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썰매

2018.01.10 20:33 입력 2018.01.10 20:40 수정

[임의진의 시골편지]눈썰매

핀란드 여관집 현관에 전시되어 있던 눈썰매를 보고 감탄. 대물림을 할 정도로 짱짱한 물건이었다. 집집마다 이
젠 스노 모빌 눈썰매가 있지만 과거엔 모두 아버지들이 나무를 깎아 만든 눈썰매를 탔단다. “겨울 나라에서 살려면 기술이 좋아야 해요. 썰매 하나를 만들어도 설렁설렁 대충 이어 붙여서는 곤란합니다. 눈길에 갇히면 얼어 죽죠. 모든 게 목숨과 관계되어 있으니까요” 여관집 아저씨는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눈썰매도 보여주며 자랑을 했다.

만주땅 봉천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던 내 아버지도 얼음 썰매를 곧잘 만드셨다. 그곳에서 배우신 걸까. 꽁꽁 언 냇가에 나가면 내 썰매가 가장 앞서나갔다. 엊그제부터 남쪽은 폭설이다. 냇물도 두껍게 얼었다. 방문 창으로 쏟아지는 눈보라가 최면을 거는 마술사의 무엇처럼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마을에서 쫓겨난 한센인들은 짓무른 코로 눈발이 들어갈까 가마니 자루를 뒤집어쓰고서 이 서러운 남도 땅을 돌아다녔다. 갑오년 농민들과 동란 때 빨치산들은 또 얼마나 추운 산하를 떠돌며 울었을까.

남녘 목사로 지낼 때였다. 한 해 겨울은 젊은 축에 끼던 부부가 새해를 맞아 교회를 다니지 않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목사가 공산당에다가 성경을 믿지 않는다는 괴소문. 미국의 ‘이슬람 대결 전쟁’을 반대한다고 설교를 한 다음주 일이었다. 시골에선 미국의 뜻에 반대하면 무조건 공산당이었다. 눈이 많이 내린 날이었는데 집엘 찾아갔다. 이번주부터 읍내 큰 교회에 다니기로 했다고. 얘기하고 싶지 않으니 돌아가시라 문전박대. 그런데 대문 앞 눈길이 얼어 그만 꽈당 넘어지고 말았다. “목사님 따라서 살다가는 그라고 재수 없을 거 같아 그만뒀당게라잉.” 내가 잘못 들었나 재차 물었더니 딸깍 문을 닫아걸었다. 나는 접질린 발목을 질질 끌고 도망치듯 그 골목에서 빠져나왔다. 동구 밖 교회로 돌아오는 눈길은 그날따라 배로 멀었다. 눈썰매를 타고 싱싱 달리고 싶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란 참으로 괴로움이었다. 하지만 별수 있나. 사람 말고 또 누가 있어 이 추위에 온기를 나누며 살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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