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 레이스에서 ‘20대 남자’가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정치권은 20대 남자 지지율에 각별한 관심을 표하고 있다. 물론 선거 판세를 이들이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20대 남자의 내부 구성이 복잡하기도 하고, 선거 구도는 정권심판론을 중심으로 짜여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논의다. 그럼에도 청년, 특히 20대가 보수세력 쪽으로 돌아선 것은 중대한 변화다.

20대 남자의 정치성향을 보면서 그들이 혐오정치의 기반이 되고 있다고 탄식하는 이들도 있다. 특히 윤석열 후보의 ‘여성가족부 폐지’ 한 줄 공약이 남녀 갈라치기 아닌가 하는 우려가 많이 제기되었다. 그런데 연이어 등장한 ‘성범죄 처벌 강화, 무고죄 처벌 강화’ ‘병사봉급 월 200만원’ 공약까지 묶어서 보면, 혐오정치 공약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20대 남자를 겨냥하면서도, 여성들 입장도 어느 정도 의식한 것 같다. 20대는 남녀 모두 공정성에 민감한 세대이고, 이 기준에서 민주당 정부에 대한 비판의식이 강렬하다. 특히 20대 남자의 감정은 더욱 예민해진 상황이다. 청년세대가 기존 민주화세력이나 진보세력의 공정성과 도덕성 잣대에 대해 비판적인 것은 누적된 사건들의 결과다. 20대 남자들로부터 새로운 시대정신의 흐름을 읽어낼 필요가 있다.

20대 남자가 제기하는 공정성 문제에는 젠더 정치와 기회의 문제가 섞여 있다. 젠더 정치 차원에서 남자를 계몽과 감시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데 대해 20대 남자들은 억울하다는 감정을 꾸준히 쌓아 왔다. 대학에서는 몇 년 전부터 강의나 학생지도에서 남학생들의 감정도 조심스럽게 살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초·중등 교육 현장에서의 남학생들의 집단 감정은 더욱 심각하다고 한다. 당장은 여성가족부가 반감의 표적으로 떠올랐지만, 표적은 앞으로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20대 남자가 느끼는 기회의 공정성 문제는 그간의 경제환경 변화를 감안하여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근 청년 노동시장에서 공공부문 직종의 비중이 매우 커졌다. 이제 ‘양성평등채용목표제’에서 정한 목표가 남녀 모두에게 설득력 있는 공정성 기준이 되기 어려워졌다. 로스쿨·의대·약대·한의대 입학에서 남자가 불리하다는 주장도 강하다. 특히 약대의 경우 여자대학에 정원이 많아 남학생에게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20대 남자에게 주어진 병역의무는 인생의 출발선에서 엄청난 핸디캡으로 작용한다고 인식된다. 출생율 급감과 노동시장 변화 속에서 병역 문제는 군가산점 문제를 다투는 차원의 문제를 넘어서고 있다. 20대 남자의 인구 비중이 줄어들면서 국가가 그들 개인에게 부과하는 부담이 과중하게 느껴지고 있다. 본래 공화국은 폭넓은 자유시민 전사를 기반으로 한 체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20대 남자들은, 공동이익의 비용을 자신들에게만 부담시키고 있지 않는가, 과연 공화주의가 작동하고 있는가를 묻는다.

불공정을 느끼는 20대 남자의 집단 심성이 형성되는 데에는 급진적 젠더 운동의 등장과 그에 대한 반작용이 중요한 계기가 된 것 같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남성 및 여성 혐오 단어가 상호작용을 일으키면서 증폭·확산되었다. 한국의 젠더 갈등은 세계적 기준에서도 심각한 수준이다. 그러나 정치권이 20대 남자를 젠더 정체성에 기초하여 지속적으로 조직·동원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대 남자 전체로 보면 내부의 이질성이 크고 여성이라는 상대편 존재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20대 남자가 경제적 격차에 대한 불만을 결집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들이 체제 균열의 동력이 될 수도 있다.

2010년대 이래 진행된 저성장과 불평등 심화는 1987년 이래의 민주화 체제의 성장연합을 뒤흔들고 있다. 지역 문제는 영호남 간 갈등 측면보다는 수도권으로의 집중에 따른 비수도권의 소외가 중요해지는 추세다. 그리고 세대 간 경제적 격차가 새로운 구조 문제로 부각되었다. 2010년대 들어 진행된 저성장, 고용기회 축소, 이중노동시장 진전 등은 청년 세대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청년 세대와 그 이전 세대 간의 벽이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 시기의 부동산가격 급등, 고위층의 ‘내로남불’ 언동은 지역을 넘어 20대 남자의 집단 감정을 결집하는 중이다.

여성가족부 폐지 같은 공약은 아직은 자유주의적 반응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젠더 갈등에 세대 간 혐오감정이 결합하면 극우적 반동정치가 강화된다. 혐오정치가 경제적 기반을 갖추게 되면,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진다. 이제 20대 남자들이 공화적 자유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가가 공동체의 중대한시대적 과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