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들이 하는 일은 대부분 세상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실관계를 규명하고 해석하며 논증하는 과정일 테지만, 실제로 다양한 연구자들이 공식 석상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는 것인 듯하다. 아이러니한 것은 가짜 뉴스, 거짓 정보를 퍼뜨리는 사람들도 이런 ‘연구자’의 지위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양상은 대한민국에서 교수나 연구자들이 가진 전문성이 일종의 자원임을 상기시킨다. 서로의 의견을 개진하며 논쟁할 때 적극적 자원을 활용해 신뢰도를 확보하는 것이다.
세상엔 수많은 전문가의 말이 버즈 텍스트처럼 양산되어 뒤덮여 있다. 최근 전문가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거짓 뉴스를 만들어낸 온상은 고 손정민 학생 사건을 부풀린 유튜버들이나 안티 백신 정도인 듯하다. A와 B 등으로 이니셜만 표기된 프로파일러부터 수많은 전문가의 말이 여러 의혹을 양산하는가 하면, 뜬금없이 안티 백신론자가 독성이 없는 스파이크 단백질 전파를 피하려면 솔잎차가 좋다는 허무맹랑한 소리까지 나오는 마당이니.
이러한 논쟁은 사회의 정의나 진리를 담보해주지 않는다. 말장난처럼 들리겠지만 거짓의 반대는 ‘사실’이 아니라 ‘거짓이 아님’에 불과하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사건은 소설처럼 뚜렷한 인과관계 굴레 속 필연적 구성이 아니라 그저 우연의 집합이다. 앞서 예시로 들었던 프로파일러의 이야기나 솔잎차 이야기를 되새겨보자.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전문가들의 이야기로 열심히 반론한다 한들 무슨 찬란한 진실을 마주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군다나 이런 거짓 뉴스 하나를 지운다고 한들 메신저는 별 타격을 받지 않는다. 앞서 이야기했듯 그들은 그저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그럴듯한 전문가의 이름을 자원으로 사용했을 뿐이며 그들의 이야기는 발화 순간에 이미 효과를 거두었으니까. 그들은 적극적으로 정부나 정당을 비판하고 자기를 정의의 편으로 프레이밍한다.
문제는 ‘효과’다. 한번 뿌려진 거짓 정보는 해당 정보를 바탕으로 한 메시지의 신봉자를 만들어낸다. 고 손정민 학생 사건의 진상과는 아무 상관없이 경찰 권력을 비판하는 데 몰두하며 시위까지 나온 사람들이나, 솔잎차의 효능과는 아무 상관없이 그저 백신을 비판하고 안티 백신 움직임에 몰두하는 사람들까지. 그들에게 진실을 알려주는 건 거짓을 퍼뜨리는 것보다 더욱 수많은 자원이 소비된다. 도대체 이 자원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발언자들은 그 어떤 것들도 책임지지 않으며 메신저로서 지위를 누적해가고 있다. 연구자나 전문가들이 몇몇 공식 지면이나 SNS 등을 통해 겨우 거짓 정보들을 제거해 나가는 것이 고작이며,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논쟁을 위한 거짓 지우기 공방은 사회의 신뢰체계를 무너뜨린다. 사회가 안정적으로 굴러가기 위한 최소한의 신뢰자본을 무너뜨리며 사회 그 자체를 거부한 채 어떠한 이야기도 듣지 않는 사람을 설득하기 위한 자원은 어디서 나올 수 있겠는가. 진실과 거짓엔 옳고 그름이 있을 뿐 정치적 스탠스란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거짓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메신저는 정의도 올바름도 아닌, 사회를 무너뜨리는 사기꾼에 불과하다. 그들은 소실된 신뢰자본을 언젠가 책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