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인터뷰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 “한·일, 서로 상대할 수 없다는 생각 버리고 최소한의 타협 시도해야”

2019.10.03 21:18 입력 2019.10.03 23:29 수정

한·일 갈등 분석

한국 정치와 한·일관계 연구로 일본 내 대표적인 ‘지한파’ 학자로 꼽히는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가 지난달 26일 도쿄대 고마바 캠퍼스 내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한국 정치와 한·일관계 연구로 일본 내 대표적인 ‘지한파’ 학자로 꼽히는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가 지난달 26일 도쿄대 고마바 캠퍼스 내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양국 정부, ‘외부의 적’을 설정해 정치적 이득…국익을 위해선 서로 좋지 않아
적대시보다 서로의 외교적 가치 경시하는 게 문제…현실적으로 타당한지 의문
완전히 새로운 체제 합의는 불가능…자기 혁신 계속한 65년체제 발전시켜야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도쿄대 교수(59)는 한·일 경제충돌 등 갈등을 두고 “아베 신조 정부도, 문재인 정부도 강경 자세로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타협이 불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26일 도쿄대 고마바(駒場) 캠퍼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내년 초 일본 기업 자산이 현금화된다면 아베 정부는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정치적으로 운용할 것이고, 문재인 정부도 일본에 더 공격적이 될 것이다. 경제전쟁이 될 위험이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양쪽 모두 현 상황을) 국내적으로 이용할 만하다고 보기 때문에 잘된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도 했다. 현재 관계 악화가 양국 정부의 정치적 판단과 상호불신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미야 교수는 “최근 일본도 마음에 안 드는 존재를 바깥에 설정해두면 정부에 대한 지지가 결집한다. 아베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그 같은 선택을 계속하고 있다고 본다”고 했다. ‘한국 때리기’가 유리하다고 아베 정권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한국 측이 일본의 반한 여론을 단순히 우경화로 규정하고 대응하지 않는 건 문제라고 했다. 기미야 교수는 “아베 정부도, 문재인 정부도 상대방 정부와 상대할 수 없다는 생각을 버리고 국익을 위해 최소한의 타협을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미야 교수는 1985년부터 1989년까지 고려대 박사과정에 재학하면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한열 열사 사망 사건, 6월 민주항쟁 등 한국 민주화의 격동기를 지켜봤다. 이후 30년 넘게 한반도 정치와 국제관계를 연구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한·일관계가 최악이다.

“지난해 한국과 일본을 오간 사람이 1000만명을 넘었다. 아주 긴밀한 교류가 됐는데도 이렇게 관계가 나빠진 건 처음이다. 한·일관계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냉전 시대의 비대칭적·상호보완적 관계에서 냉전 종식 이후, 특히 2000년대 들어 대칭적·상호경쟁적 관계로 바뀌었다. 일본은 한국이 뭐라고 해봐야 큰 손해를 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국은 커졌고 국제사회에서 일본을 더 비판하고 있다.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한국은 이제야 일본을 비판할 수 있고,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 일본은 국내 정치 상황을 고려하는 것 같다.

“문재인 정부와 아베 정부의 선택은 외교적으로 아주 서툴다. 하지만 (양쪽 모두 현 상황을) 국내적으로 이용할 만하다고 보기 때문에 잘된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징용 판결 이후 문재인 정부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사법 판단에 개입할 수 없다고만 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는 정말 놀랐다. 한국 정부에 대한 미국 정부의 신뢰를 더 떨어뜨린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트럼프’로 생각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만 잡으면 한·미관계는 문제없다는 거다. 하지만 미국 정부 전체로 볼 때 과연 현명한 선택이었나. 아베 정부의 수출규제도 너무 이상하다. 징용 판결에 대한 예방적 대항조치임에도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 양국 정부의 불신도 원인인가.

“서로를 적대시하기보다 경시하고 있다. 남북, 북·미 관계를 해결하려면 일본의 협력이 필요하고 한·일관계를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다. 일본은 외교에서 한국 비중을 계속 떨어뜨렸다. 한국은 중국 측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한국 외교 속에 일본을, 일본 외교 속에 한국을 서로가 아주 낮게 보고 있다. 그게 현실적으로 타당한지 의심스럽다. 또 문재인 정부에 영향력이 있는 학자들은 ‘아베 총리가 협력할 생각이 있느냐’ ‘일본은 남북이나 북·미 관계를 잘하면 따라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 문제가 복잡하게 얽혔다.

