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판갈이, 이제부터 시작이다

2020년대가 시작되었다. 한국민주화 32년을 돌아보면 민주주의 정착이 얼마나 더디고 어려운 것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경제발전과 달리 지정된 방향타가 없는 혼돈과 갈등 속에서도 한국민주주의는 긍정적 방향으로 흘러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동칼럼]정치 판갈이, 이제부터 시작이다

가장 큰 변화는 보수와 진보 모두 막다른 골목이라 새로운 변신이 불가피해졌다는 것이다. 경제발전이라는 것 이외에 이렇다하게 내세울 것 없이 지역주의에 기반했던 소위 한국 보수는 밖으로는 세계화, 안으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막장에 이르렀다.

진보세력 역시 독재투쟁 과정에서 반민주주의적 이론과 개념으로 무장되었다가 민주화 이행기에는 지역주의와 타협했다. 이후 한국 상황에 맞는 이렇다할 진보적 이념과 정책 개발보다는 정권 쟁취에 여념이 없었다. 이 과정에서 실질적인 지역주의가 형식적 진보라는 허울로 합리화되었다. ‘조국사태’는 진보의 일상이 보수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제도적 변화 차원에서도 한국민주주의는 많은 불균형을 보여왔다. 각종 권력집단의 변화, 교육, 언론 등 기능적 영역의 변화가 만족스럽지 못하게 진행돼왔다. 최근의 공수처 법안과 선거법은 많은 문제를 안고 통과되었다.

얼핏 보면 이런 혼란과 갈등이 한국 정치의 후퇴처럼 보일지 모른다. 후퇴적 사고의 이면엔 아마도 교과서에서 배운 민주주의의 기준에 비추어 갈 길이 멀다는 인식과 변화의 속도가 느리다는 판단이 있을지 모른다. 초고속 경제개발의 경험을 감안한다면 이런 인식은 그다지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혁명을 거치지 않은 민주주의의 정착은 오래 걸리기 마련이다. 영국의 경우 명예혁명 이후 여성투표권이 인정되기까지 거의 300년이 소요되었다. 한국의 경우 투쟁을 하지 않고 주어진 민주주의 제도가 많이 있다. 우리 헌법은 바로 이의 상징이다. 상징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권위주의가 오랫동안 공존해왔고 이는 이념적 민주주의와 생활적 권위주의라는 이중구조를 낳았다.

한국 사회는 지난 30여년간 이 간격을 메꾸기 위해 많은 갈등과 혼돈을 감내해야 했다. 득표를 위한 단기적 경쟁은 아이러니하게도 지역주의의 이용에서 보듯이 이중구조를 강화시킨 측면이 없지 않다. 동시에 갑질문화에 대한 도전 등에서 잘 나타나듯 사회영역에서는 자발적인 민주화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제 정치권도 피할 수 없는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이렇듯 한국민주주의는 부조화와 불균형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발전해왔다.

더구나 한국 사회의 이런 변화를 비춰줄 역사적 길잡이가 마땅치 않은 상황도 내부 속앓이를 할 수밖에 없는 요인이다. 탈식민지 국가 중 경제개발과 민주화를 함께 이룬 나라는 한국이 유일무이하다. 한국은 단순히 경제개발과 민주화를 이뤄낸 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제3세계에서 유일하게 세계사적 의미가 있는 새로운 사례를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혼란과 갈등이 없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다고 혼란과 갈등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혼란과 갈등을 무작정 반복할 수도 없다.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정치권에서 보수와 진보 모두 형해화 단계에 들어 근본적 자기 변신과 변혁이 불가피하고 이에 따른 총체적 정치판의 개편과 개혁이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검찰 개혁이든, 선거법 개혁이든 모든 제도는 영원한 것이 아니다. 너무 단기적·정략적 이익에 몰두하여 제도 숙명론에 빠지는 것은 불필요한 갈등과 비관론을 야기할 뿐이다. 새로 채택된 선거법은 권한이 집중된 대통령중심제를 그대로 두고 한국 사회의 다양성을 어떻게 반영해야 할 것인가의 몸부림이 아닌가 한다. 동시에 검찰 개혁은 정치권과 검찰, 경찰 모두를 신뢰하지 못하는 제도 불신 속에서 변화를 꾀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이런 모순과 갈등 속에 제도가 의식을 끌어주고 의식이 다시 제도를 바꾸는 동적 변화 과정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이제 곳곳에 만연한 부조화와 불균형을 다시 점검하고 이를 반영한 신보수, 신진보를 창출할 때다. ‘골수 지역주의’ ‘유사 지역주의’ 속에서 가식적으로 서로를 반대했던 정치그룹들이 재편되어야 한다. 새롭게 재편된 보수와 진보가 당면한 한국 사회의 경제, 사회 및 국제적 도전을 위한 문제를 제기하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 수 있게 되어야 한다.

변화는 쉽게 오지 않고 빨리 오지도 않는다. 많은 혼선과 갈등을 수반한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보면 변화는 조금씩 나타난다. 다가오는 총선은 이런 한국적 의제를 다시 세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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