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민당 ‘1강’ 굳히기...‘극우’ 유신회 승승장구, 존재감 사라진 일본 좌파정당

2023.04.24 16:13 입력 2023.04.24 16:35 수정

일본 집권 자민당이 23일 치러진 중의원(하원)과 참의원(상원) 5개 지역 보궐선거 가운데 4곳에서 승리를 거두며 ‘1강’ 체제를 굳혔다. 야당인 좌파 성향의 입헌민주당은 한석도 건지지 못해 극우 성향의 일본유신회에 제1야당 자리를 넘겨줄 위기에 처했다.

일본 매체들은 보궐 선거로 자신감을 얻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오는 6월 중의원을 조기 해산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았지만, 기시다 총리는 24일 “지금은 의원 해산이나 총선거를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일본 JR와카야마역 앞에서 지원 유세하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 연합뉴스

일본 JR와카야마역 앞에서 지원 유세하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 연합뉴스

‘자민당 1강 다약 구도’ 굳혀...전패한 제1야당

23일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자민당은 지바 5구, 와카야마 1구, 야마구치 2구와 4구 등 중의원 선거구 4곳과 참의원 선거구인 오이타 등 5곳 가운데 와카야마 1구를 제외한 4곳에서 의석을 확보했다. 자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기존 확보 의석인 3석 이상을 차지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는데 기존보다 1석을 늘렸다. 사실상 기시다 정권의 중간평가 성격인 이번 선거에서 긍정적인 성적표를 받은 셈이다. 기시다 총리는 한일 정상회담과 폭발물 투척 사건 등으로 지지율이 다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아베 신조 전 총리 사망으로 공석이 된 야마구치 4구에서는 ‘아베 계승자’를 자처한 자민당의 요시다 신지 전 시모노세키 시의원이 선출됐다. 아베 전 총리의 후원회와 부인 아베 아키에 여사의 지지를 등에 업고 압승했다.

야마구치 2구에서는 기시 노부오 전 방위상의 장남이자 아베 전 총리의 조카인 자민당의 기시 노부치요 후보가 승리했다. 기시 당선자는 아버지가 지난 2월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공석이 된 야마구치 2구에 출마해 ‘정치 세습’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아사히신문은 이번 선거에서 다시 한 번 집권 자민당의 ‘1강’ 체제가 확인됐다고 평하면서“진보 야당이 자민당에 만족하지 못하는 표를 끌어안지 못하면서 보수와 개혁(진보)을 각각 대표하는 당이 번갈아 집권하는 정권교체 가능성은 옅어졌다”고 분석했다.

실제 이번 선거에서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전패’ 결과를 떠안았다. 산케이신문은 “퇴조 기류가 짙어진 입헌민주당 내에서 이번 선거 이후 지도부에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특히 지바 5구에서의 패배가 상징적이다. 자민당 의원이 정치자금 문제로 사직하면서 공석이 됐지만 야당에서 여러 후보가 난립하며 진보 지지자들의 표가 분산됐다. 반면 자민당은 정치 신인 에리 알피야 후보(34)의 ‘청렴한 이미지’를 내세워 승리를 거머쥐었다. 유엔 사무국 등에서 일한 에리 당선자는 부모가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 출신으로 1999년 가족이 함께 귀화했다. 입헌민주당은 당 간부들이 나서 연일 선거 운동에 나섰지만 자민당 후보를 이길 수 없었다.

아사히신문은 “2021년 입헌민주당, 일본공산당, 국민민주당 등 야당들이 힘을 합치는 ‘야당공투’를 했지만 안보정책 면에서 공산당을 불안하게 생각하는 유권자가 많아 오히려 자민당의 압승 결과만 가져왔다”며 “이번 보궐선거 결과는 야당공투 이후 야당들이 더 힘을 잃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극우’ 일본유신회, 제1야당 넘본다

야당들의 존재감이 희미해져가는 틈을 타 극우성향의 일본유신회는 세력을 키우고 있다. 지난 9일 치러진 일본 통일지방선거에서 일본유신회는 텃밭인 오사카를 넘어 나라현에서도 선전하며 세력을 확장했다. 전날 보궐선거에서도 일본유신회는 야당으로서는 유일하게 와카야마 1구에서 자민당 후보를 제치고 승리를 거뒀다. 와카야마 1구는 지난 15일 기시다 총리의 지원 연설을 앞두고 폭발물 투척 사건이 발생한 곳이다.

일본유신회의 돌풍에 대해 현대일본정치를 연구해온 나카호쿠 히로아키 주오대학 교수는 아사히신문에 “보수적인 ‘개혁’을 표방한 일본유신회는 야당이 힘을 잃고 있는 틈을 타 정치 인재들을 영입하며 표심을 얻고 있다”며 “반면 자민당이나 입헌민주당은 당내 파벌이 굳어져 세대교체가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카호쿠 교수는 “특히 40대 젊은 정치인들을 앞세우고 있는 일본유신회와 달리 입헌민주당은 중견 정치인을 집행부로 내세우며 2000년대 주목받았던 ‘벤처’ 정신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고 덧붙였다.

일본 정치권에서는 일본유신회가 제1야당으로 올라선 뒤 자민당 지지층에 균열을 내 집권까지 노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일본유신회는 패전 이후 군대 보유 금지 등을 명문화한 평화헌법을 문제 삼으며 자민당보다 더 적극적으로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 일본유신회가 외교안보적으로 ‘우경화’를 부추기면서 자민당 또한 지지층을 잃지 않기 위해 헌법개정에 적극 나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자민당 또한 일본유신회의 선전을 경계하고 있다. 이번 선거로 자신감을 얻은 기시다 총리가 오는 6월 중의원을 해산하고 조기총선을 치를 것이란 관측도 나왔지만, 기시다 총리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기시다 총리는 24일 중의원 해산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지금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면서 “(이번 선거 결과가 정부의 중요 정책들을) 제대로 해나가라는 격려를 받은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아사히신문은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자민당의 매운 4승1패”라고 해석했다. 이기긴 했지만 격전을 펼친 곳이 많아서다. 자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일본NTV뉴스에 “현재 자민당 내에서 들뜬 분위기는 없다”면서 “결과는 좋지만, 과정은 그리 좋지 않은 선거였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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