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5) 후쿠시마 남은 사사키 교수

2013.03.10 22:02 입력 2013.03.10 22:43 수정

“원전 25㎞ 떨어진 곳서 치매 아내와 ‘자택 농성’”

“국가가 개인 행복 못 지켜준 게 후쿠시마 사고”

사사키 다카시 전 도쿄준신여대 교수(73)는 2011년 3월11일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제1원전이 폭발했을 때 이웃들의 피난 행렬에도 집을 떠나지 않았다. 원전에서 25㎞ 떨어진 미나미소마시 하라마치구 자택에서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며 ‘자택 농성’에 들어갔다. 농성을 벌인 이유는 정부의 행정 편의주의에 대한 분노 때문이다. 정부는 ‘옥내 대피지역’으로 지정해놓고는 시내 병원과 노인시설을 30㎞ 권역 밖 시설로 이송했다. 이동 과정에서 의료진, 간병인의 도움 없이 이리저리 내돌려지다 사망한 노인 수만 사고 직후 1주일 동안 40~50명이었다. 정부 조치에 혼란과 불신을 느낀 주민 3만여명 중 80%가 자발적으로 피난을 가서 ‘가혹한 대피소’ 생활을 감수했다.

사사키 교수는 “명백한 과실치사에 해당하는 범죄라고 생각했다”며 “최선의 선택은 권내에 머무르며 의사나 스태프, 약품과 식료품을 시급히 보급하도록 국가와 현에 강력히 요구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무인지경이 된 집에서 블로그 ‘모노디아로고스’(스페인 사상가 우나무노가 만든 말로 ‘독백’을 뜻한다)를 쓰며 “버림받은 마을에서 쌓이고 쌓인 분노와 항의, 탄식의 소리” 등을 토해냈다. 일본에서 주목받은 블로그(http://fuji-teivo.com)는 중국·스페인에 이어 한국에서 <원전의 재앙 속에서 살다>(돌베개)란 책으로 번역됐다. 동일본 대지진 2주년을 맞아 원전 사고의 비극과 혼란의 현장에서 비판적 성찰을 보여준 사사키 교수와 e메일 인터뷰를 지난 6일 진행했다. 번역은 <원전의 재앙 속에서 살다> 역자인 형진의 한남대 교양융복합대학 교수가 맡았다.

사사키 다카시 교수는 ‘자택농성’을 벌이며 국가와 개인,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깊게 사유하고 있다. ‘사랑의 보금자리’인 ‘농성장’에서 치매를 앓고 있는 부인을 수년째 돌보는 그는 “아내 요시코를 중심으로 생활하는 데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 돌베개 제공

사사키 다카시 교수는 ‘자택농성’을 벌이며 국가와 개인,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깊게 사유하고 있다. ‘사랑의 보금자리’인 ‘농성장’에서 치매를 앓고 있는 부인을 수년째 돌보는 그는 “아내 요시코를 중심으로 생활하는 데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 돌베개 제공

▲ “국민과 동떨어진 정치 선명하게 드러났다”
블로그에 올린 글 모은 ‘원전의 재앙…’ 한국 출간

- 한국어판 출간 소감은.

“친척 집에 인사드리는 것 같은 긴장과 기쁨을 느낀다. 원전 피해지역에 살면서 과거 조선인, 중국인이 겪은 고통과 슬픔을 이해할 수 있는 처지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일본제국에 빼앗긴 들’과 ‘국책 원전 사고로 빼앗긴 들’은 연결된다고 본다. 조선인, 중국인의 고통이나 슬픔을 먼저 ‘느끼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것을 감추거나 흐지부지하는 한, 진정한 화해도 우호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 책의 여러 군데에서 ‘국가’를 비판했는데, 계기는.

“어렸을 때, 구만주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많은 일본인들이 황군(일본군)이나 국가로부터 버림받는 것을 보면서 비판적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국민국가(nation)라는 ‘국가(state)’의 형태는 100여년에 지나지 않는다. 저는 일본인이기 이전에 도호쿠 사람이고, 어쩌면 아이누의 피를 이어받았을 수도 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영토분쟁 지역에도 원래 그 근해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어느새 중국·조선·일본 등으로 선이 그어지고, 그곳에 사는 어민들은 그때마다 생활수단을 빼앗기고 혼란을 겪는 것이라고 본다.”

