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 헤매는 ‘떠돌이 행성’에 생명체가 산다고?

2022.01.23 21:40 입력 2022.01.23 21:41 수정

암흑 속 우주를 부유하는 ‘떠돌이 행성(Rogue planet)’ 상상도. 떠돌이 행성은 에너지를 줄 모항성이 없지만, 중력에 의해 마찰열을 일으킬 위성을 가졌다면 생명체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과학계 의견이 제기됐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공

암흑 속 우주를 부유하는 ‘떠돌이 행성(Rogue planet)’ 상상도. 떠돌이 행성은 에너지를 줄 모항성이 없지만, 중력에 의해 마찰열을 일으킬 위성을 가졌다면 생명체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과학계 의견이 제기됐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공

44억년 전 지구 곁의 달처럼
중력으로 행성을 쥐어짜면
‘조석 가열’에 의한 물 생성 등
에너지 공급 환경 만들어져

어느 날, 지구에 이전에는 본 적 없는 극심한 이상기후가 닥친다. 가뭄으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산지에선 화재가 잇따른다. 식량이 부족해지면서 소요 사태가 벌어지고, 물이 줄어들면서 도시가 소멸한다. 재앙이 생긴 건 태양이 급격히 팽창했기 때문이다. 태양이 100년 뒤에는 지구를, 300년 뒤에는 태양계 전체를 삼킬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자 각국은 연대해 긴급 대응에 나선다. 지표면에 대형 엔진 1만개를 달아 지구를 태양계에서 약 4광년 떨어진 안정적인 별 ‘프록시마 센타우리’로 끌어내기로 한 것이다. 2019년 개봉한 중국 영화 <유랑지구> 얘기다.

■ ‘떠돌이 행성’에 생명체 가능성

<유랑지구>처럼 지구를 공전 궤도 밖으로 빼내 우주를 돌아다니도록 하는 일은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하다. 언제쯤 가능할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우주에는 <유랑지구> 속 지구와 비슷한 행성이 여럿 있다. 이른바 ‘떠돌이 행성(Rogue planet)’이다. 떠돌이 행성은 별이 되기에는 못 미치는 덩치를 지니고 홀로 태어났거나 행성계를 돌다 중력이 뒤틀리며 먼 우주로 내쳐진 존재들이다. 별 주변을 돌지 않는 만큼 지표면은 지독히 춥다.

과학계에선 떠돌이 행성의 숫자가 아주 많을 것으로 본다. 지난해 프랑스 보르도대 연구진은 우리 은하에 총 수십억개에 이르는 떠돌이 행성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2011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 연구진은 이보다 훨씬 많은 수천억개가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별처럼 빛나지 않기 때문에 찾기가 매우 어렵다. 실제 확인된 건 수십개 수준이다.

그런데 이런 떠돌이 행성에도 생명체가 살 수 있을 거라는 견해가 나와 주목된다. 세계적인 스테디셀러 <코스모스>의 저자이며 저명한 과학자인 칼 세이건이 창립한 국제 천문연구자들의 모임인 ‘행성협회(The Planetary Society)’는 지난 18일 떠돌이 행성에서 생명체가 발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 ‘조석 가열’로 열기 형성

떠돌이 행성에는 빛을 공급하는 모항성이 없다. 광합성을 중심으로 한 생체 활동이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생명체가 있을 수 있다니 무슨 말일까. 행성협회가 주목하는 건 위성이 딸린 떠돌이 행성의 존재 가능성이다.

떠돌이 행성의 위성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있다면 이런 위성은 떠돌이 행성 내부에 마찰열을 만든다. 위성의 중력이 떠돌이 행성을 짓눌렀다 펴는 일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과학계에선 이를 ‘조석 가열(tidal heating)’이라고 부른다. 빛이 안 드는 방에 앉아 있더라도 손으로 몸을 비비면 추위를 어느 정도 이길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열은 떠돌이 행성 내부의 얼음을 녹여 물을 만들거나 생명체에게 에너지를 공급한다.

행성협회는 44억년 전 지구에서도 비슷한 일이 나타났다고 본다. 당시 달과 지구의 거리는 지금의 15분의 1에 가까웠다. 달의 중력이 지구를 강하게 쥐어짜며 열을 만들었다. 이 열은 지구가 생명의 토대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 2007년 나온 미국 과학계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면 지구 질량의 행성이 달 크기 위성을 보유할 가능성은 4%에 이른다. 조석 가열을 일으킬 만한 위성을 가지는 건 지구만이 아니라 떠돌이 행성도 누릴 수 있는 행운이라는 뜻이다.

목성 주변을 도는 위성 ‘유로파’의 예상 단면도. 과학계는 목성의 강한 중력 때문에 생긴 마찰열로 유로파 내부에서 얼음이 녹으며 바다(파란색 테두리)가 생겼을 것으로 보고 있다.  NASA 제공

목성 주변을 도는 위성 ‘유로파’의 예상 단면도. 과학계는 목성의 강한 중력 때문에 생긴 마찰열로 유로파 내부에서 얼음이 녹으며 바다(파란색 테두리)가 생겼을 것으로 보고 있다. NASA 제공

목성 주변을 도는 ‘유로파’처럼
위성에도 생물 있을 가능성
‘위성 달린 행성’ 존재 여부 주목

■ 제2의 ‘유로파’ 만날까

조석 가열은 떠돌이 행성을 도는 위성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예측이 가능한 건 태양계에 이미 좋은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목성 위성 ‘유로파’이다. 유로파는 강한 중력을 지닌 목성에 의해 찌그러졌다 펴지는 일을 반복해 겪는다. 이 때문에 지하에는 얼음이 녹아 생긴 대규모 바다가 있을 것으로 과학계는 예상한다. 유로파 표면 온도는 영하 170도에 이르지만 조석 가열로 인해 지하에는 ‘따뜻한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유로파가 품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바닷물 양은 지구의 두 배다.

일부 과학계에선 해양 생물이 살지 모른다는 기대감까지 나온다. 이런 일이 떠돌이 행성을 도는 위성에서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떠돌이 행성, 그리고 그 주변을 도는 위성을 외계 생명체 탐색 대상에서 빼는 관행을 바꿔야 한다는 시각이 과학계에선 나온다. 지구처럼 적당한 빛을 받는 환경이 오히려 특이한 경우일 수 있다는 얘기다. 행성협회는 “지구 생물들은 흔하지 않은 환경에서 사는 이상한 생명체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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