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세상

2021.02.11 03:00 입력 2021.02.11 10:07 수정

어제는 꿈을 꾸었다. 신간 제작이 막 끝나서 출판사에 책이 도착했는데, 첫 페이지부터 오·탈자가 수십개. 가슴이 철렁하고 정신이 아득해진다. 인쇄된 책 전부를 다시 제작해야 한다는 낭패감과 함께 비용과 시간은 어쩌나 하는 걱정이 밀려온다. 꿈에서 깨어나서는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아직도 이런 악몽에 시달리다니 하는 생각에 헛웃음이 났다.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라떼는 말이야…” 하고 나 때의 경험을 무용담으로 떠벌리기는 싫지만, 확실히 그때를 겪은 편집자는 요즘의 젊은 편집자와는 텍스트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우리들 늙은 편집자는 인쇄 직전에 발견한 오자 때문에 필름 판을 오려붙이고, 없어진 사진식자 한 글자를 찾으려고 편집부 책상 밑을 끙끙대며 수색하곤 했다. 이런 경험을 가진 편집자와, 모니터 화면에서 키 몇 개로 간단히 오·탈자를 수정하는 편집자에게 글자 하나, 문장 한 줄은 같은 무게일 수 없다. 문자는 의미를 담은 기호이기 이전에 손에 잡히고 바람에 날리는 물리적 실체였다. 약병에서 흩어진 알약 비슷했다고 할까. 이제는 전자책까지 흔해져서, 글자 알갱이와 글줄이 의미에 앞서 물리적 대상이라는 관념은 더욱 희박해졌다.

주변사람들에게 늘 하는 이야기지만, 사람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존재다. 그리 정신적이거나 관념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얘기다. 우리는 멋지게 플레이팅하여 알록달록한 가니시로 장식한 요리사진을 먹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실제로는 다 식은 국밥을 숟가락으로 뜨면서도 광고모델 앞에 놓인 먹음직스러운 설렁탕을 꿈꾼다. 우리가 정말로 소비하는 것은 기호들이다. 우리는 기호를 먹고 아무개라는 ‘이름’과 관계를 맺는다.

한 사람의 몸이 감당할 수 있는 관계와 사물의 양은 일정하지만, 무형의 기호는 무한하다. 그것은 모니터의 글자처럼 언제든 수정 가능하고 대체할 수 있으며, 한없이 쌓아둘 수도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제 물리적 대상이나 관계마저 무한히 늘릴 수 있는 기호처럼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용량을 넘어서 대상을 계속 유지하고 늘릴 수 있는 방법은 기계에 위탁하는 것이다. 80년 인생은 너무나 빤한데 욕망의 크기는 200년 분이어서 스마트폰과 배달앱과 SNS로 되도록 많은 일을, 되도록 많은 관계를 담아내려 한다. 하지만 이렇게 초과된 욕망을 처리해주는 시스템 뒤에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하고 발로 걸어야 하는 존재이기에, 기계의 배후에서 그것을 처리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누군가 대신 움직여야 한다는 이치다.

‘비대면 경제’처럼 허황된 사고방식 뒤에는 살과 뼈로 이뤄진 이런 사람들이 숨어있다. 우리들의 초과된 필요를 처리하기 위해 택배회사는 더욱 싼 배송료로 더 많은 물품을 유치하고, 택배노동자들은 하루 수십개의 택배상자를 더 날라야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물리적 삶을 타인에게 위탁하고 점점 무능력한 존재로 변해간다. 포장지를 뜯지 않으면 북엇국 한 그릇도 끓이지 못하는 무능력자가 되어, 대량생산과 배달 플랫폼에 저당 잡힌 삶을 편리한 세상이라고 찬탄하고 있는 셈이다.

세상이 인공지능(AI)에 의해 굴러가고 사물인터넷이 편재하는 곳이 된다 해도 인간이 물리적 세상에서 먹고 자는 존재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내 삶을 누군가에게 위탁하고 싶지는 않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일상이 이렇게 변해가고 있는 것을 압축적으로 재연하는 연극처럼 느껴진다. 우리 삶이 이미 이렇게 위탁된 상태임을 ‘비대면 경제’라는 말로 선언하는 듯하다. 우리는 결국 영화 <매트릭스>의 생체전지 신세가 되는 것일까? 매트릭스의 다른 이름은 ‘플랫폼’으로 불러야 할 것이다. 인간의 삶을 빨아들인다는 점에서 둘은 달라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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