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도박과 투자 사이

2015.09.03 20:53 입력 2015.09.03 21:14 수정
김준형 | 한동대교수 정치학

반환점을 돌고 있는 박근혜 정부는 그동안 매우 비논리적인 대북 및 외교 정책의 행보를 보여왔다. 이명박 정부와 이념적으로 동일한 뿌리를 가졌으면서도 5년간의 철저한 대북강경론으로부터 차별화를 약속하고 대화에 나설 것처럼 했지만 사실상의 대북 정책은 거의 변한 것이 없었다. 외교 역시 균형적 외교를 천명했지만, 실제로는 친미동맹 노선으로 경도되어왔다. 대표 정책으로 내세우던 신뢰프로세스는 이제 제안자인 대통령을 포함하여 정부·여당의 언급에서 거의 사라져버렸다. 원래부터 실천 의지가 없는 선거용이어서인지, 아니면 스스로도 2년 반의 별무성과가 부담스럽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정동칼럼]박근혜 정부, 도박과 투자 사이

사실 북한이 신뢰할 만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조건을 내건 순간 이미 전임 정부와의 차별성은 기대할 수 없었다. 프로세스라는 말에 혹했지만 남한 정부가 먼저 움직이지 않겠다는 전제조건이 과정을 통째로 삼켜버린 것이었다. 북한이 개과천선해서 신뢰받을 존재가 되어야만 남북관계의 진전이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은 거꾸로 사안의 주도권을 북한에 줘버린 셈이고, 북한이 따라주지 않음으로써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은 한 발도 전진하지 못했다. 뒤이어 줄줄이 등장한 동북아평화구상, DMZ 평화공원, 드레스덴 선언 등의 제안들 역시 어떤 실체적 진전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

남북문제에 있어 박근혜 정부의 두 번째 중심 아젠다는 2014년 새해 벽두에 등장한 통일대박론이다. 남북관계의 교착상태가 장기화되는 상황인 데다, 그 전년도에 전쟁 직전의 상황으로까지 긴장이 고조되었던 것을 감안하면 뜬금없을 정도의 낙관적 통일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신뢰도 없는데 통일이라니, 목표가 원대해진 만큼 현실성은 그만큼 더 멀어졌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런 현상은 도박에서 자주 일어나는 것과 닮았다. 한푼 두푼 모으는 것보다 잭팟을 터뜨려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이 바로 도박심리가 아니겠는가? 실제로 외국의 언론들은 대부분 잭팟이라는 영어단어를 사용했다. 번역하지 않아도 대박이라는 말이 상당 부분 도박의 냄새를 풍긴다.

신뢰프로세스의 진전을 기초로 다음 단계로서의 통일대박론이라면 설득력이 있을 수 있지만, 차곡차곡 밟아가는 과정의 결과로 통일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한순간의 잭팟으로 본다는 것은 적어도 두 가지의 합리적 의심을 제기한다. 하나는 흡수통일론을 은폐하기 위한 장치라는 의심이고, 다른 하나는 안보 포퓰리즘의 약효가 떨어지는 시점에서의 국내정치용 아젠다 교체라는 의심이다. 실제로 전자는 통일준비위원회의 고위인사나 박근혜 대통령의 간헐적이지만 꾸준한 언급들이, 후자는 정부의 신호탄에 장단을 맞춘 보수언론들의 통일 붐 조성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채워지는 후속조치들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단순 의심으로만 그치지 않게 만든다.

이런 상태에서 지뢰 폭발 및 포사격 도발이 일어났다. 고조되던 긴장은 다행히도 우여곡절 끝에 남북한 직접 협상으로 일단 해소되었고, 이를 계기로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게다가 9월3일 중국의 전승절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함으로써 친미 일변도 외교를 개선할 기회를 얻었다. 일단은 지난 2년 반 박근혜의 대북 및 외교 정책에서 가장 잘한 결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문제는 전반기 행보의 잔상이 가리키는 불안감과 외교역량에 대한 여전한 의구심이 쉽게 떨쳐지지 않는다. 8·25 남북합의를 위기상황을 해소하려는 타협과 양보로 보지 않고, 원칙에 대한 북한의 굴복과 남한의 승리로 포장한다든지, 치밀한 전략적 사고에 의한 미·중 사이의 기민한 외교가 아닌 자신감이 결여된 추종외교와 국내정치용 외교가 반복될까 우려 속에 바라보게 된다.

이번 계기가 박근혜 정부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번에는 도박이 아니라 반드시 민족의 미래에 대한 현명한 투자여야 한다. 대북 및 통일 정책이 붕괴론의 환영에 올인하고, 미국에 올인하는 어리석은 도박이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적 미래를 위한 투자여야 한다. 국론도 모처럼 하나가 되었다. 남북 한쪽의 실수나 오판으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절감했을 것이다. 결국 남북관계를 풀어야만 우리의 운신 폭이 넓어질 수 있다. 8·25 합의의 모멘텀을 잘 활용하여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이끌어내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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