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남’이라는 집단에서 벗어나기

2021.04.27 03:00 입력 2021.04.27 03:02 수정

30대 중반인 자로서, 이제 20대 때 감정은 떠올려야 하는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때의 불안과 공포, 분노가 생생하다. 모든 것이 절망적이고 자신을 믿을 수 없는 시기였다. 2008년 금융위기의 그늘로 인한 구직의 어려움, 터무니없어 보이는 집값은 막막함을 부추겼다.

최서윤 작가

최서윤 작가

최악은 잦은 주기로 갱신된다. 한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2020년 하반기 구직자들이 느낀 구직난 수준은 5년래 가장 심각했다. 그 와중에 종합주택 매매가격지수, 전세가격지수 모두 가파르게 상승했다. 20대의 공포와 절망감이 더욱 커지지 않았을까.

정치권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내가 20대 때 느낀 갑갑함에 정치 상황도 큰 몫을 했다. 세상이 좀 달라지길 바랐는데, 기득권을 대표하는 정당이 매번 집권하고 득세했다. 기득권 아닌 사람들마저 ‘빨갱이’에 대한 공포증으로 특정 정당만 지지하는 게 지겹고 답답했다. 어쩌면 지금의 20대가 ‘토착왜구’ 공포증을 가진 맹목적인 여당 지지자를 보며 느끼는 감정도 비슷하지 않을까?

‘빨갱이’와 ‘토착왜구’를 동일 선상에 두는 것이 아니다. 지지자의 맹목적인 행태를 돌아보자는 거다. 공포증 때문에 한 정당만 지지하고, 심지어 잘못한 일마저 덮어두고 옹호하는 행태가 청년들에게 어떻게 비칠까? 지금의 정부와 여당도 이제는 기득권이다. 국민 평균을 뛰어넘는 재산, 의회에서의 영향력을 보라. 그럼에도 아직도 스스로가 핍박받는 약자라고 생각하는 정부·여당 인사들을 보면, 삶이 팍팍한 입장에서는 조롱하고 싶지 않을까?

물론 감정이 이해된다고 행동마저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나는 권위주의 세력의 득세를 퇴행으로 본다. 정부·여당에 신물 난다고 또 다른 기득권에 표를 던지는 거대 양당 중심 사고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 ‘20대 남성’으로 묶이는 집단이 자기 삶을 나아지게 하는 정책을 제안하기보다, 다른 집단도 같이 고통을 받게 해달라는 데 열심인 것도 속상하다. 하지만 적어도 그에 대한 반응이 “민주화돼서 살 만하니까 입을 막 놀리네” 따위여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방어적인 태도는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의 반감을 부추기고, 무엇보다 너무… 꼰대 같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적인 자신이 꼰대일 리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더 속 터진다.

상대가 배격해야 할 집단에 속한다는 의식을 쇄신하면, 고통받고 있는 한 사람을, 그의 삶의 조건과 감정을 떠올릴 수 있다. 방어 태세를 갖추기에 앞서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떨까’ 상상력을 동원해볼 수 없을까? 타인의 상황을 보며 맥락을 이해하고 감정을 헤아리는, 인간의 능력을 끌어내는 거다.

아무래도 집단주의가 너무 강할 때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20대 남성들도 ‘20대 남성’이라는 집단에 너무 소속감을 가지지 않는 건 어떨까? 20대 남성이라는 정체성을 갖는 것과 ‘20대 남성’ 집단에 속하는 것은 다르다. 개인으로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교류하고 배우며 자신의 세계를 넓히는 삶, 자기 상처와 감정을 직시함으로써 더 많은 이들과 연결되는 삶은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 내 경우, 그런 삶이 덜 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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