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년, 민주주의를 살려야 한다

2015.04.08 20:50 입력 2015.04.08 21:28 수정
김종철 | 녹색평론 발행인

1년이 다 됐는데도 이 꼴이다. 온갖 우여곡절 끝에 구성된 진상조사특위는 출범조차 하지 못하고 있고, 아직도 건져내지 못한 시신들은 기약 없이 바다 밑에 갇혀 있다. 이 판국에 정부가 입안한 ‘시행령’은 진상조사특위의 권한과 조사 범위를 제한하여 “정부조사 결과의 분석 및 조사”에 국한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시행령’대로 한다면 특위에서 행정지원이나 맡아야 마땅할 공무원들이 실제 조사업무를 관장케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조사를 받아야 할 대상이 오히려 조사의 주체가 된다. 이 어처구니없는 사태는 또 한번 독립적이고 엄정한 진상규명을 어떻게든 좌절시키려는 정부의 ‘의지’를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김종철의 수하한화]세월호 1년, 민주주의를 살려야 한다

이 말도 안 되는 ‘시행령’은 당연히 철회되어야 한다. 억울하게 자식을 잃고,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말이다.

인간으로서 감내할 수 없는 비극을 겪고, 가장 따뜻한 위로와 보살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국가로부터, ‘잘난’ (사이비) 언론들로부터, 그리고 속 좁은 이해관계 외에는 아무것도 볼 줄 모르는 ‘동료시민들’로부터 온갖 모욕과 비난과 조롱을 받으며 지난 1년을 억장이 무너지는 고통과 눈물 속에서 지내온 유가족들이 또다시 거리로 나와 드디어 삭발을 결행하게 만드는 현실, 정말 통탄스럽고 통탄스럽다.

취임 이후 오로지 ‘침묵’을 주무기로 삼아온 대통령은 그저께 모처럼 입을 열어 기술적 가능성과 여론을 살펴서 세월호 인양 여부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뭐라도 모처럼 말을 해준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그동안 뭘 하다가 이제 와서 인양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걸까. 더구나 몇몇 언론의 분석에 따르면, 대통령의 이 발언도 그 순수성이 의심스럽다. 요컨대 코앞에 닥친 보궐선거용 발언, 즉 책략적 발언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정말로 인양 계획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저 터무니없는 ‘시행령’부터 거둬들이는 게 마땅한 순서가 아닌가.

게다가 대통령의 말은 명확한 인양 의사를 밝힌 것도 아니다. 기술적 타당성을 검토한 다음 (변덕스러운) 여론이 허락한다면 인양을 하겠다는 것이니까 선거가 끝난 뒤 정치적 셈에 따라 인양 불가라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는 암시가 이미 이 말 속에 내포돼 있는 것이다. 이미 우리는 세월호 참사 초기에 사죄의 눈물을 흘리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방선거가 끝난 뒤에는 태도가 일변하여 유족들의 간절한 면담 신청도 외면하고 딴전만 피우는 모습을 고통스럽게 지켜본 바 있다. 걱정되는 것은, 이런 경험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치, 국가권력의 통치수법은 이다지도 더럽고 비열한 것인가--생각하면 너무도 비감스럽다.

세월호 참사 1주년을 맞아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참사 그 자체가 아니라 참사의 진상을 밝혀내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개탄스러운 현실이다.

이 사태에 대하여 가장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할 집권세력은 야비하게도 유족들에게는 부차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는 비용 문제를 계속 부각시키고, 심지어는 특위 활동이 ‘세금도둑’이 될 것이라는 등 반인륜적인 발언을 거침없이 계속 쏟아냄으로써 (내용을 잘 모르는) 나날의 생활현실에 찌들어 사는 서민들을 오도하고, 끝내는 많은 선량한 생활인들마저 세월호 문제라면 짜증스럽게 반응하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해서 집권세력은 독립적인 진상규명을 막고, 그리하여 그들의 ‘안전’을 지키고, 정치적 책임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이 나라는 무슨 꼴이 되는가. 나라든 가정이든 어떤 조직이든, 그게 존립하려면 최저한의 도덕적, 윤리적 기반이라는 게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이 모양대로 간다면, 국가 혹은 한 인간공동체로서 최소한이나마 구비해 있어야 할 도덕적 판단, 정의의 기준은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일찍이 정치사상가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소비에트사회주의권의 붕괴라는 역사적 격변사태를 두고 쓴 논문 ‘역사의 종언’을 통해서 이제는 ‘자유민주주의’야말로 인류사회 최후의 유일한 보편적 정치체제라고 공언했다. 이후 후쿠야마는 자유민주주의의 세계적 왜곡 혹은 퇴행 현상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입장을 조금씩 수정했으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은 여전히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유민주주의체제가 온전히 기능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수적임을 지적한다. 그중에서 그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정부 혹은 권력자의 국민에 대한 ‘설명책임’이다. 설명책임을 결여한 정치는 민주정치라 할 수 없고, 그런 나라를 민주주의국가라고 인정할 수도 없다. 하물며 설명책임을 다하지 않는 정치를 가지고는, ‘번영하고 자유롭고 인간적인 나라’ 즉, ‘덴마크’ 같은 나라로 가는 길은 영영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설명책임의 결여는 반드시 집권세력의 탓만 아니다. 역사적으로 어떠한 권력, 어떠한 통치세력도 순전히 자신의 선의에 의해서 국민의 뜻을 따르고, 설명책임을 다하려고 한 적은 없다. 그들은 국민의 뜻을 따르고 설명책임을 이행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망하게 된다고 느끼는 경우에만 국민의 뜻을 따를 뿐이다. 요컨대 권력이 설명책임을 방기하는 것은 그렇게 해도 권력을 상실할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대한민국 정부, 여당, 권력엘리트집단의 자의적 통치, 즉 설명책임의 방기는 결국 대항세력의 부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야당은 많은 의석을 갖고도 자기들이 힘이 없다는 불쌍한 소리만 하고 있다. 싸울 의지도, 실력도, 지혜도 없기 때문이다. 설명책임은 비단 집권세력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고 있음이 틀림없다.

결국 우리가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관건은 여야 불문하고 권력자에 대하여 설명책임을 강제하기 위한 민중(혹은 시민적) 권력의 강화이다. 가장 쉽고 가장 중요한 것은, 통곡하고 슬퍼하고만 있을 게 아니라 우리 각자가 양심적인 언론, 정당, 노동 및 시민운동의 일원이 되거나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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