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다양성 협약과 문화비전2030

2019.01.03 20:32 입력 2019.01.03 20:33 수정

지난해 12월10일부터 4일간 프랑스 파리에서 제12차 문화다양성 보호 및 증진 협약 정부간위원회가 열렸다. 24개 대표 위원국을 포함해 참관 회원국 및 민간 전문가, 시민사회 활동가 등 250여명이 참석해 역대 가장 많은 참가자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유엔이 주관하는 국제기구 연례회의라는 것이 통상 사전에 조율된 내용들을 공개하고 의견을 수렴하여 최종 결의문을 채택하는 것이 관례여서 다소 지루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의제별 각국의 발언들이 갖는 함의와 그 행간의 의미를 따져보면 매우 흥미진진하다. 특히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지원을 하는 국가들과 지원을 받는 국가들, 영어권 국가들과 프랑스어권 국가들, 그리고 이 양자에 속하지 않는 제3영역에 속한 국가들 간에 문화다양성을 놓고 벌이는 논의들은 세계문화 현 흐름의 구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세상읽기]문화다양성 협약과 문화비전2030

유네스코 문화다양성 협약 회원국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상은 매우 높은 편이다. 국가부담금이나 비공식 지원금 규모도 아주 높은 편이고, 본부의 의제들을 국가별로 이행하는 데 있어 솔선수범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과 인도네시아와 함께 대표 위원국이어서 이번 회의에서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이해와 요구를 본부에 잘 전달하고 있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팔레스타인이 2011년에 유네스코 회원국으로 가입하면서 전체 예산의 22%를 부담했던 미국이 탈퇴하는 바람에 현재 유네스코 본부의 재정 상태가 악화일로에 있고, 일본 역시 아직 문화다양성 협약 비준을 하지 않은 터라, 프랑스어권 국가를 제외하면 이 협약에 대한 한국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문화다양성 협약은 2005년 체결 당시 스크린쿼터 문제로 사회적 쟁점이 되었을 뿐, 정작 2010년 국회 비준 이후에는 문화 및 사회정책의 중요한 국제협약으로 간주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 문화다양성 협약은 국회 비준 이후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문화 정책 중심으로 한정해 다뤄지고 있어 아쉽다. 사실 문화다양성 협약 안에 담긴 내용들은 전 지구적 문화다양성을 구성하는 문화적 표현, 언어, 정보, 기술 등등의 세부 영역에 대해 국가와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번 12차 회의에서 다뤄진 의제들과 쟁점토론만 보아도, 문화다양성의 의제들이 광범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8년도 본 협약의 글로벌 리포트에는 “디지털시대의 문화적 표현에 대한 로드맵 가이드라인 개발” “문화정책 디자인과 모니터링” “예술가 지위에 관한 권고 설문” “문화상품/서비스의 흐름에 대한 지표 개발” “국가개발계획에 문화-창의산업 통합” “성평등 관련 정보 수집 및 프로그램 진행” “예술가 표현의 자유 관련 활동”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4일간 회의 중간중간에 배치된 토크쇼 역시 “인공지능: 크리에이터들에게 새로운 작업환경인가” “디지털 환경에서 문화다양성 증진을 위한 가이드라인 이행 로드맵” “당신의 예술적 자유란 무엇인가?”와 같은 최근 문화정책의 주요 사안들을 다루었다. 문화다양성 협약의 국제 담론은 국내 문화정책에서 간주하고 있는 범위와 영역을 훨씬 뛰어넘고 있는 것이다. 문화다양성은 이제 더 이상 다문화 정책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정부의 블랙리스트 사태와 올 초 들불같이 일어난 미투 운동의 파고를 딛고 새로운 국가문화정책의 근간을 다시 세우는 ‘문화비전2030 : 사람이 있는 문화’를 최근 만들었다. 민간 전문가 20여명이 주도해서 만든 보고서의 3대 가치는 자율성, 다양성, 창의성이다. 이번 정부간위원회 회의에서 다루었던 많은 내용들, 특히 권리로서 문화다양성, 예술인의 표현의 자유, 젠더평등과 여성예술인의 참여, 창의성 확산을 위한 문화정책의 역할, 협치와 협력을 위한 문화 거버넌스는 ‘문화비전2030’의 9대 의제들과 47개 대표과제의 중요 내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비전에 담긴 의제들만 잘 실행해도 한국은 문화다양성 협약을 가장 모범적으로 실천한 나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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