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수 총리후보자 지상검증

IMF 외환위기 초래 ‘책임론’

2008.01.29 03:12

이명박정부의 첫 총리로 지명된 한승수 유엔기후변화특사에 대해 국회 인사청문회 등을 통한 검증작업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전두환정권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5개 정권에 걸쳐 요직을 맡은, ‘30년 양지’의 삶을 두고 원칙과 정치적 소신의 문제가 검증 무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IMF 환란의 간접 책임 여부 등 그의 능력과 성과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관료·정치인·학자로서 한승수 총리 후보자를 지상검증했다.


[한승수 총리후보자 지상검증]IMF 외환위기 초래 ‘책임론’

노태우정부에서 상공부 장관, 김영삼정부에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김대중정부에선 외교통상부 장관.’

한승수 총리 후보자의 화려한 이력 중 관료로서의 주요 경력이다. 정권을 바꿔가며 요직을 차지했던 그의 최대 강점은 자신의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으면서 임명권자의 ‘의중’을 빠르게 읽어내는 것이었다.

한후보자는 김영삼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을 거쳐 1996년 8월 경제부총리로 임명됐다.

당시 한국경제는 기록적인 무역수지적자, 물가고,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1년 후 찾아올 외환위기의 ‘징후’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재벌의 방만한 경영과 부실은행을 정리하는 과단성 있는 조치들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시 한부총리는 취임 후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모든 경제주체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규제를 철폐하겠다”며 ‘시장개방’과 ‘민간자율’ ‘공기업 민영화’를 강조했다. 반면 전임 나웅배 부총리가 재벌기업의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추진하려 했던 연결재무제표의 도입은 ‘기업활력의 회복’을 이유로 백지화했다.

그는 외환위기의 경고에도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1997년 2월 국회 본회의 답변에서 “최근의 환율 불안은 일부 투기적인 요인이 가세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일시적 현상”이라며 “외채 규모는 우리 경제력을 감안할 때 관리가능한 수준”이라고 답변했다. ‘펀더멘털 튼튼론’의 원조격인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에 대해서도 그는 “이해득실을 따져본 결과 가장 걱정되는 것은 투기성 자금의 유입으로 경제가 어려워지는 것인데 투기성 자금의 유입을 막을 장치를 마련했다”(96년 10월26일 국민회의 방문)며 조기 OECD 가입이 몰고올 후유증에 대한 야당의 경고를 무시했다. 결국 한후보자는 한보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97년 3월 강경식 부총리에게 바통을 넘겨준 채 물러났다. 한후보자도 환란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셈이다.

그는 2001년 3월 외교장관에 올라 1년이 채 안된 2002년 2월 한·미 갈등 와중에 경질됐다. 장관 재임시절 김대중(DJ)정부의 햇볕정책을 옹호하는 발언을 대외적으로 많이 했다. 햇볕정책에 대한 미국의 지지가 견고하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으며 퇴임하던 날도 “미국도 결국은 햇볕정책 외에 다른 대안이 없을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그를 지켜본 외교부 관계자들은 “한장관은 절대 햇볕정책 지지자가 아니었다”고 털어놓는다. 정권과 코드를 맞추기 위해 대외적으로 자신의 소신을 감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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