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치유재단 해산

정부, 인도주의적 사안에 ‘정치 타협 않겠다’는 분명한 메시지

2018.11.21 21:47 입력 2018.11.21 21:53 수정

‘파기’ 표현 안 썼지만 위안부 관련 합의 사실상 무력화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어 또 다른 외교적 갈등 불가피

한·일 과거사 문제 등 미래지향 ‘관계 재정립론’ 분출

21일 서울 중구 화해·치유재단의 사무실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이준헌 기자

21일 서울 중구 화해·치유재단의 사무실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이준헌 기자

정부가 21일 재단법인 화해·치유재단의 해산과 재단사업 종료를 결정함에 따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2015년 한·일 합의는 사실상 무력화됐다. 한·일 정부는 모두 ‘합의 파기’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합의의 핵심적 부분에 해당하는 ‘일본 정부 예산에 의한 재단 설립’과 ‘명예와 존엄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재단사업 진행’이 중단됐기 때문에 이 합의는 유명무실해졌다.

지난달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이어 위안부 합의도 무력화됨에 따라 당분간 한·일관계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긴장상태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조치는 예고된 것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 대표·대선후보 시절부터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월 뉴욕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국민의 반대로 화해·치유재단이 정상적 기능을 못하고 고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지혜롭게 매듭지을 필요가 있다”고 말해 사실상 재단 해산을 통보한 바 있다.

위안부 합의는 일본 정부 예산 10억엔에 의한 재단 설립 외에 ‘국제사회에 위안부 문제에 대한 상호 비판 자제’와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이전’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3가지 합의는 사실상 연동돼 있기 때문에 이번 화해·치유재단 해산으로 나머지 2개항의 합의도 무의미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위안부 합의 파기는 아니며 일본에 재협상을 요구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합의를 그대로 두기는 하겠지만 합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고 합의 내용에 구속되지도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정부의 이 같은 입장에는 ‘위안부 문제는 정치적 합의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라는 기본인식이 깔려 있다. 정부 간 약속이긴 하지만, 역사적·도덕적 배경을 가진 인도주의적 사안을 피해자의 의견을 반영하지도 않은 채 덮어버리려는 정치적 타협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위안부 합의 이후 일본 정부의 태도가 합의에 명시된 사죄의 진정성과 거리가 멀다는 점도 이 합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b>수요시위 시민들 ‘한·일 합의서 찢기’ 퍼포먼스</b>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 참가자들이 집회 장소인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2015 한·일 합의’라 적힌 종이를 찢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수요시위 시민들 ‘한·일 합의서 찢기’ 퍼포먼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 참가자들이 집회 장소인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2015 한·일 합의’라 적힌 종이를 찢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특히 화해·치유재단은 출범 당시부터 논란이 많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일 문제 전문가는 “다만 1엔이라도 일본 정부가 직접 피해자들에게 전달하고 사죄했어야 한다”면서 “재단 설립은 직접 사죄를 회피하기 위한 ‘1회용 돈 전달 창구’에 불과한 것”이라고 혹평했다.

일본 정부는 1995년 민간모금 형식의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국민기금’(아시아여성기금)을 후원하면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다 실패한 바 있다. 이번 화해·치유재단 해산은 일본 정부의 2번째 실패다.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해결을 모색하려 했던 일본의 시도가 한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탓이다.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위안부 합의가 무력화됨에 따라 한·일관계는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그러나 이번 일을 계기로 한·일관계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위안부·강제징용 문제는 모두 일제 식민지배에서 비롯된 사안이라는 점을 일본이 직시해야 한다”면서 “한·일관계의 미래를 위해 과거사 문제를 올바르게 정립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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