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에는 죄가 없다

2021.09.30 03:00 입력 2021.09.30 03:04 수정

[이범의 불편한 진실] 수능에는 죄가 없다

대선이 가까워져서 그런지 수능 폐지, 절대평가화, 자격고사화 등등 온갖 설이 나돌고 있다. 최근엔 수능 수학 1타강사로 알려진 현우진씨가 수능이 7, 8년 내로 붕괴될지도 모른다면서 ‘그 전에 떠야죠’라고 말해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수능은 폐지될 리도, 붕괴될 리도 없다.

이범 교육평론가·<문재인 이후의 교육> 저자

이범 교육평론가·<문재인 이후의 교육> 저자

한국에서는 입버릇처럼 ‘입시 위주 교육’을 비판하지만, 입시는 매우 보편적인 제도다. 여기서 ‘입시’란 한국의 수능처럼 고교 밖의 기관이 주관하는 시험(external exam)을 뜻하는데, OECD 35개국 가운데 33개국에 존재하며, 심지어 대학이 평준화된 나라들에도 입시가 있다. 내신성적을 활용할 수도 있을 텐데, 왜 다들 입시를 볼까? 내신에 중대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고교의 X교사가 매긴 90점과 B고교의 Y교사가 매긴 90점이 동등한 것일까? 이는 학생들을 서열화하겠다는 사악한 의지의 발로가 아니라, 매우 상식적이고 정당한 의문이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동일한 문항을 묻는 ‘입시’가 존재하는 것이다.

학생들을 수능 성적으로 ‘한 줄로 세우기’ 때문에 경쟁이 심해진다거나, 대학이 서열화된다는 주장은 모두 터무니없는 미신이다. 지난 20여년간 정부는 ‘여러 줄 세우기’를 모토로 수시전형을 늘리고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고통과 부담은 여전하고, 대학 서열이 흔들릴 조짐은 전혀 없지 않은가? 사실 학생 서열화와 대학 서열화는 전혀 별개의 현상이다. 세계 최고의 교육선진국인 핀란드는 대학이 평준화되어 있지만 학생을 서열화해서 선발한다. 학과별 지원자들을 입시(국가고시와 본고사) 성적으로 ‘한 줄 세우기’ 한 다음에 성적순으로 자르는 것이다.

지난회 칼럼 ‘대학 서열은 돈의 서열이다’에서 지적했듯이, 대입 경쟁의 원인은 시험이 아니라 대학 서열이다. 그리고 대학 서열의 핵심은 ‘학생 1인당 투입되는 교육비’로 대변되는 재정 격차, 그리고 그로 인한 ‘교육의 질’의 격차에 있다. 비유하자면 맛집 앞에 손님들이 길게 줄 서 있는 걸 ‘여러 줄 세우기’로 바꾼다고 해서 맛집의 인기가 달라질 리는 없지 않은가? 정부는 ‘상향 평준화’를 목표로 삼아 맛집을 늘려야 했다. 그런데 엉뚱하게 ‘줄 세우는 방법’을 바꾸는 데 골몰해온 것이다.

수능은 ‘교육적 타당성’이 낮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수능 이전의 대입학력고사에 비해 단순암기의 비중은 많이 줄었다. 하지만 객관식이다 보니 평가할 수 있는 역량의 폭이 좁다. ‘정답이 딱 하나 존재하는 질문’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이 사회를 발전시킨다는 명제의 타당성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서술하시오’라는 역사 입시문항(영국)이나 ‘오지 탐험 여행상품의 장점과 위험을 소개하는 기사를 작성하시오’라는 영어 입시문항(핀란드) 등과 비교해 보라. 질적 차이가 확 느껴진다. 수학 교육의 목표가 ‘논리력 함양’이라고 하면서 정작 논리(풀이과정)를 평가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그래서 입시의 대세는 논술형이다. OECD에서 객관식 입시를 시행하는 나라는 6개국(한국·미국·일본·터키·칠레·멕시코)에 불과하다. 그런데 한·미·일의 객관식 입시 가운데 한국의 수능이 가장 영향력이 강하다. 일본의 객관식 입시(센터시험)는 본고사의 위세에 눌려 있고, 미국의 객관식 입시(SAT·ACT)는 고교 교육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구조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연중 6~7회 실시되고 응시 시기와 횟수가 학생 재량이다 보니, 고교에서 입시 대비 문제풀이를 해줄 수가 없는 것이다. 반면 한국의 수능은 고교 교육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수능을 미국식이나 유럽식으로 진화시키는 것이 논리적인 해법일 것이다. 그런데 미국식으로 ‘고교에서 수능 문제풀이를 해주지 않겠습니다’라고 선언하면? 사교육이 급증할 것이다. 유럽식으로 ‘수능 문항을 논술형으로 바꾸겠습니다’라고 발표하면? 역시 사교육이 급증할 것이다. 이로 인한 사교육 우려를 감당할 정치세력은 현재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결국 뫼비우스의 띠처럼 제자리로 돌아오고 말았다. 앞으로도 사람들은 수능을 욕받이로 삼아 욕하고 동네북 삼아 칠 것이다. 하지만 대학 서열을 완화하는 큰 개혁을 하지 않는 한, 수능을 폐지하기는커녕 발전적으로 진화시키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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