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보건복지부 폐지’도 나올라

2022.02.16 03:00 입력 2022.02.16 03:02 수정

1955년 12월1일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흑인여성 로자 파크스는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기를 거부했다. 갈등이 생기자 버스운전기사는 경찰에 신고했고, 그녀는 몽고메리 시법에 따라 체포되었다. 이것은 백화점 재봉사였던 한 흑인여성이 쏘아올린 작은 공이었다. 그녀가 체포된 후 미국 남부 흑인착취제도 균열의 출발점으로 평가받는 몽고메리 버스승차거부운동이 시작되었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

이창민 한양대 교수

영웅담을 얘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오히려 궁금한 건 이거다. 미국 동부 버지니아주에 아프리카에서 생포한 흑인 20여명을 실은 배가 도착한 1619년 8월부터 시작되었다던, 그 강고한 흑인착취제도가 왜 하필 이때부터 붕괴되기 시작한 것일까? 수백년 흑인착취의 역사에서 용기 있는 로자 파크스가 한둘이었을까?

다론 아세모글루 미 매사추세츠공대 교수가 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이에 대해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우선 1956년 6월 미국 대법원이 앨라배마의 인종차별행위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다. 연방정치가 남부 흑인들을 포용한 것이다. 두 번째, 1940~1950년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경제성장으로 시카고, 디트로이트, 뉴욕 등지로 떠나는 남부 흑인의 수가 연평균 10만명에 달했다. 북부, 동부, 서부의 경제가 흑인 대이동을 받아들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부 농업부문의 기술혁신도 함께했다. 앨라배마 등의 대농장에서 면화 생산의 절반가량이 기계화되면서 떠나는 흑인을 잡기도 어려웠지만 굳이 잡을 이유도 없었다. 남부의 농장주들이 저항을 진압하면서까지 착취적 제도를 고수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역사에 가정은 부질없다지만 당시 미국에 좋은 정치와 좋은 경제가 없는 로자 파크스만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녀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엄청난 역풍에 휘말렸을지 모른다. 유혈진압에 이은 더 강고한 착취적 제도가 미국의 현재 모습이었을 수도 있다.

국정운영, 사회진보, 갈등해결에 시원한 한 방은 없다. 국가와 시민사회, 시장 사이의 극도로 좁은 균형공간을 찾는 예술행위일 뿐이다. 코로나19 시대의 방역과 경제정책을 보자. 꽤나 성공적이라고 평가받았던 K방역은 지금 과도한 통제와 자영업자에게의 책임전가라는 비판에 직면에 있다.

경제위기를 초기에 잡아야 한다며 대부분의 국가는 엄청난 재정과 통화를 쏟아부었으나 부채증가와 주식, 부동산 가격상승이라는 부작용을 낳았고 이제 시장은 자산가격의 급격한 하락을 걱정한다. 과연 방역에서 통제와 자율의 완벽한 균형은 어디인가? 정부는 경제위기의 시작점에 어떻게 했어야 하나? 이래서 어렵다는 것이다. 좁은 균형에서 한끝만 왼쪽이면 독재정부의 나락으로 한끝만 오른쪽이면 무정부 사회로 휩쓸리는 것이 위기 시 통치의 본질이다. 그런데 그 누구도 정답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거봐 내가 뭐랬어? 결국 이렇게 된다고 했잖아”라는 후견지명의 훈계도 감당해야 한다.

언젠가부터 한국사회에는 꼰대 등 상대방의 입을 틀어막는 언어가 난무한다. 키보드 워리어라 불리는, 오프라인에서는 한없이 온순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칼춤 추는 사람들만 즐비하고, 이들에게 잘한다 잘한다 해주는 팬덤이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들이 쏘아올린 분노를 정치인들이 증폭시킨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피곤하다. 내 편이 필요하고 남의 편에 대한 막말에 힐링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게 정치를 삼키는 순간 갈등의 촉발과 역풍의 사이클은 숨 가빠진다. 불과 몇 년 전 미투운동이 한국사회를 휩쓸었었는데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여성가족부 폐지이다.

여기 슬픈 정치시나리오가 하나 있다. 한국사회의 미래 아포칼립스 중에 하나는 인구고령화이다. 2015년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비중이 73%, 노인인구 13%였다. 2035년에는 각각 60%, 29%, 2055년에는 각각 52%, 39%이다. 국민연금도 소진되어 간다.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생산가능인구가 노후 대비가 부족한 노인인구를 부양해야 하는 것이다. 갈등의 지점은 명확해 보인다.

국가가 우리에게 해 준 게 뭐 있냐는 생산가능인구와 그래도 믿을 건 국가뿐이 없다는 노인인구의 갈등이다. 아마 미래의 일곱 자 선거공약의 끝판왕은 ‘보건복지부 폐지’가 될지 모른다. 갈라치기와 세대 포위에 정치적 효능감을 느낀 정치권이 이 카드를 만지작거리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국가의 리더는 칼날 위를 걷는 긴장감을 가지고 국민의 감정보다 반보 앞서 나가야 한다. 갈등의 한복판에서 같이 칼을 휘두를 사람은 키보드 워리어 중에서 찾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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