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여성 ‘3시 스톱’

2020.03.06 20:38 입력 2020.03.06 20:50 수정

1908년 3월8일. 미국 뉴욕시의 럿거스 광장에 미국 여성 노동자 1만5000여명이 모여 노동조건 개선과 여성 지위 향상, 참정권 등을 요구하며 행진했다. 올해 112회를 맞는 세계여성의날의 시작이었다. 럿거스 궐기 후 ‘여성에게 빵과 장미를’이라는 구호가 등장했고, ‘빵과 장미’는 이후 여성의날의 상징이 되었다. 빵은 생존권을, 장미는 참정권으로 대표되는, 인간다운 존엄을 누릴 권리를 의미한다.

코로나19로 많은 이들의 일상이 멈춘 3월 첫 주말,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대한민국엔 또 하나의 멈춤 캠페인이 진행됐다. ‘성별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3시 STOP 여성파업.’ 한국의 남녀 성별 임금 격차는 2018년 기준 34.1%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줄곧 부끄러운 1위를 지키고 있다. 주 5일, 8시간 근무에 비추면 여성들은 매일 오후 3시 이후는 무급으로 일하는 셈이다. 남녀 간 임금차를 부각하기 위해 4년째 ‘3시 조기퇴근 시위’를 벌이고 있지만, 차별의 시곗바늘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코로나19 때문에 올해는 광장 대신 온라인으로 무대를 옮겼다. 재난 상황에서 비정규직과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의 생존은 더욱 크게 위협받는다. 쉬지도 못하고 멈출 수조차 없는 여성 노동자들의 온라인상의 외침은 그래서 광장의 함성보다 더 크다.

여기까진 ‘빵’의 얘기다. 사회적 권리는 어떤가. 반환점을 돈 주요 정당들의 여성 공천 결과를 살펴보자. 더불어민주당이나 미래통합당 모두 10%대 초반이다. 또 상대적으로 당선되기 쉬운 ‘꽃길’은 남성들에게 돌아가 상당수 여성 후보가 험지에 내몰려 있다. 지난해 거센 페미니즘의 물결 속에서 ‘2020 총선 승리를 위한 여성당 선포식’까지 하며 여성 공천 30%를 약속한 민주당, 여성 인재를 적극 발굴하겠다며 ‘우먼 페스타’를 개최해 엉덩이춤을 춘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의 전신) 모두 용두사미다. 한국의 여성 국회의원 수는 17.0%로, 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평균 여성 의원 비율 28.8%)이다. 무엇이든 앞서지 못하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한국 사회가 여성 권리에는 유독 소극적이다. “3시 스톱” “성평등 국회”를 언제까지 외쳐야 할까. 여성들의 인내도 곧 바닥을 드러낼 것만 같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