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타격, 물가상승, 전력난
물 둘러싼 정치적 갈등도 격화
올여름 세계를 덮친 폭염과 극심한 가뭄이 농업에서 첨단산업까지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올리브, 토마토, 감자 등의 흉작이 예상되고 원자력, 수력을 중심으로 전력생산도 감소했다. 구글, 메타 등 글로벌 기업의 데이터센터까지 물 부족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만큼 물을 둘러싼 갈등도 격화되고 있다.
타들어가는 농지 …가축 먹일 물도 없다
500년 만의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는 유럽에서는 식탁에 단골로 오르는 올리브, 토마토, 감자 등 농산물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자국 농업 생산의 30% 가량을 차지하는 북부 포강 유역 5개 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고온과 가뭄으로 이 지역에서 올리브와 쌀의 생산량이 감소해 가격이 최대 50%까지 오를 상황이다. 살구, 배, 복숭아 등 과일도 흉작이 예상된다.
프랑스는 지자체 101곳 중 93곳에 가뭄 경보를 발령했다. 국제 농업 정보업체 스트레티지 그레인스에 따르면 올해 프랑스의 밀 수확량은 5%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 농산물의 18%를 공급하는 프랑스는 중국, 인도, 러시아, 미국에 이어 세계 다섯 번째 밀 생산국이다. 살레 등 일부 지역에서는 가축에게 먹일 물이 없어 처음으로 전통 치즈 생산을 중단했다. 원전 냉각수도 부족해 이달 말까지 가뭄이 지속되면 프랑스 정부는 루아르 평원의 건초 농업에 투입되는 물 공급을 줄일 계획이다. 독일 농민협회에 따르면 독일의 올 하반기 감자, 사탕무 수확량은 30~40% 감소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가뭄으로 인한 물가상승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포르투갈은 산불로 인해 7만9000헥타르의 토지가 피해를 입었다.
가뭄으로 인한 농업 피해는 다른 대륙에서도 극심하다. 유엔에 따르면 미국도 7월 말 기준 국토의 43%가 가뭄의 피해를 보고 있다. 중국 양쯔강 유역도 최근 가뭄이 찾아와 64만 헥타르가 영향을 받고 있다. 3년 연속 우기가 없는 이상 기후가 벌어지고 있는 동아프리카에서는 5000만명이 기근으로 사망할 위험에 처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달 발표한 ‘세계 곡물 수급 개요’에서 올해 곡물 생산량이 4년 만에 감소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전력생산·물류 감소…‘물 먹는 공장’에 반감도
농업뿐만 아니라 산업 부문도 흔들리고 있다. 가뭄으로 인해 산업의 바탕이 되는 전력생산과 운송이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에너지분석 기업인 라이스타드에너지에 따르면 7월 기준 유럽 전체의 수력발전량은 1년 전보다 20% 감소했다. 특히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는 수력발전량이 40% 넘게 감소했다.
유럽의 원전발전량 역시 12% 줄었다. 프랑스는 냉각수 부족으로 56기의 원자로 가운데 절반을 가동중단시키고 전력을 영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영국도 템스강 수위가 최저를 기록하는 등 기록적 가뭄에 시달리고 있어 프랑스의 에너지 수급은 경고등이 켜진 상태이다.
독일의 라인강 수위도 계속 감하고 있으며 남서부 카우브 인근에서는 30cm까지 내려갔다. 일부 운송업체는 중상류 지역의 화물운송을 중단했다. 헝가리 다뉴브강, 이탈리아 포강 등의 수운도 제대로 운영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 쓰촨성은 폭염과 가뭄으로 전력부족 현상이 발생하자 15일부터 20일까지 엿새간 성내 모든 산업시설의 가동을 중단하고, 폭염 휴가를 실시하도록 했다. 폭스콘과 토요타의 현지 생산공장 가동이 중단된다. 세계 배터리 1위 업체 CATL 공장도 쓰촨성 청두에 있어 세계 각국의 전기차 생산도 이번 조치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첨단산업도 영향을 받고 있다. 구글, 오라클 등은 지난 7월부터 유럽 데이터센터 냉각 관련 장애 공지를 자주 올리고 있다. 데이터센터의 냉각을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 부족, 전력 부족 현상이 심화되면서 지역 주민들의 반감도 커지고 있다. 메타는 최근 네덜란드 흐로닝언에 신규 데이터센터를 개설하려 했으나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네덜란드 정부는 데이터센터 설립 기준을 더 엄격하게 만들고 올 11월까지 신규 허가를 내 주지 않을 계획이다.
“가뭄 아니라 약탈” 물 분배 문제 불거져
인구 500만명이 거주하는 멕시코의 몬테레이는 물부족이 지역 사회에 불러올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몬테레이 주민들은 식수 배급을 받을 정도로 물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변기 등에 사용할 물이 부족해 농업위기를 넘어 위생위기로 번질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상황이 이런 데도 지하수는 코카콜라, 하이네켄 등 지역의 주요 공장들이 우선 사용하고 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까지 나서서 기업들에 지역 주민과 물을 나눠 쓸 것을 요청하고 있지만 제대로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 부유한 지역이 더 많은 물을 할당받고 있다는 불만이 커지면서 연일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시민들은 “가뭄이 아니고 약탈”이라며 불평등한 수자원 분배를 비판하고 있다.
유엔은 가뭄 빈도와 기간이 2000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거의 30%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유엔은 2050년까지 가뭄이 세계 인구의 75% 이상에게 영향을 주고 2억1500만명 이상이 살던 곳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