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문건 두고 국방부·기무사 초유의 격돌사태 내막은

2018.07.28 13:09

자유한국당 ‘청와대 기획작품’ 총공세 속 진실공방

7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석구 국군기무사령관(오른쪽 군복)과 송영무 국방장관(앞쪽 양복)이 서로 상반된 주장을 펴면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7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석구 국군기무사령관(오른쪽 군복)과 송영무 국방장관(앞쪽 양복)이 서로 상반된 주장을 펴면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철저히 기획된 특별수사지시입니다. 최근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한데 따른 국면전환용이에요. 북한 비핵화 추진도 제대로 안되죠, 경제상황이 안 좋다는 보도들도 나오죠. 그러니까 국면전환용으로 3월 16일부터 묵혀둔 것을 탄핵정국 친위 쿠테타로 포장해서 청와대까지 나서서 이런 사태를 벌이는 것 아닙니까.”

7월 24일 국회 국방위원회. 자유한국당 이주영 의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기무사가 지난해 탄핵정국에 작성한 계엄령 문건이 언론과 군 관련 시민단체가 폭로하고, 이어 청와대 차원에서 구체적인 세부계획이 담긴 문서가 폭로된 일련의 과정이 정치적 목적으로 기획되었다는 것이다.

같은 당 정종섭 의원이나 황영철 의원의 인식도 대동소이했다.

“…제일 우려되는 것이 냉정해야 하는데, 청와대가 앞서서 군사반란이다, 내란이라고 떠들기 시작하고, 기무사령관은 심각하다고 고함지르고, 중간에 장관이 객관적으로 냉정을 유지할 수 있겠나, 장관직을 유지하려면 ‘아, 군사반란이다’라고 동조해야지 장관직이 유지되니까” (정종섭)

“당시 송영무 장관은 기무사 문건을 처음 접한 뒤(올해 3월 16일) 기존에 취해온 장관 스탠스와 별 다르지 않은 판단을 했다고 본다. 그 이후에도 기무사문건에 관해서는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본다.”(황영철)

송영무 국방부장관의 반응은? 즉각 부인모드다. 냉정함을 유지했다, 다시 말해 ‘별로 중요한 문건으로 보지 않았다’는 황의원의 말에 대해 송 장관은 즉각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기무사 계엄 문건의 위중성을 보고 때부터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7월 24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 7월 9일 장관 주재 실·국장 간담회에 참석한 기무사 민병삼 대령이 그날 장관이 “법조계에 문의해보니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위수령 검토) 계획은 법적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자신도) 마찬가지 생각”이라고 발언했다고 증언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이 발언을 지렛대 삼아 3월 16일 기무사령관의 국방부 장관 보고 이후 적어도 회의시점까지 송 장관은 쿠데타 또는 내란모의 문건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청와대의 ‘강성기류’에 맞춰 입장을 바꿨다고 주장했다. 국방부는 “당일 송 장관이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으며, 저렇게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 기무사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례”라는 강경 입장이다.

반면 기무사 측은 당일 민 대령이 작성한 존안자료까지 공개하며 해당 발언이 있었다고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

3월 16일 보고받고 국방장관 침묵한 까닭은
앞에서 초유의 사태라고 한 까닭은 이날 여야 의원들의 출석요구에 응한 모양새였지만 통상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기무사의 핵심보직 인사들이 총출동해, 회의 비공개 요청도 없이 자신들의 신분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국정원이 원장과 1·2·3차장 등 대외적으로 공개돼 있는 수뇌부를 제외하고 실·국장 등 조직은 드러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민 대령이 총괄하고 있는 100기무부대는 국방부를 담당한다. 국방부 내외의 비리첩보, 인사정보, 각종 회의정보 등을 수집한다. 게다가 ‘하극상’이다. “완벽히 거짓말”이라고 말하는 장관의 발언에 대해 민 대령은 ‘36년째 군복을 입은 군인의 명예와 양심’을 거론하며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탄핵 당시 군부가 위수령에 이어 계엄령 선포를 검토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2016년 당시 정치권에서도 제기됐지만 논란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것은 올해 3월 8일, 시민단체 군인권센터가 수방사의 위수령 검토문건을 공개하면서부터다.

문건이 공개된 이후 국방부는 수방사 이외에 비슷한 문건이 작성된 경우가 있는지 조사해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7월 24일 국회 국방위에서 나온 기무사 측 설명을 종합하면 국방부 조사 지시 직후, 기무사 계엄 검토문건 작성작업에 참여한 인사가 해당 사실을 보고했고, 증언을 바탕으로 문건 작성 참여자와 작성문건을 파악해 기무사령관에게 보고한다. 이석구 기무사령관은 해당사항의 중대성을 인식해 참모들과 논의를 거친 다음 기무사 작성문건을 2부 마련한 후 3월 16일 오전 송 장관을 찾는다.

이날 송 장관이 보인 반응이나 면담시간 등의 증언은 엇갈린다.

