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40)길은 함없

2022.05.19 07:00 입력 2022.05.19 10:28 수정
김종길 다석철학 연구자

늙은이(老子) 37월은 길줄(道經)의 끄트머리다. 끝머리에서 다시 속알줄(德經)이 이어진다. 길은 그 스스로 참이요 저절로이며, 있는 그대로의 늘(常)이니 도덕경(道德經)은 참길로 속알 틔워 비우는 ‘참알줄’의 글월이리라.

길(道)은 하늘이 줄줄줄 세 까닭이 내리어 닿은 얼줄(ㄱ)에 들임 받아 올바로 똑바로 꼿꼿이(ㅣ) 늘 흘러가시는(ㄹ) 빈탕 하나의 가온찍기다. 하나로 늘 하시는 하실의 님은 머리(首)를 하늘로 두고 저 없이 쉬엄쉬엄 가는(辶) 것이다.

대쪽본(竹簡本)에는 길의 다른 꼴(異體字)로 조금 걸을 척(彳), 사람 인(人), 가볍게 걸을 촉(亍)을 써서 ‘彳人亍’이라 새겼다. 쉼 없이 가고 걷고 나아가는 돌아다님(行)의 가운데에 쏙 사람(人)을 넣었으니, 길[彳人亍(道)]은 사람이 스스로 걷고 걸어서 늘 가고 가는 그 사이에 텅 비어 이름을 보여준다. 그 사이는 비어서 가는 늘이지 않은가. 참사람은 늘로 비어서 걷는 사람이다.(30월 풀이가 한 벼릿줄이다.)

늘 알아 드림받.

들임받 에서 번듯.

번듯 에서 임금.

임금 에서 하늘.

하늘 에서 길.

길 에서 오램.

- 다석의 늙은이 16월에서

돌고 도는 숨 돌림의 늘이 옳아. 그렇지. 그 숨 돌림의 늘이 참이야. 올이야. 그것을 알아 깨닫는 몸으로 환히 열려야지. 받아들여 들임 받은 몸으로 올발라야지. 올발라야 번듯해져. 들임받에 번듯이 서. 번듯에 솟난이(王)가 서. 솟난이에 하늘이 서. 하늘에 길이 서. 길에 오램이 서. 솟난이는 몸맘얼이 하나로 뚫려 솟구친 거야. 솟구쳐 올라 ‘없꼭대기(無極)’ 빈 가장에 섰지. 그 가장 오롯한 마루가 임금이야. 하늘땅(二)을 다 열고 열어서(十) 비어 돌아가는 마루(王)! 가장 비워 아주 비운 그 자리, 그 자리가 곧 하늘이야. 하늘이 열리니 길이요, 길이 열리니 오래 오래 늘이 흐르지. 늘이 흐르는 몸은 가라않고 잠기고 그렇게 다 없어져도 죽지 않아. 위태롭지도 않지.(16월 풀이에 그물코 하나가 있다.)

다석 류영모 사상은 ‘참’ 에 있다. YMCA연경반 제자들과 산날(살아온 날) 2만2000일 기념 강연을 마치고 찍은 사진이다. 앞줄 가운데 한복입고 수염 기른 이가 그다. 왼쪽 세 번째 앉은 이는 제자 함석헌.

다석 류영모 사상은 ‘참’ 에 있다. YMCA연경반 제자들과 산날(살아온 날) 2만2000일 기념 강연을 마치고 찍은 사진이다. 앞줄 가운데 한복입고 수염 기른 이가 그다. 왼쪽 세 번째 앉은 이는 제자 함석헌.

임금이 과연 통치자일까? 아니다. 그는 으뜸으로 뚫린 빈탕의 솟난이다. 노자 늙은이는 처음부터 나중까지 임금에 빗대어 가장 비워 아주 솟나 솟구친 ‘솟날뚜렷’을 말했다. 글자 왕(王)을 하나하나 풀어야 그 뜻이 잘 보인다.

