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기억의 터’ 철거 입장 재확인에 모금단체 “여성 폭력 지우기” 반발

2023.09.04 14:14 입력 2023.09.04 15:17 수정

건립추진위·정의연 철거 반대 집회

“‘아픈 역사 기억’ 시민 뜻 담겨있어

일본군 ‘위안부 역사 지우기’에 저항”

서울시가 직원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지난달 1심에서 유죄를 받은 임옥상 작가의 작품 철거를 시도한 4일 서울 중구 남산 ‘기억의 터’에서 정의기억연대와 여성단체 활동가들이 철거를 막기 위해 임 작가의 작품 ‘대지의 눈’을 지키고 있다. 조태형 기자

서울시가 직원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지난달 1심에서 유죄를 받은 임옥상 작가의 작품 철거를 시도한 4일 서울 중구 남산 ‘기억의 터’에서 정의기억연대와 여성단체 활동가들이 철거를 막기 위해 임 작가의 작품 ‘대지의 눈’을 지키고 있다. 조태형 기자

서울시가 강제추행으로 1심 유죄 판결을 받은 임옥상 작가의 작품이 있는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를 예고대로 철거하겠다고 나서자 ‘기억의 터 건립추진위원회’(추진위)와 정의기억연대 등 단체들이 “합의 없는 일방적 철거는 여성폭력 지우기에 불과하다”며 반발했다.

4일 오전 5시51분, 서울 중구 남산 ‘기억의 터’ 초입에는 굴삭기 한 대가 길목에 서 있었고, 노란 조끼를 입은 인부들이 대기했다. 경찰 기동대가 공원 입구를 둘러 막았고, 추진위 등 기자회견 주최 관계자 7명이 공원 입구를 지켰다. 서울시 관계자와 주최 측은 기자회견 장소를 두고 언성을 높였다.

오전 7시가 되자 추진위와 정의연 등 집회참가자 46명이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이들은 여성운동을 상징하는 보라색 천으로 기억의 터 공원 외곽을 둘러쌌다. 임 작가가 제작한 ‘대지의 눈’, ‘세상의 배꼽’ 등 두개 시설물 위에는 보라색 보자기를 얹어놓았다.

주최 측은 “기억의 터의 역사적 의미와 여성인권을 염원하는 피해자 및 시민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작업에 성추행 범죄에 대한 책임과 반성 없이 감히 참여한 임옥상의 행태에 분노를 참을 수 없다”면서도 “기억의 터는 조형물 제작 과정에 참여한 수많은 추진위원과 여성작가들, 모금에 참여한 1만9754명의 시민들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존경과 ‘아픈 역사를 반드시 기억하겠다’는 다짐으로 만들어낸 집단 창작물”이라고 했다.

이어 “임옥상의 성추행 사건, 문화계 안의 성차별적인 남성문화, 일본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왜곡, 윤석열 정권의 일본 정부에 대한 아첨의 일환으로의 일본군 ‘위안부’ 역사 지우기 등 모두에 저항한다”면서 “임옥상의 성추행 사건과 기억의 터 공간의 향방에 대한 논의는 이러한 맥락 위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서울시는 여성인권에 대한 다짐을 담아 이 공간을 어떻게 재조성할지 로드맵을 제시하라”고 밝혔다.

최영희 추진위 대표는 “우선 피해 할머니들과 2만여명 모금 참여자께 죄송하다”며 “반인륜적 피해자였지만 당당히 평화 인권운동가로 지내신 할머니들의 메시지를 계승하자는 의미로 기억의 터를 열었다”고 말했다. 이어 “기억의 터 설립 추진 당시 작가 섭외가 안 돼서 임옥상에게 제자 소개해달라 하니 ‘돈 상관 없이 내가 해주겠다’고 해 결정했다. 임옥상이 그런 사람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기자회견 현장 인근에선 보수 유튜버 5명이 “위안부는 매춘”이라며 고성을 지르기도 했다. 주최 측 관계자들은 “부끄러운 줄 알라”며 대응했고, 경찰의 만류로 양측 간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기자회견이 끝난 오전 8시50분쯤 철거 업체는 일단 현장에서 철수했고, 약 1시간 뒤 기동대도 철수했다. 기자회견 참가자 10여명은 기억의 터 ‘대지의 눈’ 주변에 남아 자리를 지켰다.

앞서 서울시는 임 작가의 유죄판결이 나온 후 시내에 설치된 임 작가의 작품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추진위는 공작물 철거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지만,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1일 “제출 자료만으로는 공작물 철거행위를 다툴 법률상 이익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이를 인정할 자료가 없다”며 각하했다. 서울시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작가의 작품을 유지·보존하는 것이 공공미술의 취지와 부합하지 않는다”며 예정대로 이날 기억의 터를 철거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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