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혜와 비난을 넘어

2024.04.15 20:43 입력 2024.04.15 20:55 수정

제22대 총선이 마무리되었다. 성적표를 보면 정권심판론이 강하게 작용하면서 여소야대 국면이 이어지게 됐다. 혜성처럼 등장한 조국혁신당과 당을 박차고 나가 생존한 개혁신당도 주목할 만하다. 정작 그 와중에 녹색정의당은 국회에서 퇴장하게 됐다. 3%의 벽을 넘지 못해 의석을 잃었고, 심상정 의원은 은퇴를 선언하며 눈물을 보였다. 나는 그 광경 앞에서 문득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울산 출신인 나는 “권영길이 뽑으소, 영 아이다 싶으면 노무현이도 괜찮고”라는 말로 2002년 대선을 기억한다. 동네 사람들에게 권영길을 뽑아달라 당부하는 노조 아저씨들이 있었고, 노무현의 이름도 가끔 호의적으로 언급됐다. 당시 나는 권영길을 뽑으라면서 왜 그를 “영 아이다 싶은” 사람으로 여길 수도 있다고 말하는 건지, 그리고 당이 다른데 왜 노무현도 “괜찮다”고 말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후 조금 더 자랐을 무렵,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의 차이를 ‘한강과 실개천’으로 비유하는 걸 보고 아리송하기도 했다. 그런 기억을 품고 스무 살이 된 2008년의 나는 당시 진보신당의 당원이 되었고, 그해 총선에서 진보신당은 3%의 벽 앞에 가로막혔다. 지금처럼.

기시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권영길과 노무현, 한강과 실개천 사이에서 분열하던 진보정당은 지금도 민주당과의 연합 여부를 두고 내적 분열에 시달린다. 1987년부터 거의 40년이 다 되도록, 진보세력은 연합이라는 이름의 투항 혹은 독자 노선을 지키기 위한 풍찬노숙이라는 두 갈래 길 앞에 놓여 있다. 진보정당의 처지가 긴 시간 동안 변하지 않았으니, 대안세력의 성장을 제약하는 한국 정당체제의 ‘구조’는 강고하기만 하다.

그러나 그 구조는 진보정당을 배제하면서 길들였다. 진보정당은 국회에서 소수 의석이나마 차지해 왔다. 그것은 오랜 시간 고군분투해온 진보세력이 만들어낸 소중한 기회였지만 동시에 양날의 검이었다. “비례는 진보정당을 찍어주겠다”고 말한 유권자들은 그간 진보정당의 주요 기반이었다. 그 선의는 고마운 것이지만, 또한 무척 허약하고 위험한 것이었다. 그 이면엔 진보정당이 결코 한국정치의 주류가 될 수 없으며 그것이 아주 절박한 문제는 아니란 생각이 전제돼 있기 때문이다. 즉 일부 유권자가 베푼 ‘시혜와 동정’이 진보정당 기반이었던 셈이다. 시혜적 선의가 선물해 준 소수 의석의 달콤함을 맛본 진보정당은 자신의 독자성을 공고히 하는 데 망설이게 되었다.

더욱이 시혜의 마음은 진보정당을 향한 비난과 별로 멀지 않다. 정의당을 향한 민주당 지지자들의 비난과 모욕은 선거 때마다 반복되어 왔다. 독자노선을 고집하면 온갖 저주가 쏟아지고, 민주당에 양보하면 칭찬이 돌아왔다. 비례 의석 몇개를 줄 테니 민주당에 모난 모습 보이지 말라는 비난의 말들은 시혜를 베푸는 태도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정의당을 향해 민주당 지지자들이 쏟아낸 ‘운동권 정당, 아마추어, 동아리’ 같은 비난도 정의당을 길들였다. 소수 의석에 만족하지 않고 주류 정당이 되고자 했던 정의당은 ‘아마추어’처럼 행동하지 않는 것이 곧 주류 정당이 되는 길이라 믿었다. 민주당을 비판하면서도 그들이 정의당을 타자화하는 말들을 거울로 삼았다. 그들이 비난하는 모습을 버리고 그들처럼 행동하면 주류의 일부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 결과 기성 정당과의 차별성을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

물론 정의당도 구조적 제약을 돌파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가령 노회찬 의원이 언급한 ‘투명인간과 6411 버스’는 정의당이 줄곧 참조해 온 초심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진보정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고 있다. 진보정당을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대중을 호명하고 그 곁을 지키는 것, 이는 여전히 유효한 진보정당의 과제다.

최성용 사회연구자

최성용 사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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