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애인의 고통과 상실에‘만’ 집중할 때, 나는 불편하다

2021.12.21 21:35 입력 2021.12.21 21:37 수정
이길보라

에이블리즘·오디즘이 아닌 주체적으로 쓰는 삶의 서사

영화 <미나마타 만다라>에서 미나마타병으로 인해 선천적 뇌병변 장애인으로 태어난 사카모토 시노부와 그가 사랑했던 남자들과의 인터뷰 장면.  Shisso Production 제공

영화 <미나마타 만다라>에서 미나마타병으로 인해 선천적 뇌병변 장애인으로 태어난 사카모토 시노부와 그가 사랑했던 남자들과의 인터뷰 장면. Shisso Production 제공

미나마타병 손배소송 다룬 다큐 ‘미나마타 만다라’
장애인을 공해의 피해자로만 그리지 않았지만
남들이 웃는 장면에서 쉽게 웃을 수 없던 이유는
병이 없었더라면 가능했을 사랑을 떠올리게 해서

정말 지겨울 정도로 듣는 질문이 하나 있다.

“농인의 자녀로서 힘든 점은 없었나요?”

이는 종종 눈빛과 분위기로 형성된다. 안 봐도 뻔하다는 듯 탄식이 쏟아진다. 부모님이 말 못하는 벙어리구나, 정말이지 안타깝네, 같은 말들이 공중에 떠다닌다. 장애인과 그의 가정에 대한 동정과 연민이다.

이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다. 눈을 크게 뜨고 목에 힘을 주어 부모님은 농인이고 나는 그의 자녀인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s의 줄임말)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이다. 부모에게서 수화언어를 배우고 세상으로부터는 음성언어를 배워 농사회와 청사회를 잇는 매개자로 자랄 수 있었다며 코다로서의 긍정적 경험을 말하면 사람들은 묻는다. 그렇다면 어려운 일은 무엇이었는지, 그런 경험은 왜 이야기하지 않는지.

고민에 빠진다. 당연히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장애를 가진 몸으로 살아가는 것과 그의 자녀가 되는 일은 쉽지 않다. 에이블리즘(Ableism·비장애중심주의 혹은 장애차별주의)과 오디즘(Audism·청인이 우월하다고 믿고 농인에게 청인처럼 행동하라고 하는 것)이 만연한 사회에서 나와 부모는 수용되고 포용되기보다 차별받고 거절당한 경험이 더 많다.

그러나 어려운 일만 있는 건 아니다. 누구나의 인생이 그렇듯 기쁘고 가슴 벅찰 때도 있고 화가 나고 속상할 때도 있다. 후자의 경험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흘리거나 쯧쯧 하고 혀를 찬다. 그 순간 나와 부모의 삶은 대상화된다. 그저 불쌍하기만 한 건 아닌데 ‘불쌍한 사람’이 된다. 자기 삶의 서사를 구축하는 주체성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위 질문에는 답하지 않기를 택한다. 대신 부모님이 농인이라서 내가 코다라서 좋았던 점을 더 크게 말한다. 에이블리즘과 오디즘을 구축하는 서사로서 나의 경험이 쓰이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인과 코다의 삶이 마냥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 번번이 멈춰 서고 만다. 무심코 던진 질문에 혼란에 빠진다.

영화 <미나마타 만다라>에서 미나마타병으로 인해 선천적 뇌병변 장애인으로 태어난 사카모토 시노부와 그가 사랑했던 남자들과의 인터뷰 장면.  Shisso Production 제공

영화 <미나마타 만다라>에서 미나마타병으로 인해 선천적 뇌병변 장애인으로 태어난 사카모토 시노부와 그가 사랑했던 남자들과의 인터뷰 장면. Shisso Production 제공

일상 속에서의 에이블리즘

영화 <미나마타 만다라>(2020)는 1940년대 초 일본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 주민들에게 발생한 미나마타병과 이를 가짜 환자 취급하다 정치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일본 정부와 그에 반하는 이들의 여정을 좇는 영화다. 미나마타시의 화학 공장이 메틸수은이 담긴 폐수를 바다에 방류하자 이는 어패류에 고농도로 축적된다. 어패류가 주식이었던 주민들에게서 시야협착, 언어장애, 지각장애, 보행장애, 시력장애, 근력저하, 사지 뒤틀림 등의 증상이 집단적으로 발생한다.

1956년 미나마타시 교외에 살던 5세 여자아이가 걷거나 말하는 것을 힘들어하고 경련을 호소하며 병원에 입원한다. 이틀 후 여동생도 같은 증세를 보인다. 이웃에게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자 국지적인 전염병으로 추정되어 이들은 사회적으로 격리를 당한다. 인간들에게만 이상 징후가 생긴 건 아니다. 고양이가 경련을 일으키고 미친 것처럼 보이다 죽어가자 주민들은 이를 ‘고양이춤 병’이라 부른다. 다른 야생동물 역시 이상 행동을 보이자 구마모토대학 연구자들이 연구에 착수한다. 이는 메틸수은이 뇌의 신경세포를 파괴하여 일어난 중추신경계 장애를 일컫는 미나마타병으로 명명된다.

