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하오 항저우

우한처럼 마지막엔 웃을까, D.P.R Korea로 불러달라는 북한

2023.09.30 12:05

북한 정성심 여자농구대표팀 감독이 지난 29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올림픽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농구 남북 대결에서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정성심 여자농구대표팀 감독이 지난 29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올림픽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농구 남북 대결에서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제대회에선 선수 뿐만 아니라 취재진도 시험대에 선다. 아는 얼굴만 만나선 낙제점, 타국 선수나 감독과 어느 정도 마음을 나눌 수 있어야 합격점을 받는다.

그러지 못해도 이해받는 대상은 있다. 북한이다. 같은 핏줄에 같은 말을 쓰는데, 평범한 대화조차 나누기 쉽지 않다. 질문을 던질 때 은은한 미소로 답하면 양반이다. 모른 척하고 지나가기 일쑤고,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

북한이 3년여 만에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국제 무대에 복귀하면서 옛 기억도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 유도에서 빚어진 첫 남북 대결의 악수 그리고 선수끼리 친분이 깊은 탁구 현장의 믹스드존(공동취재구역) 인터뷰에서 한숨을 내쉬게 만들었다.

지난 29일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농구의 ‘남북 대결’이 결정타였다. 한국이 북한에 81-62로 승리한 뒤 북한 정성심 감독이 참석한 공식 기자회견이 열렸는데, 북한 취재의 불문율이 재확인됐다.

한국 기자가 정 감독에게 던진 가벼운 질문에서 ‘북한’이라는 표현이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질문 자체는 평이했다. “북한 응원단이 열정적인 응원을 보내줬는데 어떻게 느끼셨는지 소감이 궁금합니다. 또한 국제 대회에 오랜만에 나오셨는데 음식이 입에 맞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나 통역을 위해 동석한 것으로 보이는 북한 관계자는 정 감독의 답변을 가로막은 채 질문한 기자를 질타했다.

그는 영어로 “우리는 North Korea가 아니라 D.P.R Korea”라면서 “아시안게임에선 모든 나라에 정확한 이름을 불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명분이 뚜렷한 지적이라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기자의 질문 의도와 달리 기자회견의 분위기도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사실 북한이 한국을 만날 때마다 ‘북한’이라는 표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다. 2015년 중국 우한에서 열린 동아시안컵(현 E-1 챔피언십) 사전 기자회견에서 같은 사건이 일어나자 “똑바로 말하라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아니면 북측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지 않습네까”라고 받아친 적도 있다. 당시와 다른 게 있다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신 영문명인 D.P.R Korea가 쓰였다는 정도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취재진들은 항저우에서 9년 만에 옛 기억이 되살아났다. 동시에 대회 막바지에는 부드럽게 변했던 북한과 교류도 떠올랐다. 당시 김창복 북한축구대표팀 감독은 대회 마지막 기자회견을 마친 뒤 얼굴이 익숙해진 취재진들의 손을 일일이 잡으며 “고생했다”고 인사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같은 마지막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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