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린 줄도 모르고 바보같이 출근”했던 그녀들의 투쟁, 16일의 진화

2014.11.19 06:00

“나를 위해 외치다, 이젠 파견노동자를 외쳐요”

지난달 27일 오전 김건희씨(23)는 평소와 다름없이 인천 부평공단 일터로 출근했다. 김씨는 지난해 7월부터 삼성전자 1차 협력업체 모베이스 공장에서 파견 노동자로 일했다. 모베이스는 휴대전화 케이스를 만드는 업체다. 김씨는 바로 출근기록부를 펼쳤다. 김씨 이름 옆에 ‘파견 종료’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회사에서 ‘오늘로 파견이 종료돼 전날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더라’고 했어요. 모르는 번호는 잘 안 받거든요. 잘린 줄도 모르고 바보같이 출근했던 거죠.”

지난 11일 인천 금속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김씨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펑펑 울었다”고 말했다. 1년 넘게 같이 일하며 친해진 권미정씨(37)와 이은미씨(26)도 같은 날 파견이 종료됐다. 이들은 ‘괘씸죄’ 때문에 잘렸다고 여긴다. 세 사람은 지난 9월 회사에 주휴수당을 달라고 항의해 한 달여 만에 받아냈다. 맏언니 권씨는 “(회사는) 물량이 감소해 인원을 감축해야 한다고 했는데 우리 말고는 감축된 사람이 없다. 오히려 10명 정도를 더 늘렸다”고 말했다.

인천 부평공단에서 파견 노동자로 일하다 해고당한 권미정·김건희·이은미씨(왼쪽부터)가 지난 11일 인천 금속노조 사무실에서 손글씨로 쓴 부당해고 항의 유인물을 들어보이며 웃고 있다.

인천 부평공단에서 파견 노동자로 일하다 해고당한 권미정·김건희·이은미씨(왼쪽부터)가 지난 11일 인천 금속노조 사무실에서 손글씨로 쓴 부당해고 항의 유인물을 들어보이며 웃고 있다.

▲ 삼성전자 협력업체 3인 주휴수당 따진 ‘괘씸죄’
같은 날 동시에 부당 해고

▲ 처음엔 무작정 거리로… 집회신고·진정서 제출 등
‘시위법’ 스스로 터득해

세 사람은 지난 3일부터 번갈아 가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첫날은 회사 사람들에게 피켓과 유인물을 뺏겨 시작 30분 만에 시위가 끝났다. 둘째날은 시작도 못했다. 직원들이 달려와 막았다. 세 사람은 억울한 마음에 경찰을 불렀다. 이들은 집회시위를 하려면 신고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씨는 “죽어라 일만 했지 시위니 뭐니 아무것도 몰랐다. 우리 하소연을 듣고 경찰관 아저씨가 ‘억울한 것 공감한다. 앞으로는 집회시위 신고를 먼저 하시라’고 알려줬다”고 말했다.

‘초보 운동가’들의 시위는 16일째 계속되고 있다. 그새 이들의 싸움은 점점 ‘진화’했다. 18일에는 공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고, 고용노동부에 진정서도 제출했다. 그사이 손글씨로 쓴 유인물이 세 차례 나갔다. 첫 유인물엔 ‘억울하다’는 이야기로 A4 용지 앞뒤를 빼곡히 채웠다. 두 번째에는 ‘우리만이 아닌 파견 노동자 모두의 문제’라는 메시지를 실었다. 세 번째에는 이들을 응원하는 다른 파견 노동자들의 목소리까지 담았다. 권씨는 “주휴수당 못 받고 억울하게 잘린 것만 문제가 아니다. 물량이 밀릴 때는 주말도 없이 하루 10시간씩 서서 일했다. 열심히 일하면 정직원 시켜준다는 말도 세 번이나 들었지만 다 거짓말이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어쩌다 실수를 하면 팀장이 ‘바보’라며 30㎝ 플라스틱 자로 머리를 때렸다. 이런 현실을 알리고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인천 금속노조 이대우 미조직비정규사업부장은 “세 사람이 한 일 자체가 제조업이라 파견 형태로 일을 시키면 안된다. 부평공단 소규모 공장에 만연한 문제지만 제대로 다뤄진 적이 없다”고 말했다.

모베이스 관계자는 18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회사는 그분들 일을 잘 모르고 달리 할 말도 없다. 알아서 판단하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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