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삶

김도현 “장애인은 언제나 비상사태”

2020.04.25 12:49 입력 2020.04.26 10:45 수정

코로나19는 장애인 차별과 감염병 대책 부재 현실을 드러낸다. 메르스 발생 이후 장애인들이 요구한 입법안 마련은 법원의 강제조정에도 정부 거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가 가라고 한 격리시설엔 장애인 화장실이 없었다. 장애인 확진자 이동 때 장애인 단체에 인력 10명을 구해달라고도 했다. ‘탈시설’ 기조에서 시설 리모델링이란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자립센터 활동가나 지인이 없는 장애인들은 방치됐다. 많은 장애인이 죽었다. 발달장애인을 돌보던 한 어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모범 방역’, ‘영웅만들기’ 분위기에서 장애인들의 희생은 가려진다.

김도현 노들장애인야학 교사(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는 이런 현실 등을 열거하며 “장애인은 언제나 비상사태”라고 했다. 지난 13일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김 교사를 만났다. 21일 추가로 답변을 들었다.

- 요즘 어떻게 지내나. 노들장애인야학은.

“원래 2월이 개학인데, 1주일 정도 잠시 개학했다가 휴교 상황이 지속되면서 학생 분들을 잘 못 만났다. 중간에 가정방문 형태의 순회교육을 하면서 반찬을 배달해 드리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야 총 다섯 개 학급 중 하루 한 학급씩만 등교하는 형태로 부분적인 수업을 재개하고 있다. 최옥란 열사가 돌아가신 3월 26일부터 노동절인 5월 1일까지 매년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을 해왔다. 이 시기가 원래 집회와 투쟁이 제일 많을 때인데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모이기가 어렵다. 4월 20일에는 2미터 정도의 물리적 거리를 유지한 채 거리 행진과 집회, 장애해방열사 합동 추모제를 진행했다.”

- 학생들은.

“다들 힘들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일종의 반자가격리와 같은 상황에 놓였다. 지역사회 내의 사회서비스와 기관들을 일상적으로 이용했던 분들은 어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 노들장애인야학은 일종의 평생교육시설이다. 여기뿐만 아니라 복지관 등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들이 올스톱되어버렸다. 발달장애인이나 중중장애인이 있는 가정은 안 그래도 돌봄 부담이 큰데, 그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제주도에서는 지난달 17일 홀로 발달장애인을 돌보던 어머니가 자녀를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참사도 있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이미 고통이 누적된 가정이었을 거라 짐작한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이번 사태가 겹치면서…. 사실상 국가적 차원에서는 이런 가정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으니까.”

지난 2월18일 서울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회원들이 ‘청각, 시각 장애인의 재난 및 감염병 안전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있다. 이들은 이번 코로나 19와 같은 상황 발생시 장애인들은 정보를 늦게 얻거나 소외되기 쉬운 환경이라며 정부차원의 일관성 있는 정보제공 및 대응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이준헌 기자

지난 2월18일 서울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회원들이 ‘청각, 시각 장애인의 재난 및 감염병 안전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있다. 이들은 이번 코로나 19와 같은 상황 발생시 장애인들은 정보를 늦게 얻거나 소외되기 쉬운 환경이라며 정부차원의 일관성 있는 정보제공 및 대응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이준헌 기자

- 학생들 공부도 힘들 듯한데.

“일반학교 같은 경우 온라인 강의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다만, 발달장애인 학생들에게는 온라인 교육이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거나,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들도 마찬가지고. 대학의 경우에도 온라인 강의가 길어지면서, 그냥 휴학을 선택하는 농인 대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무언가를 ‘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적 조건이 더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 다른 장애인 분들 상황은 어떤가.