확실한 것은 이 사령관이 준비한 문건 2부 중 1부를 장관 책상에 놓고 돌아갔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측은 “제보를 받았다”면서 기무사령관이 “2부를 가지고 나갔는데 빈손으로 돌아왔다”며, 나머지 한 부가 나중에 이 문건의 존재를 폭로한 이철희 민주당 의원이나 군인권센터에 건네졌다고 의심한다. 앞서 7월 9일 장관 간담회 당시 송 장관도 “기무사가 왜 이철희 의원에게 건넸는지 모르겠다”고 발언한 것으로 기무사 측이 국회에 공개한 이날 간담회 존안자료에 적혀 있다. 장관도 비슷한 의심을 한 셈이다.

8쪽 분량의 기무사 계엄문건(‘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2017.3.)’)은 이철희 의원(7월 5일)과 군인권센터(7월 6일)에 의해 차례로 공개된다. 두 문건의 판본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자료는 본래의 문건을 바탕으로 재작성한 것이었다. 이철희 의원이 공개한 문건에는 지워져 있는 핵심정보가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문건엔 밝혀져 있다.

논란이 확산되자 인도 방문 중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독립적인 수사단이 조사하도록 지시한다.(7월 10일) 이후 청와대는 이 문건을 뒷받침하는 세부계획을 담은 67쪽짜리 ‘대비계획 세부자료’를 공개한다.(7월 20일) 청와대의 공개에 앞서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군 합수부는 수사 개시 첫날(7월 16일) 해당 문건이 담겨 있던 USB 분석을 통해 ‘세부계획’ 문건이 있었음을 인지하고 국방부에 요청해 자료를 확보한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7월 20일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군으로부터 입수한 기무사의 계엄문건을 공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7월 20일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군으로부터 입수한 기무사의 계엄문건을 공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 민정 직보라인에 대한 ‘불신’
지난 3월 16일 기무사 측이 국방부에 넘긴 자료는 이 8쪽짜리 수행방안과 67쪽짜리 세부계획을 포함한 자료였다.

약 4개월간 해당 문건의 존재는 공개되지 않다가 국회의원과 군 관련 단체가 폭로하자 세상에 나온 것이다.

기무사 측은 <주간경향>에 “사령관이 2부를 출력해 간 것은 장관이 청와대 보고를 지시하면 바로 전달할 수 있도록 가져갔던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사안을 바라보는 송 장관의 ‘안일함’으로 진실 파악이 늦춰졌고, 그 실책을 덮기 위해 송 장관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7월 24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이석구 사령관은 “전달하지 못한 문건은 가지고 돌아와 점심을 먹은 뒤 본인이 직접 세절해 폐기했다”고 밝혔다.

송 장관 측의 인식은 다르다. 익명을 요구한 송 장관 측 인사는 “장관 비서실장 격인 군사보좌관을 맡고 있는 정해일 장군을 제외한 모든 보좌관이 민주당 당직자 및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으로 꾸려져 있는데 보고서 및 기밀문서가 장관보다 청와대 및 국회로 유출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장관은 기무사 계엄문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보좌관들이 정무적 판단의 필요성을 건의해 타이밍을 놓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별건 보고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청와대 민정과 기무사에 대한 ‘불신’을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이 인사는 꼽았다. 이 인사의 인식에 따르면 송 장관은 기무사와 대립 뿐 아니라 자신의 최측근 보좌진으로부터도 ‘고립’되어 있다.

국방부가 의심하고 있는 것은 청와대 비서실, 민정라인과 기무사의 커넥션을 통해 문건이 사전에 유출되었다는 것이다. 송 장관이 기무사가 제출한 문건을 묵살하고, ‘기무사 개혁’의 카드로만 활용하려 했기 때문에 직보라인을 활용해 외곽 공작을 했다는 의심이다. 실제 역대 정권 민정실에는 기무부대 요원이 파견되어 있다. 문재인 정부 민정실에도 기무사 파견인력이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주간경향>의 취재결과, 실제 문건 전달 경위는 국방부가 의심하는 경로와는 사뭇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논란과 무관하게 이번 국방부 기무사 갈등 파동은 4년 전 박근혜 정부 시절 벌어진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바로 2014년 12월 벌어진 청와대 정윤회 문건 파동이다.

비선실세 정윤회와 청와대 내 이른바 ‘십상시’가 정책 결정, 이권 개입 등에서 월권을 한다는 내용을 담은 이 문건들이 <세계일보> 보도를 통해 폭로됐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문건이 담고 있는 주장의 ‘실체적 진실’ 규명 대신 이 문건들의 유출자와 유출경위에 집중하는 식으로 사건의 방향을 틀었다. 전형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를 공격하는’ 진실 은폐 수법이다.

이번 경우, 논란을 일으켜 물타기를 시도하는 쪽은 누구일까. 계엄문건을 작성한 기무사?

