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부터 LH까지...통쾌한 풍자극의 귀환, 뮤지컬 <판>

2021.08.02 14:22 입력 2021.08.02 14:34 수정

지난달 27일 서울 국립정동극장에서 막을 올린 창작 뮤지컬 <판>의 한 장면.  국립정동극장 제공

지난달 27일 서울 국립정동극장에서 막을 올린 창작 뮤지컬 <판>의 한 장면. 국립정동극장 제공

통쾌한 풍자극의 귀환이다. 지난달 27일 막을 올린 창작뮤지컬 <판>은 한바탕 신명 나는 놀이판이다. 관객들이 박수 외에 환호성 등으로 화답할 수 없는 팬데믹 상황에서도 무대 위 배우들은 열정적인 춤과 노래로 관객과 호흡하며 흥겨운 판을 펼친다.

2015년 정은영 작가와 박윤솔 작곡가가 제작한 20분가량의 짧은 공연에서 출발한 <판>은 국립정동극장의 레퍼토리 뮤지컬로 이번이 3년 만의 재공연이다. 양반사회를 풍자하는 패관소설이 읽힌 조선 말 저자의 세책가(책 빌려주는 곳)와 매설방(이야기방)을 무대로 펼쳐지는 공연인 만큼, 공연 때마다 당시의 사회상뿐만 아니라 현 세태를 비튼 재치 있고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를 담았다.

“심심하던 차에 잘 됐다, 양반이나 데리고 놀자~!” 때는 흉흉한 역병이 돌던 19세기 조선. 세상을 풍자하는 패관소설이 퍼지자, 세책가를 중심으로 소설들을 모두 거둬 불태워버리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과거 시험에 별 뜻이 없던 양반가 자제인 ‘달수’는 어느 날 세책가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여인 ‘이덕’에게 반해 그를 따라가다가 한 매설방 앞에 당도하고, 이덕이 소설 필사를 하는 이곳에서 ‘금지된 이야기’의 맛에 빠진다. 달수는 매설방에서 전기수(조선 후기 소설을 낭독해주던 직업) ‘호태’를 만나고,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그를 스승으로 모시며 ‘낭독의 기술’을 전수받는다. 그리고 서서히 저잣거리 평민들의 현실에 눈을 뜨며 최고의 이야기꾼이 되어간다.

극중극 형식의 공연은 매설방을 중심으로 다양한 소설 속 이야기를 펼쳐보인다. 매설방은 그 시절 평민들이 “슬픔을 잊고 웃음을 읽는” 곳이다. 줄 타는 여자 광대 이야기로 규방에 갇힌 여성들의 자유에 대한 열망을, 낯 뜨거운 야설과 사랑 이야기로 통제된 욕망을 풀어내고 분출한다. 풍자 역시 빠질 수 없는 매설방의 묘미다. “두껍아 두껍아, 헌 땅 줄게, 새집 다오”라는 노랫말과 함께 이어지는 꼭두각시 놀음은 헌 땅에 버드나무를 심는 사또의 이야기로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의 부동산 투기 사건에 대한 신랄한 풍자다. 민요와 함께 빠른 템포로 이어지는 랩에서 ‘역세권’ ‘초품아’ ‘똘똘한 한 채’ ‘못쓰는 땅 줍줍’ 같은 용어들이 지나간다. 마당놀이를 빙자해 현 세태를 꼬집는 내용을 작품 속에 삽입해온 <판>은 초연 당시엔 국정농단과 블랙리스트 사건을 담아 주목을 받았다.

이윤을 위해 땅에 버드나무를 심는 사또의 이야기로  ‘LH 부동산 투기 사건’을 풍자한 꼭두각시 놀음(‘두껍아 두껍아 헌 땅 줄게 새 집 다오’)의 한 장면. 국립정동극장 제공

이윤을 위해 땅에 버드나무를 심는 사또의 이야기로 ‘LH 부동산 투기 사건’을 풍자한 꼭두각시 놀음(‘두껍아 두껍아 헌 땅 줄게 새 집 다오’)의 한 장면. 국립정동극장 제공

코로나19의 시대상도 공연에 녹아들었다. 달수는 호태가 낸 ‘주막에서 술 공짜로 얻어먹기’ 과제를 위해 주막으로 향하는데, 입장부터 제지를 당한다. 역병이 창궐하고 있으니 입장하려면 ‘명부’를 쓰라는 것. “‘백신침’을 맞았어도 명부는 써야지!” 달수가 이름을 쓰자 주모는 기계적인 목소리로 외친다. “인증되었습니다.”

이처럼 팬데믹의 일상을 재치있게 담았지만, 여전히 아쉬운 것은 코로나 상황이다. <판>은 관객들이 전기수의 이야기에 말과 박수로 추임새를 넣으며 배우와 함께 극을 이끌어가는 관객 참여형 공연으로 기획됐으나, 올해는 박수 호응만 가능하다. 대신 전기수가 관객이 즉석에서 선택한 주제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등 다른 방식의 참여를 유도한다.

전통과 현대를 오가는 다채로운 음악과 춤도 관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국악 퍼커션과 대금 등 전통 음악 기반으로 스윙, 보사노바, 클래식, 탱고 등 다양한 장르 음악이 결합돼 흥을 돋운다. 양주별산대놀이와 꼭두각시놀음, 판소리, 가면극 등이 적재적소에 배치돼 말 그대로 신명나는 놀이판을 선보인다. 그 옛날 광대가 돼 노는 것처럼 연기하는 배우들도 인상적이다. 공연은 서울 국립정동극장에서 9월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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