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재정 건전성 논란

2009.11.10 17:41

“무리한 감세정책 국가빚 늘려”

“경제위기로 재정적자 불가피”

토론자: 황성현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지난 10월 기획재정부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국가채무와 재정건전성 문제를 놓고 논란이 뜨거웠다. 이명박 정부 들어 추진된 감세정책과 금융위기 이후 재정투입 확대로 국가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재정건전성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황성현 인천대 교수(왼쪽)와 이영 한양대 교수가 9일 경향신문 사옥에서 국가 재정 건전성 논란과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성일기자

황성현 인천대 교수(왼쪽)와 이영 한양대 교수가 9일 경향신문 사옥에서 국가 재정 건전성 논란과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성일기자

야당은 물론, 일부 여당의원들까지 국가채무가 1000조원을 넘어서 미래세대의 ‘빚부담’이 커진다며 정부를 추궁했다. 반면 정부는 국제기준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5.6%인 366조원으로 미국(88.8%), 일본(217.4%) 등에 비해 크게 낮아 재정건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맞섰다.

황성현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전 조세연구원장)와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가 지난 9일 경향신문에서 만나 정부 재정정책의 적정성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황 교수는 “현 정부의 무리한 성장정책과 감세정책 등으로 늘어나지 않아도 될 국가채무가 급증했다”며 “감세정책을 철회하고 4대강 사업 등 불필요한 정책을 중단해 재정건전성 제고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면 이영 교수는 “재정적자 급증은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재정을 대거 투입하느라 불가피하게 늘어난 것”이라며 “재정운용이 방만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며 최근 우리 경제가 빠르게 회복되는 등 재정투입 효과도 있다”고 반박했다.

이영 교수(이하 이영) = 정치권이 공기업 부채, 정부보증 채무, 한국은행 부채, 각종 연금손실액, 민자사업 손실보존금 등까지 포함해 국가채무가 1000조원이 넘는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국제기준에 맞지 않는다. 수자원공사의 4대강 사업 수행을 위한 채무 등 공기업이 정부 정책과 유사한 사업을 하는 것도 내부적으로 국가채무로 분류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을 모두 합해도 정부가 발표한 국가채무 366조원보다 크게 불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황성현 교수(이하 황성현) =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낮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이명박 정부 들어 GDP 대비 재정적자 비중이 3.2%로 참여정부 5년 평균(0.4%)의 8배에 달한다. 정부는 경제위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정책실패도 요인으로 봐야 한다. 감세정책을 무리하게 펼쳐 5년간 90조원의 세수가 줄어들게 되는 것이 대표적인 정책실패 사례다. 또 지난해부터 수차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고, 4대강 사업 같은 대형 국책사업에 나서는 등 재정확장 정책도 한몫을 했다. 특히 4대강 사업비의 상당부분을 공기업인 수자원공사에 떠넘기는 것은 국가채무가 증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려는 ‘분식회계’나 마찬가지다.

이영 = 감세정책으로 재정수지가 악화된 점은 일부 인정한다. 하지만 경제위기로 재정을 대거 투입해 적자 재정을 펼 수밖에 없는 상황인 만큼 참여정부 때와 단순 평균해 비교할 수는 없다. 특히 2008년의 재정적자는 참여정부 때 예산안이 짜인 것으로, 현 정부에 일방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우리 경제가 지난 2·4분기 이후 완연한 회복세에 접어들었는데 이는 정부가 2008년 하반기부터 수차례에 걸쳐 40조~50조원의 추경편성을 통해 재정투입에 나선 것이 효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재정정책이 비교적 효과적으로 운용됐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방만운용이라고 할 수는 없다.

황성현 = 정부는 금융위기 때문에 재정적자가 늘었다고 하지만 위기 전인 2008년 9월에 이미 4조6000억원의 세계잉여금(정부 예산을 초과한 세입과 예산 가운데 쓰고 남은 금액을 합한 것)으로 대규모 추경예산을 편성해 본격적으로 확장적 재정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이는 정부가 이명박 대통령의 7·4·7공약(경제성장률 7%,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7대 강국) 달성을 위해 무리하게 경제성장률을 높이려 했기 때문이다. 빚을 갚는 데 써야 할 세계잉여금을 추경으로 사용하다 보니 국가채무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영 = 2008년 9월 추경예산은 고유가로 인한 서민들의 고통을 덜기 위해 편성한 것이다. 당시 공교롭게도 금융위기가 발발했고 추경편성이 타이밍이 맞아 경제회복에 도움이 됐다. 이후 정부는 금융위기에 따른 수정예산과 올 초 대규모 추경예산을 편성해 지난해 4·4분기부터 올해 2·4분기까지 돈을 잘 풀었고 이에 따라 최근 내수가 살아나는 등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경제가 회복되면 재정적자를 돌려놓으면 되는 것이지 반드시 써야 할 것을 왜 많이 썼느냐고 지적할 수는 없다.

