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의 일이다. 옛날이라고 하기에는 뭐하지만 스마트폰도 없었고 일베도 소라넷도 몰랐던 시절이었다. 강남역 사건 한참 전이었던 만큼 서점에 페미니즘 코너가 따로 있지도 않았다. 선거 포스터에서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란 글귀를 본다는 건 상상조차 못하였던 시절이었으니 지금과는 꽤 다른 시대였나 보다. 여대에서 강의를 할 때였는데 한 학생이 수업용 인터넷 카페에 익명으로 고민을 남겼다. ‘남자 친구가 이상한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내용이었다. 상대는 연애를 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찍는 그런 수준의 사진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데 이런 애인을 계속 사귀어야 하느냐는 거다.
음란사이트에 자기 사진이 떠돌아다닐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강사에게까지 공유하는 이유는 단칼에 애인과 헤어지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다른 여성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해서였다. 수업시간에 이를 언급하니 다른 여성들의 의견에도 어정쩡한 모습이 있었다. 연인들끼리 신뢰가 있다면 충분히 요구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낭만적 의견에 나름의 공감대가 있을 정도였다. 당시에도, 아니 훨씬 전부터 여성들의 벗은 몸은 포르노로 소비되었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디지털 장의사 등의 용어가 낯설었던 만큼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의식이 약했기 때문이었다. 사진 한 장이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그 과정에서 온갖 더러운 수식어들이 덕지덕지 붙고, 그래서 이를 해결하려면 돈은 돈대로 들면서 마음은 처참히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알고는 있어도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그런 짓거리를 하는 인간들은 한눈에 판별 가능한 쓰레기이기 때문에 애초에 사귀지 않으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12년이 지났다. 기계는 진보했고 ‘더러운 문화’는 진화했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남자들은 자기들끼리 모인 인터넷 공간에서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더 과감하게 즐겼다. ‘탐지기에 걸리지 않는 몰카’가 등장하고 쓰레기 행동을 하는 일부 남자들이 많아지면서 여성들은 모든 남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정신 차린다고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는 상상으로도 불가능해졌다. 구글 이미지에서 ‘길거리’ ‘일반인’을 검색하면 자신은 찍힌 줄도 모르는 평범한 여성들의 사진이, 혹은 연인들끼리만 알고 있어야 할 수준의 사진이 즐비하다. 그래서일까? 지난주에 한 여대에 특강을 가서 12년 전과 비슷한 질문을 받았는데 이렇게 말하니 모두가 박수를 쳤다. “사랑하든 말든 그딴 사진 찍자고 하면 당장 헤어지세요.”
그동안 ‘사랑해서’ 요구하는 줄 알고 순진하게 허락한 수많은 여성들이 얼마나 처참하게 당했는가. 그 결과 지금의 20대 남성들은 과거보다 훨씬 어린 시절부터 ‘여성들의 몸’이 대범하게 유통되는 공간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어 길들여졌다. 아무 생각 없이 여성을 몰래 찍고 공유하는 걸 인정 행위로 여기다 보니 엄마, 누나, 여동생까지 그 대상이 되기도 한다. 잘(?)하면 상업적 이득까지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을 유년기 때부터 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사랑하니까 너의 몸을 찍고 싶어”라는 말은 성립 불가능하다. 디지털 자료는 개인의 각오로 보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게 만천하에 증명된 세상에서 ‘나만 볼 건데 왜 걱정이야’라는 말 자체가 우습다.
12년간 이 사회가 어느 쪽으로 진화했는지를 진중하게 생각한다면 최근 벌어지고 있는 여성들의 놀라운 목소리를 함부로 해석해선 안된다. 진화하는 몰래카메라만큼 작금의 상황은 끔찍하다. 이 객관적인 공포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이들이 주말마다 대규모 시위를 열어 거친 언어를 내뱉기도 하고 심지어 상의를 탈의하기까지 한다. 눈살이 찌푸려지는가? 존엄한 인간으로서 평범하게 살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들의 목소리와 행동이 평범할 리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