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퇴사하는 이유

2020.11.09 03:00 입력 2020.11.09 03:02 수정

퇴사를 했다. 짐을 정리해 나오며 갓 취업할 때가 생각이 났다. 오랜 기간 훈련을 받고 몇 번의 면접을 보고서야 겨우 얻어낸 자리였다. 취업준비를 하는 시간이 괴로웠던 만큼, 회사에 입사하는 일이 마치 구원처럼 느껴졌다.

망각은 축복이라고들 한다. 내가 만약 취업준비를 하던 시절의 고통을 그대로 생생히 돌이킬 수 있었다면, 두려움에 가득 차 회사를 관둘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회사를 정하고 관두었을 것이고, 중간에 쉰다는 생각은 상상조차 못했으리라. 취업했을 때의 환희, 연봉이 올랐을 때의 기쁨, 일을 배우고 업무를 마무리하는 보람찬 느낌들이 영원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힘들었던 시절이 잊히듯 좋았던 기억도 금세 희미해지는 법이다.

박진웅 편의점 및 IT 노동자

박진웅 편의점 및 IT 노동자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꽁꽁 얼어버린 취업시장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관둔다. 취업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퍼부은 이들이 몇 년 만에 다시 바깥으로 나온다. 어떤 사람은 더 나은 직장을 위해, 어떤 사람은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또 어떤 사람은 새로운 삶을 찾아서 회사를 관둔다.

왜 사람들은 스스로 회사를 떠나는 걸까? 적어도 나는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보람도 즐거움도 느낄 수 없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갔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상사가 아무도 없게 되자 말단인 내게 계속해서 바뀌는 요구와 촉박한 일정들이 쏟아졌다. 내 연차에 해결하기 어려운 일들은 쌓여만 가는데 공부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급한 대로 일을 해결하기 위해 작업의 퀼리티는 낮아졌고, 결과물들은 점점 짐이 되어갔다. 설상가상으로 인원이 부족하자 개발 외의 업무까지 도맡게 되었다. 몸과 마음이 점점 지쳐갔다.

어느 날 일을 하다 문득 왜 개발자가 되었을까 생각했다. 행정학과를 나와서 컴퓨터로는 게임과 인터넷밖에 하지 않던 내가 왜 프로그래밍을 업으로 삼게 되었을까. 답은 간단했다. 나는 이 일을 하는 시간이 무척 재밌고 즐거웠다. 생판 모르는 것들을 배우는 일은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 시간들마저 즐거웠다. 지금 조금이라도 즐거운가? 아니! 그래서 더 이상 이 일이 싫어지기 전에 과감하게 그만두기로 했다.

당연히 두렵다. 초조하고, 무섭다. 재취업이 안 되면 어떡하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고 몸서리친다. 그렇지만 내가 양보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면 일에 열정을 갖고 쏟는 시간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일을 하지 않고는 먹고살 수 없는 삶 속에서, 일하는 시간이 그저 불행하기만 하다면 그것은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매일의 대부분을 불행하게만 보내야 하는 삶은 얼마나 끔찍한가!

누군가는 이를 배부른 투정이라 할 것이다. 맞다. 정말로 절박한 사람들에게 일이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은 사치일지 모른다. 직장인들이 입버릇처럼 퇴사하고 싶다고 말하고, 그럼에도 먹고살 길이 막막하여, 가장의 책임이 막중하여, 불안한 삶이 두려워 이를 악물고 버틴다. “일은 원래 고통스럽고 힘든 거야.” 그들에게 나의 결정은 무모하고 어리석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일 속에서 아무런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일이 점점 싫어지는 것이 불확실한 미래보다 더 무서웠다. 고통스럽고 힘들게 일하는 와중에도 분명히 보람과 기쁨이 있었음을 기억한다.

다시 구직을 한다. 불안하고 초조하지만, 함께 일할 동료들이 있고 배울 수 있는 선임이 있으며 열정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자리를 찾고 있다. 과한 욕심일까? 상관없다. 어떤 직장이든 지내다 보면 또 힘든 순간이 올 거라는 것쯤은 안다. 어쩌면 그게 본질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떠한가, 즐겁고 기쁜 순간 또한 돌아올 것을! 그러니 언제고 다시 고통스러워질지라도 지금은 차라투스트라가 되어 크게 말하고 싶다. “그것이 삶이었던가? 좋다! 그럼 다시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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