 생산성이 떨어진 집단을 적은 비용으로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이라며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탈시설 정책, 커뮤니티 정책을 본격화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1인 1실 리모델링 수요조사를 하는 복지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답답한 심정”이라고 했다.

탈시설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어떻게 살아갈지와 직결된다고 했다. “장애인, 홈리스, 만성질환자, 노인 등이 모두 포함되는 문제다. 많은 게 연결되어 있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해 살아가려면 주거, 소득보장, 노동, 사회서비스, 의료적 지원 영역을 포괄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권력자들이 경제중심적 사고를 버리지 않는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나라가 방역을 잘했고, 진단키트도 해외로 수출했다. 민관협동 테이블을 꾸려서 빨리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하자. 발생하는 비용은 정부가 보전해주겠다’고 한다. 좋은 말인데, 이 말속에서 읽히는 메시지는 ‘산업’이라는 거다. 진단키트 수출하듯, 바이오산업을 성장시켜 내자는 메시지가 읽히니까 무섭다. 근본적인 것들은 놓치고 있다.”

재난과 위기 상황에선 사회적 약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본다. 23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 많은 장애인이 죽었다. 김도현은 인간이 만들어낸 재난이자 참사라고 본다. “애도와 반성은 없고, 영웅 만들기와 자화자찬이 난무한다. 조금은 무섭고, 잔인한 일이다. 영웅을 만들어 놓으면, 다음에도 영웅을 통해 이런 위기를 극복하려 하게 된다”고 했다.

자본주의 시스템을 전환하고, 생태 문제를 해결하며 노동을 재구성할 때라고 본다. “속도를 잠시도 늦추지 못한 채 끊임없이 확대재생산을 해야만 유지되는 이 시스템 그대로 가면, 인류에게 닥친 근본적인 생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환경과 인간의 삶을 파괴하면서 자본의 이윤에 도움되는 일이 아니라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일을, 효율성을 중심으로 한 분업이 아니라 협업 형태의 노동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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