영화는 이 병을 갖게 된 당사자들을 중심으로 미나마타병이 공해로 인한 병이라는 걸 입증하는 연구 과정을 비롯해 이를 토대로 주민들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과정을 담는다. 일본 다큐멘터리 영화의 거장이라 불리는 하라 가즈오 감독이 15년 동안 촬영하고 5년 동안 편집하여 372분이라는 분량으로 만들었다. 미나마타병을 다룬 영화와 뉴스 등을 자료 화면으로 사용하여 이 병이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데 걸린 60년의 시간과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병명을 갖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길보라의 논픽션의 세계](13)장애인의 고통과 상실에‘만’ 집중할 때, 나는 불편하다

한나절을 꼬박 보아야 하는 이 영화의 미덕은 긴 시간 투쟁해온 이들의 삶을 오롯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미나마타병으로 가족을 잃거나 선천적인 장애를 가지고 살아온 이들이 병명을 찾기 위해 싸운다. 문제를 감추려는 기업과 공해로 인한 병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는 정부를 향해 이름 없는 고통 속에 방치한 것을 사과하라고 요구한다. 영화는 이들을 피해자로만 그리지 않는다. 적극적인 투쟁과 유쾌하면서도 담담한 일상 묘사를 통해 이들의 삶은 주체화된다.

그런데 몇몇 장면에서는 멈춰 서게 된다. 가령 미나마타병으로 선천적 뇌성마비를 갖게 된 여성 장애인이 신데렐라를 좋아한다고 하자 감독은 왕자가 찾아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다. 다음으로 뇌병변 장애인이자 영화 주인공 중 한 명인 사카모토 시노부가 무대 위에 선다. 사랑이 많은 여성이자 사랑에 쉽게 빠지는 여성으로 묘사된다.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따로 살고 싶다는 가사가 담긴 노래는 대회에서 1등을 수상한다. 이어지는 장면은 시노부가 좋아했던 남자들과의 인터뷰다. 감독은 그가 세 명의 남자를 어떻게 만났고 왜 사랑하게 되었으며 어떤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지 묻는다. 남자들은 어색하게 시노부 옆에 앉아 과거를 회상한다. 시노부는 부끄러워한다. 장면이 바뀌고 다른 남자가 그의 옆에 앉는다. 또 장면이 바뀌고 새로운 남자가 앉는다. 감독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시노부에게 연애를 하는 것은 곧 자유로워지는 것을 의미한다며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마을 바깥에서 온 이들을 좋아하게 됨으로써 그들의 바깥세상을 공유함과 동시에 자신이 선천적 미나마타병 환자라는 사실을 잊을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남들은 웃음을 터뜨리는 이 장면에서 쉽게 웃을 수 없었다. 꼭 미나마타병이 없었더라면, 미나마타병으로 인한 선천적 장애가 없었더라면 가능했을 사랑의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영화 <미나마타 만다라>에서 미나마타병으로 인해 선천적 뇌병변 장애인으로 태어난 사카모토 시노부와 그가 사랑했던 남자들과의 인터뷰 장면.  Shisso Production 제공

영화 <미나마타 만다라>에서 미나마타병으로 인해 선천적 뇌병변 장애인으로 태어난 사카모토 시노부와 그가 사랑했던 남자들과의 인터뷰 장면. Shisso Production 제공

미군과 그 폐기물이 내게 장애를 가져왔다
그리고 나는 내 몸을 사랑한다

공식적으로 미나마타병이 확인되지만 기준이 너무나도 엄격하여 대다수 피해자들은 그 범위에 포함되지 못한다.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미조구치의 어머니가 그에 해당한다. 미나마타병을 인정해달라고 신청한 지 39년 만인 2013년, 81세의 미조구치는 구마모토현이 상고한 도쿄 최고재판소에서 승소한다. 정부가 인정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도 개별적으로 따져 미나마타병을 판정해야 한다는 판결이다. 모두가 환호하지만 지방정부 관료들은 절대 사과하지 않는다. 기쁨과 동시에 화가 머리끝까지 나는 장면이다.

재판 결과를 공유하는 발표회에서 초기부터 미나마타병을 연구해온 연구진 중 한 명이 술에 취해 눈물을 훔치며 말한다.

“미나마타병은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그게 무슨 맛인지 느끼지 못하는 거예요. 섹스를 해도 그 미세한 감각을 누리지 못하는 거예요. 두 손을 맞비벼도 무슨 감각인지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거예요.”