임금(王)은 하늘 하나(一), 땅 하나(一), 사람 하나(一) 그 셋을 위아래로 뚫어 솟난이(ㅣ)다! 다석은 그를 솟날뚜렷이라 했다. 솟날뚜렷이 바로 얼로 거듭남이다. 또 이렇게도 볼 수 있다. 하늘땅(二) 사이를 열고 다 열어서(十) 비어 돌아가는 마루가 또한 솟난이(王)다! 그는 열려 비어서 돌아가는 없꼭대기 마루요, 그래서 거듭난 사람이요, 씨알 튼 사람이다. 그는 크고 큰 한아(大我)요, 참 속알의 참나(眞我)이며, 하늘 모신 얼나(靈我)다! 그가 본받은 것이 땅이요 하늘이요 길이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저절로 그러함에 한가지다.(25월 풀이로 마음을 열어야 한다.)

임금은 길과 하늘과 땅을 뚫고 솟구쳤기에 솟난이다. 우리 모두는 하루하루 솟날뚜렷이다. 솟난이는 지금 예 여기서 얼로 솟난 사람이다. 하늘땅을 열고 다 열어서 돌아가는 빈탕 마루다. 씨알이 그냥 뭇사람이면, 임금은 그 씨알을 튼 사람이다. 씨알 튼 이는 그러니 누구나 임금이다. 그대가 곧 임금이다.(26월에 한 씨알이 있다.)

노자 늙은이 28월은 등걸(樸)의 길이 글월 꼭지라 했다. 다스리는이(聖人)는 등걸을 써 ‘맡은어룬(官長)’을 삼는다. 큰 감(制)은 통째로 쓰지 썰어서 쓰지 않기 때문이다. 맡은어룬의 ‘어룬(어른)’은 ‘얼우다’, ‘어루다’에서 왔는데, 그 뜻은 남녀 짝을 하나로 얽는 것이다. 흩어진 것조차 하나로 얽는 이가 맡은어른이다. 흩어지지 않는 그 하나가 등걸이다. 그이의 길을 알기 위해서는 참알줄에 이음말로 솟은 등걸, 골, 도탑, 속알, 숨, 아기, 암, 골검, 산알 암의 벼릿줄을 당겨야 한다. 어떤 이음말은 짱짱하고 어떤 이음말은 가늘고 느슨해도 그것들은 그대로 이어져 있다.(28월의 등걸은 또 하나의 님이다.)

노자 늙은이의 글월은 서로서로서로 이어지는 벼릿줄에 늘을 깨닫는 큰 까닭이 서려있다. 서로 일어서니 ‘서로서’요, 일어섬으로써 이어지니 ‘로서로’이다. 서로서로서로는 ‘서로서/로서로’이고 그 사이에 ‘곧’을 끼워서 ‘서로서곧로서로’가 된다. 집집 우주 삼라만상이 서로 대립하지 않고 서로 융합하여 걸림이 없으니 상즉상입(相卽相入)이다. 그 상즉상입이 ‘서로서곧로서로’라 할 것이다. 노자 늙은이를 볼 때는 그러니 글월 하나하나를 ‘서로서’게 하고 곧장 ‘로서로’로 이어서 꿰어 뚫어야 한다.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40)길은 함없

이번엔 떠돌이와 어린님이 말을 나눈다. 하늘과 땅 사이에 등걸 하나가 섰다. 등걸 밑동이 아주 크다. 그 아래에 앉아 말을 튼다. 사방팔방시방세계가 환히 열려서 돌아간다. 돌아가는 늘은 비어서 보이지 않았다. 없이 있는 가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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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님 : 길은 함없어도 늘 아니하는 게 없으니. 다석은 아래아를 곧잘 썼어. ‘함없’으로 소리를 내지만 글월에서 아래아는 다른 뜻이 있지. 아래아는 그 스스로 늘 돌아가는 길이기도 하잖아.

