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 거짓말 쓰는 나라

2015.04.12 20:41 입력 2015.04.12 20:47 수정

# 2009년 4월 일본의 우익단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펴낸 지유샤(自由社)판 역사교과서가 문부과학성 검정을 통과했다.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식민 지배를 정당화한 역사 왜곡 교과서가 2001년 후소샤(扶桑社)판이 등장한 이후 두 종류로 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당시 일선 학교에서 우익 교과서 채택률은 매우 저조한 수준에 머물렀다. 일본 양심 세력들이 대대적인 교과서 채택 반대운동을 벌인 덕택이었다. 특파원 시절이던 당시 우익 교과서 채택 반대운동을 주도한 시민단체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21(네트21)’의 다와라 요시후미(俵義文) 사무국장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우익 교과서에 대해 “기초적인 팩트마저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후세에 올바른 역사를 가르쳐야 똑같은 역사적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고 한 그의 말이 기억에 생생하다.

[아침을 열며]교과서에 거짓말 쓰는 나라

# 1965년 6월 역사학자 이에나가 사부로(家永三郞)는 자신이 집필한 고교 교과서 <신일본사>가 문부성의 부적격 판정을 받자 교과서 검정 제도가 교육기본법 제10조 및 헌법 제21조에 위배된다며 위헌 소송을 냈다. <신일본사>에서 난징대학살, 731부대 등 침략행위가 기술된 것을 정부가 문제 삼자 이에 반발해 제소한 것이다. 일부 승소, 일부 패소 판결이 엎치락뒤치락했지만 끝내 위헌 판결을 얻어내지는 못했다. ‘이에나가 교과서 재판’은 일본 사법 역사상 최장 기간 진행됐던 민사소송으로 기록돼 있다. 1965년 1차 소송에 이어 1967년 2차 소송이, 1984년에는 3차 소송이 제기됐다. 마지막 소송 상고심 판결이 나온 게 1997년 8월29일이었으니, 재판 종결까지는 무려 32년이 걸린 셈이다.

하지만 그의 지난한 싸움은 ‘침략적 해석에 편향됐다’며 자학사관 타파를 주장하던 우익을 견제하는 역할을 했다. 지금도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해 애쓰는 일본의 양심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다와라 국장 역시 대학 졸업 이듬해인 1965년 이에나가의 법정 투쟁을 지원하면서 올바른 교과서 보급을 위한 운동에 헌신했다.

지난주 일본에서는 ‘위안부 강제연행의 증거는 없다’는 정부 견해를 덧칠하고, 수천명에 이르는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피해자 수를 당시 사법성의 통계를 인용해 230여명으로 축소한 내용의 중학교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했다. 또 새 역사교과서 8종 중 4종에는 ‘임나일본부’ 기술까지 등장했다. “(일본) 야마토 조정이 한반도 남부의 임나에 일본부를 설치해 영향력을 가졌다”는 내용이 서술됐다. 근거 없는 임나일본부설을 들먹이며 고대사 왜곡에까지 나선 것이다.

일본의 역사 왜곡 교과서나 그릇된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한 독도 영유권 주장은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특히 1997년 우익세력을 중심으로 결성된 새역모가 침략전쟁론에 반발해 독자적인 ‘왜곡 교과서’ 저술, 보급 운동을 펼치면서 교과서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 갈등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들어서면서 더욱 가속화됐다. 역사와 영토, 애국심을 자극하는 교육이 강화되면서 개정 교육기본법, 국기국가법이 추진됐다.

문제는 왜곡된 교과서를 통해 역사교육을 받는 청소년들이 일본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가게 된다는 점이다. 편견과 왜곡, 불신으로 가득찬 교과서는 한·일관계에서 신뢰를 무너뜨리는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일본의 양심들은 교육 현장에서 역사 왜곡 교과서의 채택을 저지하는 운동을 펼쳤고 나름 성과를 얻었다. 채택률 저하를 우려한 출판사의 자기 규제, 양심적인 교육자들의 저지 운동에 힘입어 일부 출판사에서는 ‘위안부의 강제 동원’을 기술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움직임도 앞으로는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졌다. 일본 정부가 일선 교사들의 교과서 추천을 금지하는 등 채택 과정까지 통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문부과학성이 공립 초·중학교 교과서의 채택권을 갖고 있는 각 지자체 교육위원회가 교사들에 의해 추천된 1~2종의 교과서 가운데 수업에 쓸 교과서를 최종 채택해오던 관행을 ‘악폐’로 규정, 금지키로 한 것이다.

교과서, 특히 일본의 모습을 후세에 전하는 역사교과서의 경우 ‘부끄러움’이 있더라도 올바르게 기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에나가 재판 3차 소송 상고심에서 최고재판소(대법원)의 재판장이었던 오노 마사오(大野正男)는 일본 최고의 역사 소설가로 꼽히는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가 작가 가이코 다케시(開高健), 문화연구가 구와바라 다케오(桑原武夫) 등과 한 대담을 묶은 <동과 서(東と西)>의 문장을 인용해 이렇게 말했다.

“교과서에 거짓말을 쓰는 나라는 머지않아 망한다.” 일본의 양심이 던진 통렬한 질책의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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