이 장면은 복잡한 맥락을 담고 있다. 병의 인정 범위를 넓히기 위해 끝까지 투쟁해야 한다는 의견과 적당히 보상받고 마무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갈리면서 당사자 간의 분열이 생긴다. 연구진도 마찬가지다. 길고 긴 싸움에서 승소했고 여러 감정이 엇갈리며 흘렸을 눈물이겠지만 나는 함께 울지 못하고 다시 한번 멈춰 섰다.

신경학적인 장애로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건 누군가에게는 상실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기본값이다. 상실로 인한 슬픔과 안타까움은 비장애인 중심의 관점으로부터 비롯된 감정이다. 가령 위 문장에서 ‘촉각’을 ‘청각’으로 바꿔보자. 누군가 나의 농인 부모를 향해 음악을 듣지 못해 슬프다거나 새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를 듣지 못해 안타깝다고 하면 과연 나는 맞장구칠 수 있을까?

작가이자 예술가, 장애운동가이자 동물운동가인 수나우라 테일러는 선천성 관절굽음증 장애를 가진 당사자로서 동물이 겪는 억압과 장애인이 겪는 억압을 교차적으로 사유하는 책 <짐을 끄는 짐승들>에서 자신의 몸은 미군이 무단 폐기한 여러 독성물질이 상호작용해 만들어낸 혼합물이라고 말한다. 어머니가 임신했을 때 독성물질로 오염된 수돗물을 모르고 마셨고, 그 영향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미군과 그 폐기물이 내게 장애를 가져왔다”고 말했을 때 사람들은 군대와 그로 인한 환경오염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신체를 비판했다. 동정과 안타까움이라는 감정이 뒤따랐다. 그는 한 문장을 더한다.

“미군과 그 폐기물이 내게 장애를 가져왔다. 그리고 나는 내 몸을 사랑한다.”

수나우라는 고통을 인정하는 것이 장애를 경험하는 데서 비롯되는 가치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쓴다.

[이길보라의 논픽션의 세계](13)장애인의 고통과 상실에‘만’ 집중할 때, 나는 불편하다

이 고통은 다른 경험에 대한 부정이 아니다

장애인 스스로가 ‘자신의 고통과 “원치 않는” 순간들에 대한 소유권을 쥐고 스스로의 서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고통과 상실에‘만’ 집중할 때 나는 불편함을 느낀다. 물론 영화는 미나마타병으로 인해 생긴 장애의 부정적인 면만을 다루지 않는다. 15세 때 미나마타병이 생겨 여러 의학적 사례가 된 이코마 히데오가 재일조선인 아내를 만나 결혼하던 때를 회상하는 장면은 너무나 익살스럽다.(아래 사진)

결혼을 하게 된다니 기뻐 첫날밤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강물 소리만 들으며 잤다고 진짜라고 정말이라고 말하는 이코마와 상대가 미나마타병 환자라는 걸 알고 도망갈까 고민하다 결국 결혼했다는 아내의 이야기는 장애인과 언어·민족적으로 소수자인 재일조선인이 만나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함께 밥을 먹고 머리를 깎아주며 페인트를 칠하는 등 집안의 대소사를 돌보며 산다. 대안적인 존재 방식을 일군다.

일상을 살아갈 때마다 종종 멈춰 선다.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를 보며 마냥 박수칠 수는 없었던 것처럼 에이블리즘과 오디즘에 입각한 사고와 관점을 만날 때면 혹은 그렇다고 의심되는 순간을 마주하면 오래 생각한다. 수나우라는 단순히 좋거나 나쁜 것으로 치부하기에는 장애는 너무나 복잡하다고 말하며 “비장애 신체의 세계가 우리 삶을 틀 짓고 전형화하는 방식을 통하지 않고서 고통을 겪을 수 있어야” 한다고 쓴다.

장애가 있는 몸의 경험은 다층적이며 복합적이고 입체적이다. 농인 부모와 그의 자녀인 코다의 경험 역시 그렇다. 나는 납작한 고통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나의 삶에 대한 서사의 주도권을 갖고 싶다. 수나우라가 쓴 문장으로 글을 맺는다.

“우리는 모두 고통을 겪는다. 그러나 이 고통은 우리 자신의 다른 경험들에 대한 부정을 뜻하지 않는다.”

■이길보라

[이길보라의 논픽션의 세계](13)장애인의 고통과 상실에‘만’ 집중할 때, 나는 불편하다


영화감독이자 작가이다.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이 이야기꾼의 선천적 자질이라고 믿고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든다. 저서로는 <반짝이는 박수 소리> <우리는 코다입니다>(공저)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당신을 이어 말한다> 등이 있고, 연출한 영화로는 <로드스쿨러> <반짝이는 박수 소리> <기억의 전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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