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과 절규의 씨앗, 진실의 열매

2015.04.19 20:42 입력 2015.04.19 20:44 수정

그저께 감자를 심었다. 작두콩도, 상추도, 땅콩도, 호박도,… 갖가지 모종을 심고 여러 씨앗들을 뿌렸다. 듬성듬성 진달래가 핀 산자락 아래의 작은 텃밭이 마침내 제 본래 모습을 갖춘 듯하다. 면도하고 새옷을 갈아 입은 사람처럼 말끔하다. 불과 한 달전만 해도 텃밭은 참 썰렁했다. 지난해 가을 파전을 실컷 부쳐 먹고, 한 고랑이나 남겨둔 쪽파는 겨울 찬 바람에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씩씩한 우엉 잎사귀도 허물처럼 허옇게 말라 비틀어졌고, 밭둑에는 메마른 풀들만이 엉겨붙어 있었다.

[아침을 열며]눈물과 절규의 씨앗, 진실의 열매

언제부터인가, 산자락과 밭둑과 하늘의 색깔이 조금 달라지는 듯했다. 햇볕도, 공기도 그 감촉과 냄새가 달라지는 기운이 느껴졌다. 그러더니 텃밭에는 봄이 가득 들어차고 있다. 찬 겨울을 견뎌낸 쪽파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 다시 파전을 해먹을 만하고, 우엉 잎사귀도 벌써 아기 얼굴만큼이나 크다. 쑥들로 밭둑은 싱싱해졌고, 훌쩍 키가 큰 두릅도 조만간 따 먹을 만하겠다.

봄이 되니 함께 텃밭을 가꾸는 이웃들도 하나둘씩 모여든다. 신 선생님, 백 선생님, 바오로님과 베드로님, 진짜 농부인 임프님과 병인님, 지난해 서울살이를 청산하고 농사일을 배우느라 얼굴이 핼쑥해진 마르티노 박, 젊은 처녀들인 효정님과 달군님…. “이제 반가운 얼굴들을 밭에서 보네” “벌써 밭을 예쁘게도 손질해 놨네요!” “딸기 농사는 잘되고 있어요?” 안부 인사에 농사, 세상 이야기가 이어진다.

꽃이 져버린 늙은 매화나무 아래 둘러앉아 막걸리가 돌고, 또 어김없이 찾아온 봄을 안주로 삼는다. 겨울을 이겨내고 눈을 틔운 감자, 돌덩이같이 딱딱하던 옥수수 알맹이에서 연초록 잎사귀가 나오는 신비함, 그 속에서 느껴지는 끈질긴 생명과 그 생명의 힘, 의지를 서로들 공감한다. 나락 한 알에서 우주를 본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뜻이 나오고, 식량 자급, 로컬푸드와 슬로푸드 운동으로 말꼬리가 이어진다. 바야흐로 한 해의 농사가 제대로 시작됐다. 저 먼 옛날 신석기시대 이래 농사일은 사계절 순환이라는 자연의 순리에 맞춘 일이었다. 씨앗을 뿌리고, 거름을 주고, 잡초를 뽑고, 온몸이 축 처지도록 땀을 흘리고, 피부가 까맣게 타는 정성을 들여야 옹골찬 쌀이 콩이 밀이 나오는 게 농사일이다. ‘곡식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라’니 ‘땀 흘린 만큼 거두는 게’ 농사일이다.

작은 텃밭 하나를 가꿔봐도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금방 티가 난다. 내가 얼마나 자주 텃밭을 찾아 땀을 흘렸는지, 주인의 부지런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우리들의 세상살이, 너나할 것 없이 살아가는 삶도, 사회나 나라도 마찬가지이리라.

그래서 수많은 옛 현자들은 농사일을 상찬했다. 농사일에 비유하며 한 개인의 내면적 성숙이나 인간 삶의 의미, 세상 속 진리를 이야기했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같은 주변 환경과의 관계도, 배려와 나눔을 강조하는 데도 농사일은 좋은 소재였다. 더 나아가 지배층과 권력자의 무능과 불통, 부정부패와 비리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비판하는 데도 농사일은 제격이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땀 흘린 만큼 거둔다’는 지극히 평범한 말은 그 어디에서든, 어떤 일과 생각을 하든 늘 되새길 만한 금언이다.

조용하게 찾아온 봄이 새삼 내 삶을, 주변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시인 박재삼은 말없이 찾아온 봄을 시 ‘무언(無言)으로 오는 봄’에서 “(…)그 무지무지한/ 추위를 넘기고/ 사방에 봄빛이 깔리고 있는데/ 할말이 가장 많을 듯한/ 그것을 그냥/ 눈부시게 아름답게만 치르는/ 이 엄청난 비밀을/ 곰곰이 느껴 보게나”라고 권한다.

그런데 말없이 눈부시게 아름답게만 치르는 이 봄의 비밀, 그 힘을 조용하게 곰곰이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해 꼭 이맘때, 이 텃밭에 모종을 심고 씨를 뿌렸다. 봄은 지난해처럼 작은 텃밭을 이렇게 찬란하게 채우는데, 씨앗을 심는 내 마음이, 손이 작년 같지 않다. 가슴 한쪽이 아릿하게 저려온다.

우리 사회에 절규가 가득하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그들과 고통을 함께하는 시민들의 절규만이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오포 세대’의 청년들, 소외되고 가지지 못한 숱한 이들의 애타는 절규가 나라를 채운다. 그야말로 절규하는 사회다. 지난 1년간 유족들은 그렇게 질문을 던졌건만 돌아오는 것은 서울 한 복판에 등장한 끔찍하고 무지막지한 벽이고, 물대포이고, 최루액이다.

하지만 지금 흘리는 눈물과 절규, 그 하나하나가 끝내 이기고야 마는, 그리하여 진실의 열매를 맺고야 마는 씨앗이라 굳게 믿는다. ‘땀 흘린 만큼 거두는’ 것처럼 ‘옳은 것이 이기는’ 것은 역사가 말해주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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