떠돌이 : 처음엔 그 아래아의 뜻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이쯤 오니 그 뜻이 뚜렷해. 아래아가 없이는 글의 뜻이 깊어지지가 않거든. 그러니 ‘함없’의 함에 쓴 아래아는 하늘(ㅎ)과 땅(ㅁ) 사이에 있는 꼴로 하늘땅을 늘로 숨 돌리는 뜻이라고 할 수 있어. 길은 그런 함이 없어도 늘 아니하는 게 없잖아. ‘아니하는’ 하의 ‘ㅎ’에 붙인 아래아도 그렇게 보아야 해. 하실이요, 하늘이지.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40)길은 함없

떠돌이 : 솟나 뚫린 솟난이 곧 임금들이 똑바로 그 ‘함없’을 지킬 것 같으면, 잘몬은 제대로 된다는 얘기야. 다석이 ‘직힐거’라고 쓴 것은 올바로 똑바로(직) 지키라는 뜻이지.

어린님 : 임금들이 올바로 똑바로 지킬 것 같으면 온씨알(百姓)이 아니라 잘몬이 제대로 된다는 걸 마음눈으로 살펴야 돼. 그이는 솟나 뚫린 씻어난이요, 올바로 다스리는이거든. ‘제대로’는 그래서 스스로 저절로 있는 그대로라는 뜻이야.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40)길은 함없

어린님 : 그런데 스스로 저절로 있는 그대로, 그러니까 제대로 되지 않고 ‘되다 짓거릴랑’이 벌어지면 이름 없는 등걸로 투덕투덕 누르겠다는 거야.

떠돌이 : 누르는 이가 나(吾)야. 하늘 줄로 이어 이은 사람이 곧 나요, 그 나는 늘 지금 여기에 선 사람이지. 그 사람이 말하는 거야. 이름 없는 등걸로 누르겠다고. “이름 없에 하늘땅이 비롯고, 이름 있에 잘몬의 어머니.”라고 했으니, 이름 없는 등걸은 맨 처음의 없꼭대기(無極)이야. 늘 하고잡 없는 빈탕이지.

어린님 : 그래그래. ‘되다 짓거릴랑’은 하고잡의 마음으로 범벅(欲作)이 된 걸 말하잖아. 이름 없는 등걸로 투덕투덕 눌러서 빈탕이 되면 또 하고자 하지 않아.

떠돌이 : 하고자 하는 마음이 비어서 고요하니, 세상은 스스로 저절로 있는 그대로 올발라져. 제대로 바르게 돌아가는 거야.

어린님 : 늘 하시는 하실의 길은 비어 빈 빈탕이요, 스스로 저절로 있는 그대로 돌아가는 늘이라는 걸 깨달아야 환히 열려. 오래오래 길 뚫려 솟나 솟구친 참나의 삶이지. 자 그럼, 37월을 새겨볼까?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40)길은 함없

■김종길은

다석철학 연구자다. 1995년 봄, 박영호 선생의 신문 연재 글에서 다석 류영모를 처음 만났는데, 그 날 그 자리에서 ‘몸맘얼’의 참 스승으로 모셨다. 다석을 만나기 전까지는 민중신학과 우리 옛 사상, 근대 민족 종교사상, 인도철학, 서구철학을 좇았다. 지금은 그것들이 모두 뜨거운 한 솥 잡곡밥이다. 함석헌, 김흥호, 박영호, 정양모, 김흡영, 박재순, 이정배, 심중식, 이기상, 김원호 님의 글과 말로 ‘정신줄’ 잡았고, 지금은 다석 스승이 쓰신 <다석일지>의 ‘늙은이’로 사상의 얼개를 그리는 중이다.

■닝겔은

그림책 작가다. 본명은 김종민이다. 대학에서 철학을,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 <큰 기와집의 오래된 소원>, <소 찾는 아이>, <섬집 아기>, <워낭소리>, <출동 119! 우리가 간다>, <사탕이 녹을 때까지> 등을 작업했다. 시의 문장처럼 사유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으로 독자들과 만나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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