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진 다리

2020.05.25 03:00 입력 2020.05.25 03:01 수정

이상적인 사회의 추상적 가치들을 실현하기 위해, 다른 것과는 구분되는 어느 한쪽에 진영을 만들고, 특정 의제를 사회 전체의 필요와 이익에 결부시키는 일. 이념을 통해 사회 전체를 이롭게 하려고 다리를 놓는 일이 사회운동의 패턴이다. 몇 가지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정의기억연대 논란으로 인해 이념과 공공을 연결하던 다리는 끊어진 것으로 보인다. 여당과 시민사회는 끊어진 다리 앞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지향하는 이념도, 공공의 이익도 그대로 있지만, 끊어진 다리에 골몰하는 모양이다. 다리가 왜 끊어졌는지 알아야 다시 연결할 수 있다. 또 다리는 누구나 건널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튼튼하고 양방향으로 통행할 수 있는 다리가 필요하다.

최정묵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최정묵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튼튼한 다리. 2017년 어떻게 하면 튼튼한 다리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고,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인 ‘시민공익위원회’ 설치에 관한 논의였다. 시민단체·기부단체 등 전국에 산재해 있는 공익법인을 통합하여 관리하고, 공익성·투명성·객관성 등을 지원하고 강화하기 위해 ‘시민공익위원회’를 신설하자는 논의가 활발했지만 야당과 법조계 일부의 반대여론에 부딪혔다.

이미 영국, 호주, 일본 등에서는 공익위원회가 운영되고 있다. 지난주 이와 관련한 여론조사를 했다. ‘시민공익위원회’ 신설에 대해 공감한다(75%)는 응답이 공감하지 않는다(17%)는 응답보다 압도적으로 높게 나왔다(서울신문·공공의창). 한국 사회는 공익법인이 권력형 비리의 뇌물공여 또는 직권남용의 수단으로, 대기업그룹의 편법증여 또는 지배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건들을 겪었다. 장애인 보호시설의 인권침해, 재단 임직원들의 수백억원대 횡령 등의 문제도 있었다. 이제 공익법인의 감독행정을 개혁하자는 목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다. 이번에야말로 시민공익위원회법이 21대 국회에서 충분한 숙의와 토론을 거쳐 통과되길 기대한다.

양방향 통행이 가능한 다리. 다리는 통행이 원활해야 한다. 같은 조사에서 최근 일본군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가해국의 책임과는 별도로 한국과 일본의 국민과 학생들이 건전한 교류와 공동행동 등의 활동이 좀 더 확대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는 응답(59%)이 가장 많았고, 아직은 시기상조(11%), 나중에 검토할 일(26%) 등으로 나타났다. 할머니는 집회 외에도, 양국의 국민이 자주 만나 서로의 이해를 돕고 지혜를 모으는 일이 효과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오랜 활동에서 깨닫고 통찰하신 것으로 보인다. 시민의 목소리와 단체의 목소리가 양방향으로 통행하고, 한국과 일본의 국민과 학생이 양방향으로 통행하는 다리를 만들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렇게 될 때, 이용수 할머니는 일본군 피해자로 대상화되지 않고, 온전히 평화·인권운동가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일본군 피해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이 폄훼되어선 안 된다. 제도를 보완하여 튼튼한 다리를 만들고, 새로운 활동으로 양방향 소통이 원활한 다리를 건설하는 것이 본질적인 대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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