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는 그것 자체로 정상

2021.08.16 03:00 입력 2021.08.16 03:05 수정

며칠 전 경기도 100만 도시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공무원과 대화를 한 적이 있는데, 그는 도시 재생, 마을 만들기 사업은 성과를 내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참을 듣다 보니 지방정부의 사업계획과 예산지원이 시민의 자발성과 만나는 사업이었지만, 사업의 과정은 갑을관계에서 벌어지는 용역과정처럼 들렸다. 대개 이러한 사업은 성공적으로 기술된 결과보고서와 극히 제한적인 현장성과만 남는 경우가 많다. 자치와 관련된 지원사업을 중앙(지방)정부가 구체적인 내용까지 다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거나, 사업의 모든 과정에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부담을 줄이면 어떨까. 그렇게 되면 사업결과의 성패는 당연히 주민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고, 그에 따라 사업 성패의 기준도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변화과정에서 인내가 필요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타율로 수백억원의 연봉을 받는 야구선수도 결국은 타석에 10번 들어서면 2~3번밖에 안타를 치지 못한다는 사실이 자치사업에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최정묵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최정묵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얼마 전엔 강원도 군 단위의 자치단체를 방문했는데, 우연히 양돈 단지의 악취가 큰 문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조금 들여다봤다. 양돈 단지의 고도가 주거지보다 높았고 바람길도 지형에 의해 일부 막혀 있었다. 여기에 아프리카 돼지 열병까지 더해져 상황은 심각했다. 군청과 주민들은 악취 감소시설 설치부터 양돈 농가 폐업지원까지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자기 자신의 삶의 터전이 훼손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행정처분을 기다리듯 지켜만 봐야 했다는 점이다. 양돈 농가와 인근 주민이 문제 해결 방법을 함께 결정하고,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과 지분을 공유할 수 있도록 지방정부가 경제적·행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면, 창의적이고 서로 신뢰할 만한 방법이 제시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달 말, 지방자치데이터연구소에서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전화 여론조사를 했고, 다소 대비되는 질문 두 개를 던졌다. ‘국가의 질서 유지가 시민의 자유로운 삶을 보장하는가’라는 질문에 74%가 그렇다고 답했고, 26%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이번에는 ‘중앙정부는 지방정부를 지원하되 간섭하지 말 것’이라는 주장에 대한 공감 여부를 물었다. 공감한다는 여론이 64%, 공감하지 않는다는 여론이 36%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를 단순하게 보면, 국가의 역할이 시민의 자유로운 삶을 위해 필요하지만, 지방정부의 역할까지 간섭하는 일은 적절하지 않다는 여론으로 볼 수 있다. 조사 결과를 좀 더 해석해 보자면, 국가 행정이라는 거시세계와 주민자치라는 미시세계는 작동원리가 서로 다르니,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여론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양자역학에서 전자가 이해할 수 없는 패턴으로 움직이듯, 주민자치도 국가 행정에서 볼 때 이해할 수 없거나 불안정해 보여도 그것은 그것 자체로 정상일 수 있다.

자치는 행정이 아니다. 따라서 당연히 사무나 관리대상도 아니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지방정부가 지역주민에게 적극적으로 지원하되 간섭을 최소화할 수 있다면, 자치는 지금보다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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