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민주주의의 꽃이다

2024.03.24 20:09 입력 2024.03.24 20:20 수정

제22대 국회를 구성하기 위한 총선이 두 주 정도 남았다. 미뤄지던 공천 작업이 급물살을 타고 후보들이 구체화되면서 유권자들, 특히 대안적 정치를 꿈꾸는 이들 중에서는 총선을 바라보는 답답하고 절망스러운 마음을 표현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 절망은 선거가 그만큼 중요한 행사라는 징표이긴 하지만, 우리에게는 선거를 달리 바라볼 이유들도 있다.

선거란 늘 그랬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은 선거에 관한 한 반복적으로 검증되어 왔다. 이맘때쯤이면 이번 선거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에서 얼마나 결정적인 선거인지,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한국의 향후 10년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강조하며 저마다 투표를 독려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정당들은 저마다 이번 총선에서 자신들이 승리해야 대한민국에 미래가 있는 것처럼 말한다. 아마도 그것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수없이 반복된 선거의 결과들을 돌아볼 때 선거 결과 때문에 민주주의나 사람들의 삶이 상처받을 수는 있으나, 우리의 삶이 멈추지는 않는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린다. 그러나 우리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이유가 우리를 통치할 대표자들을 우리 손으로 뽑을 수 있기 때문은 아니다. 우리 손으로 대표자를 뽑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많은 것을 다르게 만들긴 하지만, 때로는 우리 손으로 정치적·경제적·종교적 독재자를 뽑는 데서 보듯이 그것이 민주주의를 위해 피까지 흘릴 이유는 되지 못한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진정한 이유는 그 제도 안에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를, 심지어 내가 미워하는 이들까지도 차별 없이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가능성을 현실화할 수 있는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도록 정치적 공간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알렉시 드 토크빌은 민주주의의 매력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민주정치 아래서는 정부가 하는 일에서보다는 정부가 개입하지 않거나 정부 밖에서 이루어진 일의 성과가 더욱 돋보인다. (…) 모든 영역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활동, 충만한 힘, 아무리 불리한 상황에서도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는 활력, 그런 것들이 민주정치의 진정한 장점들이다.”

대한민국의 시민사회는 약하지 않다. 그것이 시장이 되었든 공동체가 되었든, 시민사회는 따뜻한 봄날 싹이 터져 나오는 씨앗처럼 그 자신의 역량을 발산하고 있다. 2023년 국회에서는 정부가 삭감한 발달장애인 동료지원사업 예산을 되살리기 위해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사업의 필요성과 성과를 증언했고, 사업은 살아났다. 비록 결정은 국회가 하지만 국회를 움직인 것은 당사자들이었다. 생각해보자. 누가 노숙인들과 독거노인들에게 따뜻한 점심을 제공하고, 기름으로 엉망이 된 태안 앞바다의 바위를 닦아내고, 산불에 갇혀 꼼짝 못하는 동물들에게 살길을 열어주었는가. 시민들이다. 누가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이들의 유가족들에게 손을 내밀었는가. 먼저 가족을 잃은 시민들이다. 누가 국회의원들로 하여금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유예하도록, 유예하지 못하도록 목소리를 냈는가. 어느 쪽이든, 시민들이다.

우리는 정치를 혐오하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정치 혐오론자들이 상상하는 ‘탈정치’가 아니라 ‘작동하는 정치’이다. 국회가 누군가에 의해 채워져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막스 베버의 통찰대로 직업으로서, 아니 소명으로서 정치인은 필요하다. 이때 우리는 그들에게 책임감, 윤리적 균형감각, 열정을 요구한다. 다만 그들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무한책임을 느낀다면 진정하라고 말하고 싶다. 대신, 목소리를 들으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의 소신에 도취되기보다 다양한 의견들이 만나는 교차로가 되라고 말하고 싶다.

민주주의를 정확히 바라보자. 국회의원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그들이 권력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움직이는 시민들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은 결국 어떤 시민이 원하는 일을 한다. 선거의 절망은 내가 지지하는 후보나 정당이 패배했을 때가 아니라 국회에 모여 있는 300명을, 그들을 움직이는 ‘동료시민’을, 내가 움직일 수 없을 것이라고 믿어버리는 순간 찾아온다. 그들은 바람이고, 내 삶은 풀이라고 생각할 때 찾아온다.

누가 앞으로 4년간 입법권을 행사하게 되든, 시민들은 왕에게 올리는 상소문이 아니라 공복에게 전달하는 입법안을 들고 국회의 문을 계속 두드릴 것이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대한민국의 앞날은 총선 결과에 있지 않다.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

최태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최태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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