7월 24일 국회에서 기무사 고위 간부들의 작심한 듯한 공격은 일견 그렇게 보인다. 그런데 그렇게 단순한 구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사가 마무리되면 해체 수준의 개혁을 당할 것은 알고 있다. 아마 인원도 대폭 감축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우리(기무사)가 잘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실은 사실대로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기무사 측이 <주간경향>에 밝힌 소감이다.

현재까지 문서 작성과 관련해 밝혀진 경위는 다음과 같다. 문건의 메인 부분, 즉 8쪽짜리 수행방안 문건은 3명의 책임자들이 주도했다. 그 중 두 사람은 밝혀졌다. 7월 25일 국회에 출석한 소강원 참모장(소장)과 기우진 기무사령부 5처장(준장)이다. 이들은 국회에서 “당시 한민구 국방장관의 요구에 따라 당시 조현천 기무사령관의 작성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증언했다. 참여한 인원은 총 14명이다. <주간경향>이 취재해본 결과, 이 작업은 기무사 내에서도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총 세 파트로 나뉜 문건 작성자들조차도 다른 파트의 진행상황을 알지 못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문건의 실체는 작성작업에 참여한 한 관계자가 지난 3월 국방부 조사에서 작업사실을 밝히면서 드러났다. 이 시점까지 기무사 외부에서 온 이석구 사령관도 해당 문건의 존재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내부 인사는 개인의견임을 전제로 “조현천 당시 사령관이 알자회 출신인 것은 맞지만 육사 출신 인사들의 조직적 쿠데타 계획으로 보는 것은 너무 나간 주장으로 본다”며 “소강원 참모장의 경우 육사 출신이 아닌 학사 출신이고, 또 문건 작성에 참여한 인사들도 그동안 기무사의 핵심보직 바깥에 배제된 인사들로, 이들은 위에서 시키니 과거 자료들을 참고해 문서를 생산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2017년 국군기무사령부 계엄령 문건 작성 책임자로 활동한 소강원 기무사 참모장이 7월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검찰단 특별수사단에 출석하고 있다. 특수단은 소강원 참모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혐의를 적용,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 김기남 기자

2017년 국군기무사령부 계엄령 문건 작성 책임자로 활동한 소강원 기무사 참모장이 7월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검찰단 특별수사단에 출석하고 있다. 특수단은 소강원 참모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혐의를 적용,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 김기남 기자

“계엄계획 탄핵촛불 초기부터 존재”
김병기 민주당 의원(국회 국방위)은 <주간경향>에 “계엄문건 작성 당시 조현천 기무사령관이나 문건 작성에 관여한 기무사 요원들은 해당 계획을 입안하고 추진했던 박근혜 정권 ‘이너서클’의 말단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지금 거론되는 한민구 전 국방장관보다 윗선에 쿠데타를 획책한 비선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김 의원이 주목하는 것은 이 문건들에 앞서 2016년 11월 3일 전후로 기무사가 작성했던 ‘통수권자 안위를 위한 軍의 역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국면별 대비방안’, ‘現 시국 관련 국면별 고려사항’이라는 제목의 초기 버전 문건들이다.

문건에 적시되어 있는 ‘국방부는 상황이 극도로 악화되어 질서유지가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대통령님께 계엄 선포 건의’ 등의 문구나 선포절차의 검토, 합동수사본부 설치 등의 내용은 이미 탄핵촛불 초기에 계획이 마련되어 있었고, 2017년 2월 한민구 국방부 장관 지시에 따라 작성되었다는 문건은 이미 수립된 골격에 세부 내용을 채워넣은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김 의원은 <주간경향>에 “기무사와 국방부의 대립은 비본질적 논란”이라며 “야권에서 쿠데타 실행계획이 아닌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개념계획에 불과했다는 주장을 내놓는데, 내란음모가 성립하는지에 관한 법적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이런 내용의 계획이 마련됐다는 것 자체가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수방사 문건에 이어 해당 문건의 존재도 폭로한 군인권센터 김형남 팀장은 “예하부대에 해당 문건이 전파되었다는 증거가 없지 않느냐는 반론도 있는데 쿠데타를 기획하는 측이 자신의 계획을 미리 알린 사례가 있었느냐”고 반문하며 “합참 계엄과라는 정식 경로를 배제하고 왜 기무사에서 계획문서를 작성하게 했느냐 등의 의혹이 차후 규명할 대상”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계엄령 문건’이 공개된 뒤 여러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국회 국방위에서 진실공방까지 벌어져 국민들에게 큰 혼란을 주고 있다.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가닥을 잡아서 하나하나 풀어갈 필요가 있다. 문제의 본질은 계엄령 문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왜 이런 문서를 만들었고 어디까지 실행하려고 했는지를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7월 26일 청와대가 공개한 이 사건과 관련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다.

이른바 정윤회 국정농단 문건 파동 당시 해당 문서들을 ‘지라시 수준의 문서’로 평가절하하면서도 청와대 문건 유출자 색출과 엄단을 지시한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정반대의 정공법을 취했다. 사태의 시작은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향후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갈 것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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