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소하고 느리게 살아보기

2018.04.23 20:50
정은경 | 문화평론가

최근 <숲속의 작은 집>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며 힐링을 느끼곤 한다. 언젠가부터 나영석표 프로그램이 단순 오락을 넘어 어떤 ‘철학’을 담기 시작했다고 보는데, 가령 <삼시세끼>라든가 <윤식당> 같은 것 말이다. 화려한 연예인들의 억지웃음보다 이 투박하고 느린 콘텐츠에 매료되는 것은 이들 프로그램이 도시인들의 ‘결핍’을 정확히 꿰뚫고 우리들의 로망과 판타지를 대리충족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다. <숲속의 작은 집>에서 이러한 시도들은 확실히 어떤 질적 전환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자발적 고립 다큐멘터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프로그램의 내용은 간단하다. 두 명의 피실험자가 각자 오프 그리드(전기·수도 등의 공공시설로부터 단절된)의 작은 집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작은 집에 최소한의 물, 태양광 전기와 화목 난로가 주어지고 피실험자들은 최소한의 생필품으로 혼자 생활하면서 ‘행복추진위원회’가 요구하는 미션들을 수행해간다.

[직설]간소하고 느리게 살아보기

그 미션이란 이런 것. ‘가져온 짐을 반으로 줄이기’ ‘쌀밥에 한 가지 반찬으로만 밥 먹기’ ‘한 번에 한 가지만 하기’ ‘계곡 물 소리 담아오기’ ‘빗방울 사진 찍어오기’ ‘3시간 동안 밥해 먹기’ 등등.

별것 아닌 미션 같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면 우리의 현재적 삶이 ‘소박한 삶’과 멀어져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피실험자가 덜어내는 짐들을 보면서 사실 우리에게는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심지어 비싼 집과 최신 전자제품과 옷들 때문에 역설적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근심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또는 ‘한 번에 한 가지만 하기’라는 미션을 보며 여가시간조차 다양한 콘텐츠로 빼곡하게 채워진 나의 일상을 되돌아보게 된다. 부엌이든 침대든 늘 함께하는 유튜브라든가 SNS 말이다. ‘기다림이나 여백을 조금도 참을 수 없게 된 지금, 그 속도와 정보들이 과연 내 삶에 그토록 가치가 있는 것인가? 과연 삭제된 공백들은 그대로 사라져도 되는 것인가?’와 같은 생각들과 함께. 그리고 피실험자들이 숲으로 들어가고 흙을 밟고 계곡 물소리와 새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연과 교감하는 것을 보며, 우리의 아스팔트와 모니터라는 일상에서 삭제된 거대한 ‘대지’와 ‘실재’들을 떠올리게 된다.

눈 밝은 독자들은 다 알고 있겠지만, 이 실험들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는 명확하다. <월든>은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1845년 미국의 월든 호숫가에서 스스로 작은 오두막집을 짓고 자급자족하면서 2년 남짓 ‘자발적 가난’을 수행하며 기록한 책이다. 흔히 반문명적, 자연친화적 사상서로 알려진 이 책은, 그러나 이렇게만 알고 넘기기에는 너무 긴요한 삶의 철학을 담고 있다. 미국의 작가 E B 화이트가 대학 졸업생에게 졸업장 대신 이것을 선물해야 한다고 언급했던 것처럼, 이 책은 지식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주어진 생의 감각과 힘으로 살아가는 방법과 그 실천을 담고 있는 삶의 교습서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의 요지는 간단하다. ‘간소하게 살아라, 누구의 삶도 아닌 자신의 삶을 자신의 힘으로 가꿔라, 직접 행하는 속에는 만물과 교감한다면 고독이란 없다’ 등. 가령 데이비드 소로는 ‘여행 비용을 위해 돈을 벌지 말고, 지금 당장 걸어서 그곳으로 가고, 먼 곳이 아닌 자신의 내면과 삶으로 여행하라’고 충고한다.

나는 <숲속의 작은 집>의 피실험자들이 과연 이 실험을 통해 어떻게 변화해갈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 프로그램은 실제 인물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연출된 <트루먼쇼>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쇼 아닌가. 피실험자 B가 ‘한 번에 한 가지만 하기’라는 미션을 행하면서 “그럼, 촬영하면서 뭘 같이하면 안되지 않아요?”라고 반문했던 것처럼. 이들이 보여주는 구름과 하늘에 함뿍 빠져들다가 문득 이 쉬운 것조차 시뮬라시옹으로 감상하게 된 현실이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토록 간단한 것을 TV로 향유한다는 것, 이는 그만큼 우리 삶에 ‘그것’이 사라져버렸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숲속의 작은 집>은 자연과 생의 감각, 능동성을 망각해버린 도시인을 위한 자활 프로그램인가. 서글픈 생각에 ‘이번 주말엔 꼭 가까운 산에라도 가야지’라고 결심해 본다. 아니 당장은 원두커피라도 천천히 갈아 마시고, 에코백을 들고 먼 길을 돌아 시장에나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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