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의 신묘한 화법

2022.07.15 03:00 입력 2022.07.15 03:01 수정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

우영우(박은빈)는 변호사다. 서울대학교 로스쿨을 수석 졸업한 그는 국내 최대 로펌 중 하나인 한바다에 채용된다. 촉망받는 인재의 승승장구할 미래가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영우에게도 어려움은 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지닌 그는 ‘본인으로만 이뤄진 세계에 사는 데 익숙해’ 종종 소통에 서툰 모습을 보인다.

김선영 TV평론가

김선영 TV평론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큰 난관이다. 그럼에도 누구보다 “법을 사랑하고 피고인을 존중하는” 우영우는 승소율만 높은 변호사가 아니라 ‘진실을 밝히는 좋은 변호사’가 되기 위한 길을 꿋꿋이 걷는다.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오랜만에 만난 웰메이드 휴먼 법정드라마이다. 기존 법정물의 단골 클리셰였던 부패한 거대 권력과의 싸움, 잔혹한 강력 범죄, 처절한 복수 등은 등장하지 않는다. 특별한 설정을 부여한 원톱 주인공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웠으나 캐릭터의 매력에만 기대지 않고 법정물의 본령에 충실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우영우의 강한 면과 약한 면은 신입 변호사의 성장기에 자연스럽게 녹아있고, 한 화에 한 개씩 펼쳐지는 법정 에피소드에는 적절한 반전, 논리적 전개, 사회적 메시지가 고루 배합되어 있다.

이 같은 매력은 첫회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한바다에 입사한 영우의 첫 임무는 살인 미수죄로 기소당한 노년 여성의 변호였다. 선배 변호사 정명석(강기영)은 영우에게 일을 맡기며 검찰이 집행유예를 주려고 결심한 사건이니 그저 “피고인 옆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라”고 말한다. 영우를 동료 변호사가 아니라 ‘수동적인 장애인’으로 대하는 말이다. 그러나 영우는 적극적인 분석을 통해 명석이 놓친 쟁점을 찾아 사건의 방향을 새롭게 전환시킨다. 남편이 경제권을 다 틀어쥔 상황에서 피고인이 살인미수죄를 인정할 경우, 훗날 상속을 받지 못해 극심한 경제적 위기에 처할 것을 내다본 것이다. 명석은 그제야 자신의 무지와 잘못을 깨닫는다. 이 대면 신 안에는 법정드라마로서 신선한 관점, 비장애인의 차별적 시선, 피고인을 존중하는 우영우 캐릭터의 장점이 고루 녹아들어가 있다. 불과 3분 남짓한 신이다.

서사의 완성도가 회를 거듭할수록 점점 높아진다는 점도 놀랍다. 가령 이 작품을 호평하면서도 ‘천재 장애인 주인공 드라마’의 관습적 재현을 우려하던 시청자들에게, 드라마는 3회에서 오래 고민하고 준비한 답을 보여준다. 6세 지능의 자폐인 캐릭터를 등장시켜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그 이름처럼 얼마나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는가를 설명한 것이다. 장애인의 ‘다름’을 ‘특별함’으로 묘사하다 다시 우열의 위계로 환원시키는 재현의 모순에 대해 드라마가 얼마나 깊이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에피소드다.

5회는 더 흥미롭다. 초반 4회까지 영우의 장애를 극적 갈등 요인으로 적절히 묘사하며 소수자 차별 이슈를 제기해온 드라마는, 5회에 들어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아니라 ‘좋은 사람’이자 ‘훌륭한 변호사’로서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다. 장애는 이제 우영우의 자연스러운 특성 중 하나로 인지된다. “나로만 이뤄진 세계에 익숙해서” 타인의 의도를 읽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영우의 고백도 새로운 갈등 요소가 아니라 소통의 진전을 위한 과정으로 그려진다.

처음으로 마주한 패소의 결과에서도 장애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영우는 라이벌 변호사와의 경쟁에서 이기고 싶은 마음에 변호사로서 신념을 어기고 거짓말에 눈감았기 때문에 재판에 지게 된다.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지만, 실수는 성장의 발판이 될 수 있다. 영우는 이 치명적 실수를 겪고 난 뒤 뼈아픈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변호사님은 소송만을 이기는 유능한 변호사가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진실을 밝히는 훌륭한 변호사가 되고 싶습니까?” 재판 상대가 보낸 편지 속 질문은 영우의 깊은 반성을 이끌어내고 그를 한 단계 성장시킨다. 극본을 쓴 문지원 작가의 전작인 영화 <증인> 속 명대사,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화법은 따뜻한 동화풍을 유지하면서도, 실은 매우 섬세하고 예민하게 구축되어 있다. 하나의 성장드라마로서도, 장애인 서사로서도, 법정드라마로서도 매우 유려한 화법이다. 더 훌륭한 것은 이 모든 장점이 유기적으로 잘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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