“장애인 분들도 스펙트럼이 다양하니 상황도 다양하다. 전 세계적인 위기인 만큼 혼란이 불가피한 측면은 있을 것이다. 다만 장애계 입장에서는 국가에 대해 비판적인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 정부와 각 지자체에 사회적 재난 상황에서 장애인과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지원할지에 대한 기본 매뉴얼 자체가 없다. 그래서 일이 터질 때마다 혼란이 반복되고 고통이 커진다. 5년 전 메르스 사태 때에도 자가격리 대상이 된 장애인에 대해 아무런 지침과 매뉴얼이 없었고,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면서 큰 고통을 겪었다. 정부에 대책과 지침을 마련하고 요구했는데도 묵묵부답이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가 이미 지난 2016년에 국가를 상대로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기본계획 수립 및 시행’, ‘감염병 위기관리 표준매뉴얼 작성 및 운영’ 등을 요구하는 장애인차별구제 소송을 냈다. 정당한 요구니까, 매뉴얼 등을 마련하라고 법원이 강제 조정안을 냈는데도 정부가 거부했다. 그렇게 4년간 어떤 대책도 없다가 이번 사태가 터졌다.”

- 노들장애인야학 근처에서 확진자가 나왔는데.

“1월 말에 야학 부근의 명륜교회에서 확진자가 나왔다. 노들야학 학생이면서 노들장애인자립센터 자립생활주택에 거주하시는 분도 그 교회에서 예배를 봤고 동선이 겹쳐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자립생활주택은 탈시설한 분들을 위한 전환 거주 공간이다. 활동지원사 분은 교회를 가진 않으셨지만, 역시나 활동지원 문제가 가장 먼저 생겼다. 자립생활주택에서 다른 장애인과 공동으로 거주하는 분들은 자가격리 대상자가 되어도 사실상 갈 데가 없다. 한 분이라도 확진자가 나오면 큰 문제가 되니까, 센터 자체적으로 자가격리를 지원해 2주일을 버텼다. 대구를 중심으로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자가격리 대상이 된 장애인에 대해 정부가 내놓은 지침은 크게 2가지였다. 첫 번째는 지방자치단체별로 마련한 격리시설이 있으니, 장애인은 일차적으로 여기에 가라. 두 번째는 활동지원사의 노동 시간이 8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는데 24시간까지 풀겠다는 것이다. 또 가족은 활동지원 일을 할 수 없는데, 구하기 어려우면 가족도 허용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지침이 현실과 동떨어져 전혀 작동이 안 됐다. 지자체 격리시설은 장애인 화장실 등의 기본적인 편의시설조차 없어서 입소가 불가능하다. 활동지원은 자가격리 기간 동안은 24시간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보건복지부가 그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다. 도와 시가 협의하라고만 나와 있다. 장애인이 확진자가 되었을 경우에도, 방호복이나 추가 수당 같은 세부적 지침이 없으니까, 활동지원사가 잘 구해지지도 않았다. 또 장애인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활동지원 시간을 당겨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쓸 수 있는 활동지원 시간이 없어진다. 사실상 공문만 있는 거지, 구체적인 내용은 아무것도 없었다.”

장애인의날인 2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장애인 차별철폐 거리투쟁 중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가 집단수용 장애인 거주시설 폐쇄와 장애등급제 폐지 등을 촉구하며 함성을 지르고 있다. 이준헌 기자

장애인의날인 2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장애인 차별철폐 거리투쟁 중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가 집단수용 장애인 거주시설 폐쇄와 장애등급제 폐지 등을 촉구하며 함성을 지르고 있다. 이준헌 기자

- 그런 경우 어떻게 하나.

“장애인이 자가격리에 들어가면 결국 자립생활센터 활동가나 지인들이 활동지원을 했다. 그마저 없으면, 활동지원 없이 방치됐다. 아시다시피 요양시설, 장애인시설, 정신병원에서 집단 감염이 많았다. 대구 성보재활원에서도 장애인 확진자가 5명 나왔는데, 대구에 병상이 없는 상태에서 서울시가 받겠다고 해서 서울의료원으로 왔다. 그런데 보건복지부도 어떻게 지원을 할지 모르고 우왕좌왕하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 지원 인력 10명을 구해달라고 연락이 왔다. 어찌 보면 황당한 상황인 것이다. 부랴부랴 사람을 구해 막상 서울의료원에 가니까, 규정상 병원 인력이 아니면 지원할 수 없다고 하더라. 그나마 서울의료원이 공공병원이라 평소 장애인 이용자가 많았고, 일정한 경험이 있어 대응이 이루어진 것이다. 민간병원은 더 혼란스러웠다. 이런 재난 사태에서 장애인 확진자에 대한 지원 매뉴얼이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대구의 경우, 장애인지역공동체라는 민간단체가 사실상의 본부가 되어서 장애인에 대한 지원을 도맡아 했다. 문제 생기면 인력 제공하고, 마스크와 소독제 배분하고.”