“일본 내에선 미·중 대립의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중·일관계를 잘 관리해야 한다는 현실주의적 사고가 있다. 중국은 대국이라서 그렇게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다.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도 바깥에 마음에 안 드는 존재를 설정해놓으면 정부에 대한 지지가 결집한다. 아베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그 같은 선택을 계속하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양국 국익을 위해 이런 한·일관계가 과연 좋은 것이냐.”

[창간기획-인터뷰]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 “한·일, 서로 상대할 수 없다는 생각 버리고 최소한의 타협 시도해야”

- 정치적 의도라는 지적이 있다.

“처음부터 노렸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결과적으로 덕을 본 건 확실하다. 참의원 선거 때 아베 정권을 둘러싼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한·일관계만 뉴스가 됐다. 날마다 와이드쇼에서 한국은 이만큼 형편없는 나라라는 식으로 조국 법무부 장관 문제를 멸시하듯 보도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런 나라와 좋은 관계를 맺기 어렵다는 거다. 일본에서 한국 이미지는 1970년부터 계속 좋아지다가 최근 10년간 떨어지고 있다. 한국에 호감을 갖게 됐는데 계속 비판만 하니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다.”

- 한·일 여론을 어떻게 보나.

“한국에선 역사가 있으니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아지기 어렵지만, 한국에 대한 일본 국민감정은 갑자기 나빠졌다. 한국 정부나 사회가 일본 변화에 대해 너무 둔감하다. 이건 우경화와 다르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와 어떻게 사이좋게 지낼 수 있냐는 거다.”

- 징용 문제 해법이 있을까.

“국내 여론상 일본과 타협하는 게 힘들지만 현금화 조치만이라도 미룰 필요가 있다. 물론 일본 정부가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됐다. 한국 정부는 판결도, 협정도 존중할 수 있는 안을 만들어 일본 정부에 제시하고 협상할 수밖에 없다. 또 판결과 협정이 양립하기 위해선 일본 기업도 관여할 수밖에 없지 않나. 물론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 일본 정부도 안된다고 하지 말고 기업에 자율적으로 맡겨야 한다.”

- 안보에도 영향을 미쳤다.

“북핵 문제에 대해 문재인 정부와 아베 정부 입장이 일치한다고 보기 어렵다. 한국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믿고 트럼프 대통령을 끌어들여 뭔가 해보려 한다. 아베 정부는 북핵 해결을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북핵의 최대 피해자는 한·일이고, 비핵화의 최대 수혜자도 한·일이니까 협력해야 하는데 서로가 괴리를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 미·중 대립에 대해서도 일본은 미·일동맹을 강화하자는데 한국의 입장은 애매하다. (일본에선 한국이) 어차피 중국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럼에도 미·중 대립 구도 속에 한·일은 공통의 이익을 찾아야 한다. 한·일이 외교적으로 협력할 만한 길을 찾아야 한다.”

- 미국 태도는 어떻게 보나.

“미국 정부가 걱정하는 건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트럼프 정부로선 한·일관계가 나쁜 것을 이용할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한·일이 미국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충성 경쟁을 하게 만드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이 중재 역할을 하리라고 보기 어렵다.”

-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어디서 찾아야 하나.

“한·일 경제가 모두 피해를 보고 있다. 한국도 피해를 보는 분들이 있는 만큼 그런 분들이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아베 정부도, 문재인 정부도 서로 상대할 수 없다는 생각을 버리고 국익을 위해 최소한의 타협을 시도해야 한다.”

- 관계 재정립 필요성이 있나.

“19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성립된 ‘65년체제’를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체제에 한·일이 합의할 수 있나. 아베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생각하는 ‘새로운 체제’는 완전히 다르다. 65년체제는 자기혁신을 계속해왔다. 아시아여성기금, 위안부 문제 합의, 무라야마 담화, 한·일 파트너십 선언 등이 그렇다. 65년체제에서 일본도, 한국도 이익을 봤다. 65년체제가 이뤄낸 것에 대해 서로 깊이 생각하고 발전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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