- 스페인 사상가 우나무노의 ‘내적인 역사’를 언급했는데.

“정치가들의 등장과 전쟁을 역사의 주역으로 보는 관점이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역사라는 큰 바다의 표면에 나타나는 작은 움직임이다. 그런 파도의 밑바닥에는 서민의 일상이 있다. 어리석은 정치나 국책 때문에 서민의 삶이, 예를 들면 나라 밖으로 내몰린다든지 분단된다든지 하는 비극이 일어나는 일도 있다.”

- “원전 문제는 궁극적으로 국가와 개인의 관계성에 관한 문제”라고 책에 썼는데, 부연한다면.

“먼저 인간·개인이 있고, 국가는 그 개인의 집합체인 사회의 위탁을 받아 성립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 관계성이 언제나 당연한 듯이 뒤집힌다. 원전 문제는 그 본래의 관계성을, 즉 국가는 개인의 행복을 지키는지 아닌지를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리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국가라고 할 수 있다.”

- 원전 사고 후 정치에 대한 생각은.

“정치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자칫하면 오히려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으로 변질돼버린다. 원전 사고 후에 정치가 얼마만큼 국민과 유리된 것이었는지, 국회 심의 등을 보면 이전보다 선명하게 보인다. 민주주의, 의회정치 등 모든 면에서 금속성의 피로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원전 사고를 계기로 원점으로 돌아가 정치 본연의 자세를 되짚어야 하는데, 여전히 땜질식 정치를 하고 있다.”

- 재앙 속에서 사람들 간 연대나 불신의 문제는 어떻게 보나.

“대지진은 사람들의 마음을 서로 묶어주면서도 서로의 다름도 실감하게 했다. 진정으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나 조직과 전혀 의지할 수 없는 사람이나 조직이 확실히 구분됐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부분들, 이해관계가 그대로 드러났다. 인간관계, 사회에도 액상화(바닷물이 땅속으로 들어가 단단한 지반이 액체화되는 현상)가 있었다. 인간은 서로 돕고 의지하는 것이라는 기본 조건을 단순히 머리로만이 아니라 뼛속 깊이 체득해야 한다고 본다.”

- 인간을 불안정하고, 연약한 존재로 내몬 것 중 하나로 투기적 욕망을 꼽았다.

“투기적 욕망을 정당화하는 게 국제경제다. 일순간에 육친을 잃어버린 비극 직후에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온 뉴스가 엔화 폭락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 잔혹한 현실, 즉 인간의 불행이 누군가의 투기적 욕망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는 세계경제의 잘못된 현실을 이상하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어버린 것 같다.”

- 한국 정부는 에너지원이 확보된다는 전제하에 추가 원전을 ‘재검토’한다는 입장이다. ‘탈원전’과는 거리가 있는데.

“한국 상황은 잘 모른다. 일본이 탈원전 노선을 표명하지 않는데 다른 나라에 조언하는 것도 온당치 않다. 그러나 한국이 일본이나 다른 아시아에 앞서 탈원전을 선언하는 나라가 돼달라는 말씀은 드리고 싶다. 핵폐기물의 안전한 처리방법이 아직 없는데 그것의 평화이용을 말하는 것은 완전히 언어도단이다.”

- 북한의 핵실험 때문에 한국, 일본에서 핵무장론이 나온다.

“일본은 북한에 핵실험 중지를 요구하면서 동시에 미국 등 핵보유국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폐기를 주장해야 설득력이 있다. 핵실험만 비난하는 것은 정치적 퍼포먼스에 지나지 않는다.”

- 청년들에게 “필요할 때 분노하라”고 강조했다.

“일본인은 정당하게 화내는 것을 잘못한다고 생각한다. 일렬횡대로 항의하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분명한 태도로 나타내는 것은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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