- 지금 대구 장애인 상황은.

“아직 안심할 수는 없지만, 일단 한 고비는 넘겼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장애인 확진자가 더 나왔으면, 정말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다시 한 번 말하고 싶은 건, 매뉴얼과 지침을 비롯한 대책 마련을 이전부터 요구했는데도 무대책으로 일관했다는 거다. 그나마 대구 지역의 시민사회와 장애인단체들이 합심해 겨우겨우 위기를 넘어가고 있는 듯하다.”

- 복지부의 실질적 대책은 하나도 없나.

“시설에서의 집단 감염이 문제가 되니까, 복지부는 황당하게도 시설에 대해 1인 1실 형태의 리모델링을 추진하겠다며 수요 조사를 했다. 보통 시설들은 한 방에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한다. 장애인 정책이 나아갈 방향은 탈시설인데, 1인 1실로 리모델링하겠다는 건, 사실상 그렇게 계속 시설을 유지하겠다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

- 시설 유지 정책의 문제는.

“장애인 시설이든 정신요양원이든 노인요양원이든, 이런 시설들은 생산성이 떨어진 집단을 적은 비용으로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소위 커뮤니티 케어(지역사회 통합돌봄) 정책을 천명한 바는 있다. 노인, 중증장애인, 정신장애인, 홈리스 등 지원과 돌봄이 필요한 인구 집단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복지정책의 패러다임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뒷받침할 제도는 구축하지 않는다. 서울대 의대 김윤 교수가 최근 한 대담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감염병 측면에서 보자면, 이런 시설들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건 잠재된 화약고가 전국에 수만 곳 있는 거나 다름없다고. 집단 수용시설이 있는 한 감염병은 이를 중심으로 계속 확산될 수밖에 없다고.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탈시설 정책, 커뮤니티 정책을 본격화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1인 1실 리모델링 수요 조사를 하는 복지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답답한 심정이다.”

- 탈시설은 왜 중요한가.

“코로나 사태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와 직결된다. 탈시설은 단지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장애인, 홈리스, 만성질환자, 노인 등이 모두 포함되는 문제다. 그리고 탈시설은 또한 어떤 하나의 영역,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게 다 연결되어 있다. 예컨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해 살아가기 위해서는 주거, 소득보장, 노동, 사회서비스, 의료적 지원 등의 영역이 포괄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즉 총체적인 틀에서의 장애인 정책 전환을 고민해야 한다. 시설을 줄여야 한다는 건, 이런 모든 영역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을 통해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라는 얘기이지, 결코 가족이 책임지라는 게 아니다.”

- 코로나 위기의 의미는.

“이 사회를 움직이는 힘을 가진 권력 집단이 이 사태를 정말 진정한 의미에서의 ‘위기’라고 생각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아직 치료제가 없다. 결국 백신이 개발되겠지만, 그런다 해도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독감 바이러스는 예방 주사를 맞아도 항체가 6개월 정도면 소멸된다. 감염병은 일상화할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코로나19 사태는 생태계 파괴로 인한 기후위기의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앞으로 이런 위기 상황이 일상적으로 반복될지 모른다. 노동 영역에서의 위기에 대해서도 장애인의 노동권 문제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장애인을 영어로 ‘the disable-bodied’(일할 수 없는 몸)라고도 하는데, 200년 전 자본주의 체제로의 전환 시기에 만들어진 용어다. 지금의 노동 배제적인 신자유주의적 축적 체제가 지속된다면, ‘the disable-bodied’와 ‘the able-bodied’(일할 수 있는 몸)를 나누는 선이 다른 방식으로 그어질 거다. 작금의 자본주의 기술 발전과 경제 시스템은 노동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축출하면서 ‘the disable-bodied’를 늘려가기 때문이다.”

- 노동의 재구성 문제와 이어지는데.

