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n번방 방지법, 윤석열이 말하는 ‘검열법’ 아니다

2021.12.13 20:39 입력 2021.12.13 20:58 수정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3월 n번방 운영자 갓갓의 무기징역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권도현 기자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3월 n번방 운영자 갓갓의 무기징역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입주자가 광고를 붙이려면 관리사무소에 신고해야 한다. 내용에 문제가 있으면 부착할 수 없다. 인터넷 커뮤니티도 마찬가지다. 커뮤니티의 규칙을 어기는 글은 운영진이 삭제할 수 있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상영관에서 제공하는 영화에 대해 등급분류를 받도록 한다. ‘공적 공간’에 올라오는 정보를 거르는 것은 공공성과 윤리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동체가 합의한 규칙이다. 지난 10일부터 시행된 ‘n번방 방지법’(개정 전기통신사업법)이 검열 수단이라는 주장이 근거 없는 이유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지난 12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n번방 방지법은 제2의 n번방 범죄를 막기에는 역부족인 반면, 절대 다수의 선량한 시민들에게 ‘검열의 공포’를 안겨준다”며 “귀여운 고양이, 사랑하는 가족의 동영상도 검열 대상이 된다면, 그런 나라가 어떻게 자유의 나라겠느냐”고 말했다. n번방 방지법을 문제 삼는 의도는 짐작 못할 바 아니다. 그러나 선거를 앞둔 후보의 주장이라 해도 허용되는 한계가 있다. 여성·아동 인권을 두고 정치적 꼼수를 쓰는 것은 한계를 넘어선다.

윤 후보의 주장은 허술하다. 첫째, 민주공화국에서 검열이 허용되지 않음은 명백하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 공공성과 윤리성을 확보하고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필터링을 하는 일은 검열이 아니다. 둘째, 문자 그대로 ‘오픈’된 공간만 대상으로 한다. 그룹 오픈채팅방에 동영상이 공유되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판정한 불법 동영상인지 알고리즘을 통해 비교, 식별한다. 1 대 1 채팅방이나 e메일은 들여다보지 않는다. 셋째, ‘귀여운 고양이 동영상’은 안전하다.불법 동영상의 절대 다수는 동의 없이 성적 촬영을 했거나, 동의 없이 가공 편집했거나, 동의 없이 유포한 영상이다. 고양이가 아니라, 피해자가 존재하는 불법촬영·유포물이다. 넷째, 제2의 n번방 범죄를 막기에 역부족이라 염려된다면, 실효성 강화 방안부터 제시하는 게 올바른 태도 아닐까.

n번방 방지법은 지난해 5월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재석 의원 178명 중 170명이 찬성했다. 찬성 의원 중 국민의힘 의원도 50여명에 이르렀다. 본회의 직전 법사위에서도 국민의힘 의원들은 어떤 문제제기도 하지 않았다. 여야가 함께 통과시킨 법은 여야 모두의 책임이다. 윤 후보가 당시 국민의힘 일원이 아니었다 해도 책임에서 제외될 수 없다.

n번방 방지법 논란은 ‘젠더 이슈’가 아니다. 한국 사회의 합의를 깨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시도일 뿐이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양식 있는 시민은 국민의힘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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