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전국 단위’ 택배업계 산별노조 공식 출범…“택배기사 처우 개선하겠다”

2017.01.03 17:21 입력 2017.01.05 16:20 수정

지난 9월 추석을 앞두고 서울 구로구 CJ대한통운 구로지점에서 택배 기사들이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월 추석을 앞두고 서울 구로구 CJ대한통운 구로지점에서 택배 기사들이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족명절인 설을 앞둔 요즘 유독 바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소비자와 기업을 잇는 유통망의 최전선에서 발로 뛰는 택배기사들이다. 이들은 개인 차량으로 배송을 한다는 이유로 노동자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택배업체의 입김에서 자유로운 개인사업자도 아닌 ‘특수고용노동자’ 신분이다. 오는 8일 CJ대한통운 소속 택배기사들을 중심으로 민주노총 산하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택배노조)’이라는 산별노조가 공식 출범한다. 그동안 노동법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택배기사들이 전국단위 노조를 만드는 것은 1992년 국내 민간 택배산업이 등장한 이래 처음이다.

3일 김태완 택배노조 준비위원장은 “여러 곳에 흩어져 근무하는 택배기사들을 하나로 이어 줄 전국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에 많은 기사들이 공감했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택배기사 노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 화물연대 산하조직에 지역별·기업별 ‘분회’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택배기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노조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택배기사들의 요구조건은 간단하다. 주 50시간 근무와 점심시간, 휴일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지난달 택배노조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75%가 주 70시간 이상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주 90시간 이상 근무한다는 답변도 17.5%에 달했다. 97%가 휴식시간 없이 오전 7시부터 밤늦게까지 근무한다고 했고 절반에 달하는 기사들은 점심식사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지난달 4일 ‘CJ대한통운 택배기사권리찾기전국모임’ 발표에 따르면, 조사대상자 중 75% 이상은 70시간 이상 근무하고 있고, 17.6%는 90시간 이상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4일 ‘CJ대한통운 택배기사권리찾기전국모임’ 발표에 따르면, 조사대상자 중 75% 이상은 70시간 이상 근무하고 있고, 17.6%는 90시간 이상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위원장은 “노조를 만들려는 것은 열악한 처우 이면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택배업계 1위인 CJ대한통운의 경우 옥천·용인 등지의 기존 허브터미널만으로는 빠르게 늘어나는 택배 물량을 감당하기 어렵다. 주요 거점에 있는 허브터미널에서 지역 물류터미널로 오는 ‘간선 하차’가 물량 과부하로 인해 늦어지자, 택배기사들이 터미널에서 물건을 받아오는 ‘분류 작업’도 애초 1~2시간 걸리던 것이 현재는 5~6시간까지 늘어났다. 배송 시작 시간이 그만큼 늦춰지기 때문에 택배 기사들은 해가 진 뒤에도 쉼없이 일해야 한다. 김 위원장은 “끼니는 막간을 이용해 라면과 빵으로 떼우기 일쑤”라며, 본인도 일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15㎏가 빠졌다고 했다. 본사가 대리점을 앞세워 고용책임을 회피하기 때문에 부당한 처우를 하소연할 곳도 없다. 하루 10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을 견뎌내도 기름값과 식대, 차량유지비 등을 제하면 손에 남는 돈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택배노조는 전국조직의 교섭력을 키워 본사에 처우개선과 간접고용 문제 해결 등을 요구하고, ‘주먹구구’로 이뤄지는 수수료 산정 가이드라인 등을 입법화하기 위해 정치권과도 협조할 계획이다. 김 위원장은 “택배기사 처우 개선은 최종 소비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택배업체들이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여 시설 투자를 늘린다면, 물류터미널에서 고객의 물건이 실종되는 ‘배송 사고’도 줄어들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3일 서울 중구의 카페에서 만난 김태완 택배노조 준비위원장은 “택배기사의 처우개선은 소비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3일 서울 중구의 카페에서 만난 김태완 택배노조 준비위원장은 “택배기사의 처우개선은 소비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 가입을 희망하는 택배기사들은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4월 택배노조 전신인‘CJ대한통운 택배기사 권리찾기모임’이 결성된 지 3개월 만에 모임의 SNS 가입자는 1000여명이 모였다. 현재 CJ대한통운 외에도 한진·현대·로젠 등 타 업체 기사들이 입소문을 듣고 다수 가입해 2600여명을 넘어섰다. 노조 탄압 조짐도 보이고 있다. 일부 대리점은 오는 8일 노조 창립대회에 참가하는 택배기사들에게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고 한다. 김 위원장 자신도 2013년부터 택배 일을 하다가, 지난해 12월 오전 중에 분류작업을 끝낼 것을 요구하는 1인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특수고용노동자 직군이 민주노총 산하조직으로 들어가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CJ대한통운 등 업체들이 신생 택배노조를 교섭 상대로 인정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사측이 볼 때 택배기사들은 개인사업자이지 원청 소속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3년 서비스연맹 산하 전국대리운전노조가 경남지역 대리운전업체들과 단체교섭을 벌여 개인보험 시행과 복지기금 조성, 해고자 복직 등 성과를 냈고, 법원도 재능교육 학습지교사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인정한 사례가 있다. 김 위원장은 “택배기사들이 이 일을 ‘평생직장’으로 삼고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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