“환경과 인간의 삶을 파괴하면서 자본의 이윤에 도움 되는 일이 아니라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일을, 효율성을 중심으로 한 분업이 아니라 협업 형태의 노동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거기에 정당한 대가를 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런 사회가 되면, 기존에 노동의 영역에서 축출된 사람도 함께 일할 수 있고, 또 기존의 노동자들이 더 이상 축출되지 않는 정치경제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

- 위기는 삶의 문제와 직결되는데.

“이번에 다시 한 번 느끼는 게, 위기 상황 속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데, 지배 권력은 경제 중심적 사고를 버리지 않는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같은 경우에는 경제를 빨리 다시 돌려야 한다는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내놓고 있다. 우리나라도 무서운 게,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나라가 방역을 잘했고, 진단 키트도 해외로 수출했다. 민관협동 테이블 꾸려서 빨리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하자. 발생하는 비용은 정부가 보전해주겠다’고 한다. 좋은 말인데, 민관이 함께 협력하는 것도 맞는데, 이 말속에서 읽히는 메시지는 ‘산업’이라는 거다. 진단키트 수출하듯, 바이오산업을 성장시켜 내자는 메시지가 읽히니까 무섭다. 근본적인 것들은 놓치고 있다.”

- 근본적인 것이라면.

“이 상황에서도 경제적 이득과 효율성을 중심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사고들이 보인다. 과연 삶의 방식을 전환하기 위한 근본적인 지점들을 성찰하고, 고민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지 않으니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시설에 대한 1인 1실 대책이 나온다. 학계나 시민사회단체에서는 나름의 진지한 성찰과 고민을 담은 여러 대안들을 내놓는다. 그런데 실제로 이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힘을 지닌 기득권자들이 이를 진지하게 고민하는가. 위기가 ‘위태로운 기회’일 수도 있는데, 그런 기회가 되면 좋은데, 다소 회의적인 생각도 든다. 이번 4·15 총선에서도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소중한 역량과 진지한 목소리가 정치권력과 연결되지 않고,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는 걸 보면서 많이 안타까웠다. 근본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소수일 수밖에 없다. 상식적인 사고를 지닌 집단이 성찰적으로 그 목소리를 수용하고, 그게 여론으로 이어지고, 여론이 커지면서 정치권력도 움직이게 된다. 진지하면서도 현실적인 대안에 관한 이야기가 없지 않다. 분명히 존재한다. 문제는 그런 얘기들을 수용할 정치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거다.”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지난해 11월19일 오후 대한장애인협회 주최의 ‘장애인 생존권 확보를 위한 투쟁 결의 대회’가 열리고 있다. 이 대회에서 장애인들은 장애인 당사자를 위한 정책추진을 촉구했다./우철훈 선임기자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지난해 11월19일 오후 대한장애인협회 주최의 ‘장애인 생존권 확보를 위한 투쟁 결의 대회’가 열리고 있다. 이 대회에서 장애인들은 장애인 당사자를 위한 정책추진을 촉구했다./우철훈 선임기자

- 방역은.

“사회비판적 관점을 견지하는 활동가이지만, 다른 나라의 상황과 비교하자면 상대적으로 잘 대응했다고 본다. 그런데 ‘우리 너무 잘했어’라며 영웅을 만들어낸다. 다른 나라들의 사망자 수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니까 ‘저 난리에 비하면 그래도 우리는…’이라는 심정인 듯하다. 그렇지만 230명이 넘는 소중한 생명들이 죽었고, 모든 국민들, 특히 사회적 소수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많은 장애인들이 고통 받으며 돌아가셨고, 그들의 죽음은 결코 자연적인 질병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재난이고 참사다. 그런데 애도와 반성은 없고, 영웅 만들기와 자화자찬이 난무한다. 조금은 무섭고, 잔인한 일이다. 영웅을 만들어 놓으면, 다음에도 영웅을 통해 이런 위기를 극복하려 하게 된다.”

- 장애인들 경제 문제는.

“좀 아이러니하지만, 중증장애인은 소득 문제에서 겪는 위기감이 역설적으로 적을 수도 있다. 많은 중증장애인들이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노동이나 소득 활동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해왔기 때문이다. 지금 경제활동의 중단이나 침체로 인해 소득 공백이 발생하는 일종의 비상사태인데, 그런 점에서 장애인은 언제나 비상사태였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이라는 게 얼마나 취약한가를 이번 사태로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 어떤 건가.

