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나는 안 아플 줄 알았다

2023.07.31 14:57 입력 2023.08.01 15:14 수정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경향신문 자료 사진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경향신문 자료 사진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1981년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에 한국 최초 여성 용접공으로 입사했다. 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고 1986년 해고됐다.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반발하며 크레인에 올라 309일간 고공농성을 했다. 그와 연대하기 위해 전국에서 ‘희망버스’가 모여들었다. 평생 전국의 노동 현장과 연대하며 ‘소금꽃’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복직투쟁 37년만인 2022년 복직했다.


나는 안 아플 줄 알았다. 나이야 해마다 주워 먹겠지만 하루 세 번 양치질 잘하고, 미세먼지 심한 날 K-94 마스크 잘 쓰면 장수까진 아니어도 무병은 무난할 줄 알았다.

반에선 적수가 없어 옆 반까지 팔씨름 원정을 갔었고, 소풍가서 닭싸움을 1등 해서 탄 공책을 다음 소풍 때까지 썼다. 일제 때 징용 끌려갔다가 다친 다리 때문에 아버지가 아들을 제치고 유일하게 기집아를 찾는 순간이 억센 아귀힘으로 다리를 주무를 때였다. 열 추럭을 줘도 안 바꿀 아들을 앉히곤 세상 흡족해 하던 아부지의 무릎은, 내가 수제비 반죽처럼 주무르고 나면 아들이 담싹 올라 앉았다. 나는 한번도 앉아보지 못했던 아부지의 무릎. 그 시절부터 병 뚜껑하나 비틀지 못하는 현재까지 50년의 세월을 난 징검다리 하나 없이 건너뛰어 사대천왕처럼 기억을 지키고 있다.

그 50년도 넘은 기억들로 난 내 건강에 대해 자신하고 있었다. 그 50년 동안 어찌 살았는지는 까맣게 잊은 채.

수술을 하고 암병동에 들어서니 고통을 먼저 겪어 하늘처럼 우러러 뵈는 선배들이 묻는다.

“암 소리 듣고 누구 얼굴이 젤로 먼저 생각나대요?”

암환자들은 설명이 없어도 다 알아듣는 질문이다.

“본데없는 메느리 가르친다꼬 임신 8개월의 메느리를 무릎 꿇려놓고 멫시간을 갈치던 시아배. 메느리가 하는 일은 씨레기 봉다리 묶는 일도 눈꼴시러바 하던 시어매.”

“집에만 오면 빨래집게 하나라도 쎄비갈라꼬 눈을 뽈씨는 시누.”

“술먹으면 개그튼 남핀놈.”

“취직도 몬하고 주식한다꼬 돈이란 돈은 다 까쳐먹은 큰 아들.”

라이프 스토리처럼 이어지던 ‘발암요인’들을 들으며 난 크레인이 젤 먼저 떠올랐다. 하루에도 사계절이 공존하던 곳. 그런데도 선풍기도, 난로도 없던 곳. 겨울엔 시루떡이 벽돌처럼 얼고, 널어놓은 양말이 동태가 된 채 며칠이 가도 녹지 않던 곳. 장마철엔 담요가 썩던 곳. 호시탐탐 침탈을 노리던 용역 깡패들 탓에 10분을 이어 잘 수 없던 곳. 내려와서라도 몸을 좀 녹일 수 있었더라면 안 아팠을까. 감빵엔 전부 변호사고 판사이듯이 병동엔 전부 의사다. 그들의 말대로 “지가 산 세월이 벵을 맹기는기라.” 항암을 마치고 4개월 만에 요양병원에서 퇴원하니 당장 먹을 게 없었다. 입원해있는 동안 두꺼비집이 내려가 다 썩어문드러진 냉장고. 그때서야 깨달았다. ‘난 육십 평생 나한테 밥 한끼 제대로 해준 적이 없구나.’

그때 때 되면 밥이 나온다는 귀정사 사회연대쉼터 생각이 났다. 처음 시작할 때 한진중공업 해고자들도 가서 쌍용차, 콜트콜텍, 기륭전자, 현대차비정규직 해고자들 등과 함께 힘 모아 만들었던 곳. 그러나 우울까지 깊었던 나는 ‘쉴’ 곳이 아닌 ‘숨을’ 곳이 필요했다. 면허증도, 차도 없는 내겐 병원 다니는 일이 너무 난망하기도 했고.

박성호는 안 늙을 줄 알았다.

