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 집무실을 차리십시오

2018.08.28 20:56 입력 2018.08.29 10:25 수정

오늘을 위해 또 옛기억을 꺼낸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반추해볼 때 개인적으로 잊을 수 없는 장면 하나가 있다. 2006년 10월 비가 내리던 어느 저녁, 서울 종로구 지하철 3호선 안국역 주변을 지나는데 청와대 방면 지하철역 입구가 온통 경찰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거리는 텅 비고 찬 비바람뿐이었다.

[정동칼럼]광화문에 집무실을 차리십시오

수백개 시민사회단체로 이뤄진 한·미 FTA 공동대책위원회와 전농이 열려던 집회를 막느라 경찰 수천명을 깔아놓고 빈 공간에 고립돼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대통령 노무현이었다.

한때 그를 열렬히 응원했던 나는 빈 거리에서 묻고 싶어졌다. 왜 청와대에 홀로 계신가? 당시 시민사회와 민중단체, 지식인 다수가 양극화와 미국화를 우려하며 한·미 FTA를 반대하고 있었지만, 그는 통상론자들과 친미파들을 앞장세워 그게 살길이라고 강변했다. ‘바보 노무현’은 그렇게 경찰한테 ‘보호’받으며 민중단체로부터 비판받고 시민사회로부터 고립되려고 대통령이 됐나?

노무현 대통령 본인과 그 정부의 비극은 큰 상처를 남겼고 한국 정치의 많은 것을 바꿨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가장 짧고 굵게 요약했다. ‘운명’.

그 ‘운명’은 촛불과 함께 ‘지금 여기’에 이르렀고 다시 기로에 처하는 듯하다. 촛불과 남북화해의 빛에 환호하던 많은 이들이 돌아서려는 분위기다. 이겨내야 할 초조함이 여기저기 흐른다.

문재인 정부는 역사상 네 번째 민주(당) 정부다. 김대중 정부를 제외하면 다른 두 민주당 정부는 최악의 반동을 부르며 참혹하게 실패했다. ‘촛불 이후’인 지금은 어떤 면에서 4·19혁명 직후와도 비슷하다. 부패·독재정권이 민중의 힘으로 물러나자 제주 4·3과 거창양민학살, 그리고 이승만 시절의 온갖 국가범죄에 대해 진상규명해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여성과 노동자들을 비롯한 각계각층은 개혁과 자기 요구를 위해 행진했다. 한국의 모든 모순이 결국 분단에 응결해 있다고 생각한 일군의 지식인·학생들은 평화통일·한반도 중립화의 기치를 내걸었다. 모두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일이었다.

그런데 결정적인 몇몇 한계가 있었다. 우선 민중은 배가 고팠다. 곤궁한 민생과 허약한 경제구조가 고쳐질 기미가 안 보였다. 1960년에도 ‘생계형’ 자살자가 참 많았다. 초조가 팽팽해져갔다.

지도자와 집권 민주당은 여리고 무능했다. 구파와 신파로 나뉘어 정쟁을 되풀이했는데, ‘길 가다 지갑 주운 것처럼’(고 노회찬 의원의 표현) 민중의 희생 덕에 집권했던 그들은 뭘 해야 할지 잘 몰랐다. 그 결말은 우리가 아는 비극이다. 혁명을 도둑맞은 사람들은 초조를 침묵으로 바꿨다.

종로통과 청와대 근처를 늘 다니는 서생이자 직장인인 필자가 ‘운명’을 안은 이들에게 말하고 싶은 건, 시민사회·민중 단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끝까지 신뢰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초조를 틈탄 선동을 이겨낼 힘도 그 신뢰뿐이다. 그들의 시선이 다수 민중의 삶을 보도록 만든다. 그들이 정부로부터 기대할 게 없다고 여길 때 방죽이 무너졌다.

노무현의 시선이 더 이상 아래로 향하지 않고 지지기반이었던 민주노총·전교조·전농 등과 연달아 소원해졌을 때 고립은 시작됐고, ‘현실주의자’들에게 둘러싸여 보수언론과 재벌에 아부하고 보수 중산층을 향해 손 내밀어 대연정과 FTA를 추진했을 때, 실패는 확정됐다. ‘좌우에서의 협공’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마음이 떠나버린 것이었다.

이 뼈아픈 결별을 나는 못 잊는다. 정권의 성패가 시민사회·민중 단체들과 무관한 일이 되어 버릴 때, 당장 자신의 조직을 지키는 것이 절박한 일이 돼 버릴 때, 그리고 ‘다 똑같은 놈’이라는 환멸이 먹혀 다른 말길을 막을 때 민주정부는 진짜 망한다.

지금 초조가 대기 중에 떠돌지만 소득 불균형이 악화되고 민생경제를 당장 회복할 수 없는 것은 단지 현 정부 탓이 아니다. 수십년 넘게 쌓인 ‘구조’가 단기간에 몇 가지 정책으로 그렇게 쉬이 좋아질 일이 아닐 것이다. 임금, 고용, 물가, 부동산, 국제환경, 자영업 문제들이 엉켜있는 고차 방정식은 결국 ‘경제’ 문제를 뛰어넘는 것 아닌가?

문재인 정부의 ‘운명’은 다시 1년 안에 갈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아직 대중은 기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자신의 내부에 있는 반‘촛불혁명’과 대결하며 ‘운명’을 건 비약을 시도해야 한다.

‘협치’가 답인가? 도대체 그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만약 협치가 필요하다면 이 사회의 비주류들과 여성, 노동자 같은 소수자들 그리고 시민사회와 해야 할 것이다. 공약대로 문재인 대통령은 광화문에 집무실을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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