“경제활동이 몇 달 침체되니까 바로 대혼란이 발생하지 않나. 속도를 잠시도 늦추지 못한 채 끊임없이 확대재생산을 해야만 유지되는 이 시스템 그대로 가면, 인류에게 닥친 근본적인 생태적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당연한 얘기지만 생태적 전환은 경제 시스템을 동시에 전환해야만 가능하다. 지금 같은 경제를 어떻게든 유지하고 굴려나가는 방식으로 위기를 해결하고자 하면 답이 안 나온다. 일자리나 노동도 근본적 전환을 해야 한다. 지금 이 시스템 그대로 가면 코로나19와 같은 위기 역시 사라지지 않을 거고.”

- 위기 극복을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우리 사회가 가진 생산력이 엄청나다. 최소한 이를 더 늘리지 않으면서, 어떤 일을 어떻게 하며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인류의 기술력과 능력을 선용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우리 모두 전반적으로 더 적게 노동하면서, 진정 가치 있는 일을 함께 해나가는 노동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의 개발주의를 넘어서는 노동과 분배 시스템을 만들어야 생태 위기나 코로나19 같은 위기도 근본적 해결이 가능하지 않겠나. 시초부터 확장적 세계체제였던 자본주의는 처음에는 식민지 개척을 통해 물리적으로 시장을 넓혔다. 지구상의 모든 세계가 자본주의 시장으로 편입되고 나서 더 이상 물리적으로 개발할 시장이 없으니까, 인간의 욕망을 자극해 사실상 ‘불필요한 필요’를 만들어 내서 시장을 넓혔다. 스마트폰도 그렇게 필수품이 된 거고. 하지만 필요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서 확장되는 시장도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따라서 자본 축적 자체가 노동 배제적이게 되고, 점점 더 불안정한 노동이 늘어난다. 이런 경제 시스템이 전환되지 않는 한 현재의 노동 위기도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13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4.15 총선 지역후보자들의 장애인 비하 발언에 대해 인권위 진정과 권고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권호욱 선임기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13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4.15 총선 지역후보자들의 장애인 비하 발언에 대해 인권위 진정과 권고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권호욱 선임기자

- 코로나19 대책으로 기본소득 논의도 나왔는데.

“나는 기본소득에 대해 다소 유보적인 입장이지만 완전히 반대하지는 않는다. 많은 분들이 고민하는 데에는 당연히 나름의 맥락과 이유가 있는 거니까. 어떤 면에서 이제 기본소득은 단순히 찬반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국면으로 가고 있다고 본다. 예컨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 제도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라는 질문이 의미가 있나? 어떤 민주주의인지를 얘기해야 의미가 있는 것처럼, 어떤 기본소득인지를 얘기해야 의미가 있고 논쟁이 가능하다. 현 체제의 기득권자들은 노동시장에서 축출되거나 불안정하게 노동하는 집단을 산업예비군으로 재생산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본소득을 바라본다. 예컨대 얼마 전 해체된 타다의 모기업 쏘카 이재웅 대표 같은 이들, 미국의 실리콘밸리로 상징되는 기술주의(technocentrism) 우파가 대표적일 것이다. 이런 추동력에 의지해 기본소득이 도입된다고 해서 새로운 시스템이 만들어진다고 볼 수는 없지 않겠나. 따라서 피억압 대중의 권리를 확장시키는 수단으로 기본소득을 고민하는 이들은 확실한 원칙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재난 기본소득’ 같은 말은 기본소득의 가치를 한편으로 희화화하는 거다. 기본소득 담론이 대중화되니까, 그냥 이전부터 있었던 수당 성격의 돈을 기본소득이라고 불러버린다. 이런 식으로 나아가서는 기득권자들의 기본소득과 전선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 코로나 와중에 혐오와 차별 문제도 나왔다.

