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너나없이 0살이었다. 예외는 없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생물학적으로 0살을 정의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합쳐져 곧 수정란이 될 난자와 정자가 부모만큼 ‘낫살’깨나 먹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구중심처에 고이 숨겨져 있다 해도 세월의 더께를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춘기에 약 30만개이던 난자는 37세가 되면 2만5000개로 줄어든다. 폐경기인 약 51세가 되면 그 수는 1000개 밑으로 떨어진다. 슬픈 얘기지만 주인이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기능을 멈추는 거의 유일한 인체 기관이 있다면 그것은 난소다.
폐경기도 불현듯 찾아오지는 않는다. 30대 중반이 넘으면 난자에는 비정상 염색체, 미토콘드리아 돌연변이 유전체가 늘어난다. 여성에 비해 늦긴 하지만 남성도 40줄에 들어서면 정자의 운동능력과 수가 현저히 줄어든다. 이렇게 다치고 늙은 두 세포가 만나 0살이 되는 마법은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 그것은 수단껏 생물학적 나이를 낮추어 ‘최초’의 상태로 되돌리는 일이다. 그래야 종으로서 인간 혹은 한 생명체가 오롯이 유지될 수 있다. 심지어 단세포인 세균도 시종 젊어져야 한다. 이들은 주로 분열하는 동안 손상된 유전자나 단백질을 한쪽 세포에 몰아주는 방식으로 회춘한다.
인간에게는 가짓수로 200종이 넘는 세포가 있고 그 수는 얼추 40조에 이른다. 조혈모세포나 끊임없이 피부를 재생하는 줄기세포가 있지만 세포 대부분은 고유한 자신만의 역할을 그저 수행할 뿐이다. 신경세포, 간세포, 생식세포, 다 마찬가지다. 이들은 하나의 수정란에서 비롯한 자손 세포다. 개별 세포가 물려받은 유전체 서열이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인간은 이들에게 어떻게 개체성을 부여할까? 생물학자들은 유전체에 후성 유전학적 깃발을 꽂음으로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한다. 간세포 유전체에 꽂힌 깃발은 신경세포의 그것과 다르다. 그렇게 각각의 세포가 구분된다. 우리는 이들 세포가 분화했다고 일컫는다. 분화된 세포 연합체인 인간은 비로소 숨 쉬고 일하고 자식을 키운다.
이제 짐작하겠지만 수정란은 젊지 않다. 0살이 되려면 수정란은 ‘레테의 강을 건너듯’ 정자와 난자의 후성 유전학적 깃발을 뽑아야 한다. 모래시계를 뒤집어 ‘태초’의 시간으로 돌아가야 마침내 수정란은 전형성능(totipotent)을 얻는다. 하버드의 글래디셰프는 이런 흔적 지우기 작업이 발생 초기인 창자배 형성 단계에서 진행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배아가 자궁 내막에 착상한 뒤 발생 3~8주에 걸쳐 인체 주요 기관이 만들어지는 시기다. 바로 이 순간이 생물학적으로 가장 어릴 때다. 이제 전형성능을 가진 세포는 간세포도 될 수 있고 난자도 될 수 있다. 각자 자신의 깃발을 찾은 세포는 자기 나름의 역할을 맡게 된다. 이렇게 성숙한 태아는 산모 밖으로 나갈 채비를 차린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자궁 안에서 늙기 시작한다.
세상에 나가 살아갈 준비를 자궁 안에서 이미 상당히 마친 까닭이다. 첫울음을 멈추고 들숨이 아기 폐로 들어오면 심장은 서둘러 산소를 전신에 보낸다. 분화된 심근세포가 하는 일이다. 또한 아기는 양수를 머금으며 빨기 연습을 마친 입으로 서둘러 모유를 찾아 먹어야 한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태어나 한 해가 다가오면 신경계와 근육이 조화를 이뤄 두 발로 서야 한다. 모래시계는 여전히 젊다.
19세기 발생학자들은 수정란으로 이어지는 생식세포는 불멸이고 나머지 체세포들은 노화를 거쳐 수명을 다한다는 의미로 ‘일회용 체세포 이론’을 확립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급변했다. 복제 양 돌리를 시작으로 체세포도 수정란처럼 젊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실험적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일본 교토대학 야마나카 신야 교수는 체세포에 네 가지 유전자를 집어넣어 유도만능줄기세포를 만드는 일을 해냈다. 잘린 꼬리를 다시 만드는 도마뱀의 재생 능력을 마침내 인간도 갖게 된 것이다.
충분히 분화된 체세포일지라도 후성 유전학적 깃발을 제거하고 손상된 염색체 여기저기를 손보면 수정란에 버금가는 재생 능력을 갖추게 된다. 글래디셰프는 이런 현상을 통틀어 생명체의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라고 묘사한다. 본디 폭발 사건이 발생한 자리, 특히 원자폭탄이 떨어진 자리를 일컫는 말이지만 모든 것이 원상태로 되돌아간 다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뜻도 더해졌다. 처음부터 생명이란 그런 것이었다. 단 한 번의 끊어짐도 없이 유장(悠長)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