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잇는 다큐 영화 개봉, 왜?

2017.09.07 15:30 입력 2017.09.08 10:52 수정

“아빠 직업? 아빠 직업이 뭐지?”

2014년 3월 쌍용자동차 해고자 김정운씨는 막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 현우가 가져온 가정환경 조사 질문지를 보고 고민에 빠진다. ‘해고자’ ‘사회운동가’ ‘노동운동가’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는 아들의 말에 따라 ‘노동운동가’로 쓰기로 한다. 그러고는 덧붙인다. “아빠는 노동 운동가가 아닌데.” 현우의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해고당한 건 능력이 없다, 가정형편이 어렵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거 같아요.”

<안녕, 히어로>

<안녕, 히어로>

7일 개봉한 다큐 영화 <안녕, 히어로>의 한 장면이다. 영화는 2009년 쌍용차 대량 해고 사태 때 해고노동자가 된 김정운씨 가족의 이야기를 아들 현우군의 시선에서 풀어나갔다. 쌍용차 해고자들이 송전탑 농성을 시작했던 2012년 11월21일 촬영을 시작해 지난해 8월 촬영을 마쳤다.

또 다른 다큐 영화 <저수지게임>도 이날 개봉했다. 주진우 시사인 기자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손을 잡고 만든 <저수지게임>은 주 기자의 이명박 전 대통령 비자금 추적기다. 영화는 캐나다 토론토 분양 사기 사건을 중심으로 5년 간의 취재과정을 담았다.

<저수지게임>

<저수지게임>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 벌어졌던 민감한 정치·사회적 이슈들을 다룬 다큐 영화들이 잇달아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지난달 17일 개봉한 <공범자들>은 6일 기준 21만9000여명이 관람하면서 올해 상반기 185만여명을 동원한 <노무현입니다> 이후 다큐 부문 최대 흥행작이다. MBC와 KBS 등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파업 투쟁까지 겹치면서 당분간 동력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30일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다큐 <무현, 두 도시 이야기: 파이널컷>이 개봉했다. 지난해 다큐 최대 흥행작 중 하나였던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의 감독판인 이 영화는 지난해에는 30여개 스크린을 확보하는 데 그쳤으나 올해는 100여개로 늘었다. 오는 14일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도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공범자들>

<공범자들>

영화계는 이 같은 다큐 영화 열기의 배경으로 정치적 환경의 변화를 꼽는다. 박혜미 DMZ국제다큐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이전 정부들의 억압적 분위기가 사라지면서 그동안 말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마음 놓고 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영희 감독은 “지난해 연말 촛불집회부터 박 전 대통령 탄핵과 지난 5월 대선에 이르는 시기는 부패한 권력의 문제와 사회적 정의의 문제가 분출했던 과정이었다”며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공정한가라는 물음과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열망이 정치·사회적 이슈를 담은 다큐를 만들고 관람하는 흐름을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 파이널 컷>

<무현, 두 도시 이야기: 파이널 컷>

이런 흐름은 당분간 지속될 듯하다. 지난 1일 영화진흥위원회가 공고한 올해 독립다큐멘터리영화 제작지원사업 심사 결과를 보면, <더블랙>, <지록위마>, <기술자들> 등 권력의 부패와 이념적 억압을 다룬 다큐들이 지원작으로 선정됐다. <더블랙>과 <기술자들>은 2012년 대선 조작 사건을 다룬 다큐다. <지록위마>는 박근혜 정권 당시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을 다뤘다.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

달라진 정치 현실을 지렛대 삼아 다양한 현실고발형 다큐들이 나오고 있지만 <노무현입니다> <공범자들> 등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흥행은 부진한 편이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 파이널 컷>은 전작 <무현 두 도시 이야기>에 비해 스크린을 세 배 넘게 확보했다. 그러나 전작이 개봉 첫날 3000여명이 관람한 데 비해 ‘파이널 컷’은 개봉 8일이 지난 9월6일까지도 누적관객수가 2700여명에 불과하다. ‘감독판’이라는 한계도 있지만 상영 시간대가 좋지 않다. 전인환 감독은 “전작이 스크린 30개에서 시작한 데 비해 이번에는 100개로 출발했다. 그러나 이른 아침이거나 늦은 밤에 배치됐다”고 말했다. <안녕, 히어로>도 사정이 비슷하다. 다큐영상 집단 연분홍치마 소속인 한영희 감독은 “42개 스크린을 확보했다”며 “연분홍치마에서 제작했던 다큐들에 비해 상영관은 많은 편이지만 일반 직장인들은 보기 힘든 시간대에 배치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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