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 청년' 우리가 바라만 보고 있는 사이, 37만명 추산

2021.09.08 06:00 입력 2021.09.08 10:21 수정

작년 기준 청년의 3.4% 정도

2017년 2.6%보다 숫자 늘어

정부 실태조사나 지원 없어

“일본, 1인당 사회 비용 15억”

지자체, 지원조례 속속 제정

청년 김지연씨(28·가명)에게 세상은 3평짜리 방 한 칸이 전부다. 먹고 자는 것을 비롯한 모든 것을 방 안에서 해결한다. 일과는 컴퓨터 속 세상에 열중하는 일 뿐이다. 일어나는 시간도, 자는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다. 친구들과 연락을 끊은 지는 오래됐다. 부모님과도 밥을 먹어야 할 때를 제외하곤 대면하지 않는다.

반복되는 구직 실패와 대기업에 취업하는 친구들의 모습은 그를 스스로 방안에 갇히게 했다. 은둔 생활은 1년 6개월간 이어졌다. 김씨는 “갇혀 지내는 생활이 길어지면서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약해졌다”며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 일하지 않는 청년? 실태 파악도 없다

‘은둔형 청년’이 사회 문제로 등장한지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국내에 이들의 실태를 살펴볼 만한 공식 통계는 현재까지도 없다. 다른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은둔형 청년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를 짐작할 뿐이다.

7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표한 ‘2020년 청년 사회·경제실태 및 정책방안 연구’를 보면, 만 18~34세 청년 3520명을 대상으로 평소 외출 정도를 물은 결과 응답자 중 3.4%(112명)가 ‘집에 있지만 인근 편의점 등에 외출한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근거로 국내 은둔청년 규모를 지난해 기준 37만4156명 가량으로 추산했다. 청년 1100만4611명 가운데 3.4% 정도가 은둔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문제는 은둔형 청년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소년정책연구원이 2017년 진행한 같은 연구에서 ‘집에 있지만 인근 편의점 등에 외출한다’ ‘집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응답은 2.6%에 불과했다. 당시 은둔청년 규모를 29만5934명을 추산하면 불과 3년 사이 7만8222명이나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은둔형 청년 문제가 한국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다. 2005년에는 은둔형 외톨이라는 용어가 처음 국내 정신의학계에서 등장했다. 당시 은둔형 외톨이를 ‘친구가 거의 없거나 한 명 밖에 없고, 수개월간 사회참여를 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규정한 정의는 현재까지도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20년 가까이 지속돼온 문제임에도 은둔형 청년에 대한 지원이나 대책 등은 전무한 실정이다. 문제의 원인을 개인의 일탈이나 의지 부족 등으로만 여겨왔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고립된 청년들을 돕고 있는 김옥란 리커버리지원센터 센터장은 “10년 넘게 은둔형 청년 문제를 다뤄왔지만 정부기관의 공식적인 지원 정책은 거의 없었다”며 “사회의 일반적 시각이 ‘일해야 하는 청년이 집에만 있는다’는 식으로 그쳤던 영향 탓”이라고 말했다.

은둔형 청년의 ‘고립’ 특성이 정책 사각지대를 만들었다는 분석도 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어떤 문제든 당사자들이 조직화 해야 사회적 관심을 끄는데 은둔형 청년은 그런 것들이 이뤄지기 어려운 집단”이라고 말했다.

은둔형 청년으로 5년간 생활해온 유승규씨가 집 밖으로 나오지 않던 당시 지내던 방의 모습. |유승규씨 제공

은둔형 청년으로 5년간 생활해온 유승규씨가 집 밖으로 나오지 않던 당시 지내던 방의 모습. |유승규씨 제공

■일본선 사회비용 900조…“공공이 나설 때”

전문가들은 은둔형 청년 문제를 방치했을 때 경제적으로만 보더라도 막대한 사회비용을 치뤄야 한다고 공통되게 말한다. 한국보다 10여년 가량 일찍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한 일본의 경우 한 청년이 일하지 않고 은둔을 선택했을 때 1억5000만엔(15억 8000만원)의 비용이 발생한다고 본다. 일본 내 은둔 청년은 60만명으로, 이미 900조원이 넘는 사회비용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이는 청년이 취업을 통해 사회에 진입했을 때 부담하는 세금과 보험료에서 무직자가 됐을 때 받아야 하는 생활 보호 수급액을 뺀 금액이다. 실제 비용은 이보다 더 크다는 의미다.

글로벌 은둔형 청년 지원 단체인 K2인터내셔널에서 활동 중인 오오쿠사 미노루 팀장은 “은둔 청년의 가족이 감당하는 생활비와 다른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은둔 청년 문제로 인한 사회비용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라며 “한국 상황이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한국도 상당한 사회비용을 치르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은둔 경험이 있는 청년들은 정책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5년간 은둔생활을 해온 유승규씨(29)는 “혼자서는 은둔 생활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씨는 “나를 이해해주고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 상담과 지원센터 등을 통해 은둔 생활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었다”며 “현재 지원센터는 민간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공공이 나서주면 더 많은 청년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은둔형 청년을 지원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에서는 이르면 올해 말 은둔형 청년 지원조례가 제정될 전망이다. 여명 서울시의원은 오는 11월 ‘은둔형 청년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의회에 상정할 예정이다. 이 조례안에는 서울시가 5년마다 ‘은둔형 청년 지원에 관한 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다. 또 은둔형 청년 실태조사와 이들을 돕기 위한 지원사업, 거점센터 설치 및 운영 등에 대한 내용도 포함된다.

광주광역시에서는 2019년에, 부산시에서는 올해 6월에 이와 비슷한 조례가 만들어졌다. 광주시는 조례에 따라 은둔형 외톨이 실태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여명 서울시의원은 “청년 문제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지금이라도 소외된 청년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조례를 통해 은둔 청년에 대한 지원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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