황성현 = 이번 금융위기와 1997년 외환위기를 비교한다면 외환위기 때의 충격이 훨씬 컸다. 당시는 우리나라가 위기의 근원지였고 환율이나 수출에 미친 악영향도 더 컸다. 하지만 올해 재정적자 수준은 GDP의 5%로 외환위기 때(5.1%)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만큼 정부가 필요한 수준을 넘어 무리하게 많이 썼다는 의미다.

이영 = 외환위기 당시에는 숨겨진 적자가 더 많았다. 당시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를 통해 집행된 공적자금은 재정적자에서 빠졌다. 이것까지 모두 포함하면 재정적자 규모는 GDP의 10% 수준에 달한다. 정부가 재정악화를 숨기기 위해 공사를 통해 돈을 쓴 것이다. 정부가 외환위기 때보다 이번 금융위기 때 과도한 재정적자 정책을 폈다는 지적은 적절치 않다.

황성현 = 재정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현 정부의 무리한 감세정책이다.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참여정부 말 21.7%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6% 정도 낮은 수준이다. 현 정부는 그렇지 않아도 낮은 조세부담률을 더 낮추려 하고 있다. 문제는 현 정부의 감세정책이 앞으로 재정지출이 얼마나 늘어나고 그에 따라 어느 정도의 세수가 필요한지 등을 면밀히 따져 시행된 것이 아니라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우파정부의 시각에서 ‘세금을 깎아주면 잘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하에서 추진됐다는 점이다. 특히 종합부동산세 세율을 대폭 낮춘 것은 부유층에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다. 소득세 감세도 인하율은 고소득층이나 저소득층이나 같지만 고소득층의 감세액이 상대적으로 많아 세금감면 후 소득격차는 더욱 커지게 됐다. 이 때문에 ‘부자감세’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이영 = 현 정부의 감세정책에 대해 논란이 많지만 참여정부 때 가팔랐던 조세부담률의 상승속도를 늦춘다는 점에서는 필요한 정책이다. 특히 종부세와 법인세율 인하는 바람직한 것으로 본다. 소득세의 경우 납세자들은 자신이 버는 돈에서 원천징수가 되니 조세저항이 작다. 하지만 종부세 납세자들은 생기는 것 없이 세금만 낸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어 조세저항이 클 수밖에 없다. 법인세의 경우도 세율이 높으면 기업들이 다른 나라로 옮겨가게 되고, 선진국들도 모두 세율을 낮추고 있는 추세임을 감안하면 감세를 하는 것이 맞다.

황성현 = 앞으로 우리나라는 저출산·고령화 문제 해결과 취약한 교육환경 개선 등을 위해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 현재의 감세정책이 지속된다면 재정적자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일부 증세가 필요한 상황이다. 현 정부도 지난해 국가재정계획에서는 조세부담률을 2007년에 비해 1.9%포인트 낮추겠다고 했다가 올해 발표한 재정계획에서는 0.2%포인트 낮추는 것으로 감세정책의 강도를 약화시켰다. 정부 스스로 감세정책이 무리임을 자인한 것이다.

이영 = 현재 20% 수준인 조세부담률을 22% 정도까지 올려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종부세를 부활하고 법인세율을 높이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 개인소득세를 강화하고 고소득자의 탈루를 막는 등 숨어 있는 세원을 발굴해 세수를 확대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와 관련해 개인소득세의 최고세율을 현행 35%에서 33%로 낮추려는 정부 방안에 반대한다. 소득세 최고세율을 유지하는 방안은 국회에서도 논의되고 있으니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황성현 = 재정건전성 측면에서 정부의 내년 예산안도 문제가 있다. 전체적으로 올해보다 지출을 줄였음에도 재정적자는 GDP 대비 2.9%에 달한다. 이 같은 적자예산을 편성하면서도 4대강 사업 등을 밀어붙이는 이유를 알 수 없다. 4대강 사업의 타당성 여부는 제쳐놓더라도 재정지출 우선순위에서 저출산·고령화 문제 해결, 교육·국방개혁, 서민일자리 창출 등에 앞선다고 볼 수 없다. 특히 복지예산의 경우 정부는 지난해 본예산에 비해 8.6% 증가해 사상 최대 비중을 차지한다고 발표했지만 올해 추경예산에 비해서는 0.7% 증가에 불과해 의미 없는 얘기다.

이영 = 전체적으로 올해보다 지출을 감소하는 방향으로 예산안이 마련된 것은 재정건전성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복지예산에 대해 ‘눈가리고 아웅’이라는 지적이 있지만 올해 추경예산에서 편성된 희망근로사업 등의 복지정책은 어차피 경제위기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경기가 회복되는 내년에 예산이 줄어든다고 해서 비판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다만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타당성을 엄밀히 따져 예산낭비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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