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건져올린 예술, 다시 삶 속에 녹아들다

2016.09.22 20:59 입력 2016.09.22 21:06 수정

땅끝 마을 해남 ‘풍류남도 아트프로젝트’ 가보니

해남종합병원 내 행촌미술관

해남종합병원 내 행촌미술관

미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관람객의 삶 속에 깊이 스며들기를 기대한다. 삶과 작품이 분리되지 않아 교감함으로써 사람들이 의식, 일상을 환기시킬 수 있기를 꿈꾼다. 그래서 예민한 감각과 예술성을 갈고 닦으며 실험을 멈추지 않는다. 관람객도 작품과의 소통을 늘 꿈꾼다. 일상생활 속에서 부담 없이 작품을 즐기고 신선한 충격으로 오감을 자극받아 삶이 더 풍요로워지기를 고대한다. 미술, 나아가 예술의 존재 이유다.

이 시대 미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잘 보여주는 전시가 저 남도의 땅끝 마을, 해남에서 열리고 있다. 현대미술 작품이 농촌지역 주민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잊혀진 지역문화의 가치를 부활시키며, 지역사회에 활기를 불어넣는지를 깨닫게 하는 ‘2016 풍류남도 아트프로젝트’다.

녹우당 충헌각

녹우당 충헌각

행촌문화재단(이사장 김동국)이 전남문화관광재단 등의 후원으로 마련한 프로젝트는 22일 현재 해남종합병원 내 행촌미술관을 비롯해 녹우당, 미황사, 농가주택과 양조장 등 8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지난 3월부터 다양한 행사들로 이어지고 있는 프로젝트전시는 참여 작가만도 70여명, 작품 1500여점에 이른다.

참여 작가들은 직접 해남으로 내려와 발품을 팔아 남도의 자연을 답사했다. 주민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자신만의 예술세계로 신작들을 빚어냈다. 묻혀진 남도의 역사문화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전시공간도 신선하다. 정형화된 화이트 큐브가 아니라 현실에 맞게 조촐하지만 주민들의 삶이, 역사문화의 자취가 밴 공간들로 작품 내용과 더불어 지역민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행촌미술관에는 산과 들, 바다 같은 남도의 자연풍광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12폭의 목판으로 담아낸 김억의 ‘남도풍색’이 먼저 관람객을 맞는다. 전통회화의 부감시점, 사실적으로 표현된 장대한 작품이다. 김현철은 화면을 뚫고 나오는 듯한 눈빛과 수염, 과감한 구도 등으로 한국미술사의 걸작이자 국보인 ‘공재 윤두서 자화상’을 옛 관련 문헌들을 조사해 전통 초상화기법으로 의관을 제대로 갖춘 정면반신상의 공재 초상화를 선보인다. 그는 달마산 정상에 본 다도해를 잊지 못해 삼베에 쪽물을 입힌 서정적인 작품 ‘해남도’도 내놓았다. 전시장에는 또 240일간 하루 세끼의 밥상을 720장의 사진으로 작업한 김은숙을 비롯해 김선두·송필용 등의 작품도 나와 있다.

해남윤씨 종택 녹우당은 고산 윤선도와 공재로 대표되는 남도 문학·미술의 뿌리이다. 녹우당 충헌각에는 현대작가들이 한국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공재를 기린 20여점의 작품을 내걸었다. “몇 년 전 공재 자화상을 본 뒤 화가로서의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지 늘 되물었다”는 윤석남은 처음으로 수묵 자화상을 그렸다. 또 서용선, 이이남 등이 공재와 녹우당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담아냈다. 녹우당을 지키고 있는 종손 윤형식옹은 “수준 높은 전시회가 마련돼 뿌듯하다”며 “‘공재미술관’ 건립 사업도 진척이 됐으면 좋겠다”고 전한다.

미황사 자하루미술관

미황사 자하루미술관

미황사 내 자하루미술관 작품들은 관람객을 명상에 젖게 한다. 전시장 바닥을 채운 조병연의 ‘천개의 돌부처’는 압권이다. 갖가지 모양의 평범한 돌 1000개에 각각의 부처를 채색으로 표현했다. 인간의 모든 감정이 담긴 듯 부처의 표정도 제각각이다. 근엄한 종교적 도상이 아니라 친근한 회화적 특성이 강조된 것이다. 금강 스님(미황사 주지)은 “관람객에게 자신의 얼굴을 닮은 부처님을 찾아보라고 권한다”며 호응이 좋아 상설전시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또 중진화가 이종구, 김기라와 김형규의 공동 영상작품, 전통불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이수예의 작품 등도 만날 수 있다.

추사 김정희와 초의선사·소치 허련의 인문정신이 깃든 대흥사 일지암을 비롯해 백련사, ‘베짱이 농부네 예술창고’란 이름의 농가주택, 전통을 자랑하는 양조장인 해창주조장, 행촌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임하도 내 작가들의 창작공간 ‘이마도작업실’에서도 전시회는 열린다.

이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행촌문화재단은 해남종합병원 설립자이자 예술가들을 후원해온 고 김제현 박사(1926~2000)의 뜻을 기려 설립돼 행촌미술관 등을 운영하고 있다. 프로젝트 큐레이터인 이승미 행촌문화재단 대표(전 인천아트플랫폼 관장)는 “해남과 남도의 문화적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고, 지역민들이 보다 행복한 삶을 누리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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