“직관적으로도 그렇지만, 나중에 정확히 통계를 내보면 이 사회의 마이너리티 집단이 다수자 집단보다 코로나19 감염자 수가 당연히 많을 것이다. 절대적 숫자라기보다는 상대적 비율 면에서 말이다. 남성보다는 여성이, 비장애인보다는 장애인이, 부자보다는 가난한 이들이 더 많이 감염되고 고통 받고 있다. 그런 부분들을 봐야 한다. 혐오 발언은 그러한 발언을 하는 사람들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미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차별이 있기에 가능하다. 혐오의 문화는 혐오를 가능하게 하는 정치경제적 구조와도 연동되어 있다. 즉 혐오나 차별은 이번에 ‘발생’한 게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가 ‘발현’된 것이다.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결국 정치가 기능해야 한다. 그런데 20대 국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비하, 혐오 발언을 한 이들이 이번 총선에서도 공식적인 사과도 없이 그대로 출마했다. 기성 정치인들이 혐오 문화를 더 확산시키고, 최소한의 성찰과 반성도 없었다는 측면에서 정말 강하게 비판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총선에서 나온 공약을 평가한다면.

“권력자들이 앞서 얘기했던 의미에서의 진정한 위기감을 갖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선거에서 거대 양당의 후보로 나온 이들 중에 그런 위기의식에 기반해 정책을 내놓은 사람이 누가 있나. 소위 경합 지역의 국회의원 후보들이 말하는 건 여나 야나 다 똑같다. ‘내가 뭘 만들었고, 또 내가 뭘 개발해 주겠다.’ 코로나19 사태로 드러난 생태적 위기, 노동의 위기에 대한 근본 대책은 존재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5년 넘게 지속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장에 보건복지부 장관이 찾아와 조문을 한 후 농성을 풀었다. 민관협의체도 만들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중 진정성 있게 실행한 된 게 하나도 없다. 탈시설 민관협의체도 구성되어 일정 기간 논의를 이어갔지만, 중앙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총선에서 여당 후보들 중 그와 관련한 공약을 내놓은 이가 단 한 명이라도 있는가. ‘우리가 이렇게 장애인들에게 잘 해주고 있다’는 홍보용으로만 썼을 뿐. 서울에서 광진을 후보로 나온 오세훈은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하고, 고민정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정치인들의 그런 발언은 소수자 차별이 사회적으로 용납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의 정치가 여전히 이런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게 정말 분노스럽다.”

김도현 교사가 지난 13일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코로나19 장애인 대책 문제에 관해 말하고 있다. 김종목 기자

김도현 교사가 지난 13일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코로나19 장애인 대책 문제에 관해 말하고 있다. 김종목 기자

- 어떻게 살아야 하나는 고민들이 많다.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이 지속되고 확산되는 문제, 성장과 개발주의의 문제, 전혀 다른 문제인 것 같지만 심층에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런 것들을 바꾸려면 삶의 양식을 전환하려는 고민과 기획과 정치가 필요하고, 그 전에 정말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라는 위기감과 절박한 질문이 있어야 한다. 낙관주의에 기반해 사회운동을 해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활동하다 보면 후세대에 언젠가는 좋은 세상이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있었던 것 같다. 요즘은 좋은 세상은 고사하고, 인류가 다른 종들과 함께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위기감이 든다. 우리 사회를 재구성해야 할 때인데, 재구성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임계점까지 가게 되면, 정말 무서운 상황이 올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 최근 사회운동에 많이 등장했던 슬로건과 구호가 있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함께 살자’ 같은 것이다. 어찌 보면 어려운 말이 아닌데, 그런데 함께 사는 데 실패해 왔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는데, 연결되어 있다는 그 감각을 현재의 사회 시스템은 오히려 소거해 버린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일종의 재난이었고, 이 재난을 겪으며 그 연결감이 부분적으로나마 되살아난 부분도 분명히 있다고 본다. 방역 당국의 역할도 있었지만, 시민사회 내지 지역사회가 함께 소통하고 움직이면서 위기를 넘어가고 있는 경험이 무언가 긍정적인 에너지가 되어주기를 희망해 본다. 아직 미래가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라 생각하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최선을 다해 해봐야 하지 않겠나.”

※경향신문은 비정규직·이주·문화예술 노동자, 장애인·노숙인 지원 단체 활동가 6명을 만나 코로나19와 삶, 투쟁에 관해 물었다. 운동가이자 당사자인 이들에게서 어떻게 사는지, 무엇을 하며 살지도 들었다. 보건 전문가, 인문학자 의견도 들었다. 24~25일 [코로나19와 삶 연속인터뷰]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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