20대 초반에 만났던 눈이 땡그랗고 못 하는 게 없는 마을청년회 총무 같은 박성호. 박성호는 진짜 못하는 게 없고, 못 만드는 게 없다. 집회 때면 꽹과리를 치고, 일인시위 땐 피켓을 만들고, 천막농성 땐 천막을 짓고(한진은 천막 잘 짓기로 유명하다. 쳤다 하면 반년이 기본에다 영도 똥바람에도 끄떡없는 데다 자동문이 달린 2층 천막을 짓기도 한다), 촌에 집을 혼자 짓기도 하고, 그리고 전국의 민중·열사 장례식엔 언제나 박성호가 있었다. 1991년 박창수 위원장부터 2023년 양회동 열사까지. 이소선 어머니든, 백기완 선생님이든 부산에서 박성호가 올라가야 비로소 편안하고 원만한 장례가 이루어졌다. 아는 이들은 모두 안다.

박성호의 정년 퇴임식 날까지도 그는 일이었다. 지회에서 열어준 정년 퇴임식에 늦게 도착한 주인공이 변명처럼 사유를 말했다. “노옥희 선생님 솥발산에 모시주고 온다꼬 늦었심미다.”

그동안 지은 복만으로도 천년만년은 살아야 할 박성호가 심장이 갑자기 안 뛰어서 얼마 전 119에 실려가는 식겁을 했다는 얘길 들으니 내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우리 같은 해고자들, 노동·사회활동가들, 국가폭력과 자본폭력의 피해자 등이 비용 등 걱정 하나 없이 편히 쉴 수 있는 무료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을 만들어두자고 몇날 며칠을 한진 동지들과 함께 남원 귀정사 비탈을 쉼터로 깎고 다듬었던 박성호. 뇌졸중으로 쓰러진 부산일반노조 정승철 동지 가족을 싣고 사회연대쉼터로 바삐 가던, 예전 고무신공장 해고노동자로 우유배달, 기름배달을 하며 부산지역 민주화운동의 산증인으로 살다 간경화로 쓰러진 문민철을 쉼터로 보내 쉬게 하던, 성호. 그가 이젠 쉬어야 할 때가 온 것인가.

세상은 쉽사리 안 바뀌고 활동가들은 늙고 병들어 간다. 거리에서의 삶들은 쉬이 끝나지질 않는다. 시국이 이런데 쉬는 건 막연히 불안하다. 쉬려니 수요일의 집회가 걸리고, 주말의 수련회는 누가 준비하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저렇게 짓밟히고, 비정규직이제그만 공동행동이 저렇게 당하고, 건설노조가 저렇게 두들겨 맞는데 어찌 쉬노. 세종호텔이 저러고 있고, 대우버스가 저러고 있고, 세월호도 이태원도 다 마음이 쓰이는데 어찌 쉬노. 그게 우리의 삶이었다.

난 내 삶에 후회는 없지만 나 자신에겐 좀 미안하다. 두 군데 갔던 한의원에선 똑같은 얘길 들었다.

“몸에 기름기가 하나도 없어요.” 비싼 약을 몇 재 먹고 세 번째 갔던 한의원에서도 똑같은 얘길 했다. “몸에 기름기가 있어야 버텨요.”

잘 먹일 걸, 따뜻한 데서 재울 걸, 맨날 천날 쫓기듯이 그렇게 동동거리지 말고 좀 천천히 살 걸. 활동가들이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면 좋겠다. 더 늦기 전에.

전북 남원 만행산 기슭에 터를 딲은 귀정사 사회연대쉼터가 그런 우리 모두에게 맞춤한 공간이 되면 좋겠다. 잘 먹고, 잘 자고, 천천히 걸을 수 있는 낙원으로.

그 귀정사 사회연대쉼터가 10년이 되는 9월2일. 마침 내가 좋아하는 문정현 신부님도 오시고, 정태춘 님의 노래도 들을 수 있다. 성호도 함께 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10년 전 개원식 날 백기완 선생님이랑 함께 나란히 앉았던 느티나무는 여전하겠지. 10년간 묵묵히 그곳을 지켜 온 이들에게 고맙다는 얘기를 이렇게 전한다. 10년 만에 기금 마련도 한다니 이젠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나가는 곳이 되면 더 좋겠지. 성호도 나도, 우린 철인이어서 안 아플 줄만 알았다.

2013년 개원한 전북 남원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www.shimte.org/index.php)은 사회·노동운동 과정에서 쉼이 필요한 활동가들, 국가폭력·사회폭력 피해자들, 그 외 쉼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쉼터를 지향한다. 인드라망은 ‘서로를 비추는 무수한 구슬들이 엮인 관계의 그물망’을 뜻한다. 1인 1실로 휴식 공간을 제공하며, 이용료나 별도의 대가는 요구하지 않는다. 온전한 쉼을 위해 종교행사 등 각종 행사 참석 의무도 없다.
오는 9월2일에는 10주년을 맞아 ‘사회연대쉼터 후원의 날’(bit.ly/쉼터후원의날)이 열린다. 가수 정태춘의 콘서트를 비롯해 숲길 걷기, 명상, 체험, 전시 등 행사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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