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차 고장 반복 땐 교환·환불 ‘레몬법’...실효성 얼마나

2018.11.12 10:51 입력 2018.11.12 23:42 수정

내년 초부터 새 자동차가 계속 같은 고장을 일으키면 다른 차로 교환, 환불받을 수도 있는 일명 ‘한국판 레몬법’이 시행된다. 엔진이나 브레이크, 핸들링 같은 중요 부위는 3번째 하자가 반복되면 ‘삼진아웃’ 교환·환불 대상이 된다. 다른 부품은 4차례 발생했을 때 해당된다.

다만 지금보다는 나아지겠지만, 이는 절차상 전문가집단의 중재일 뿐 법률상 무조건 해야 하는 강제조항이 아니어서 효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시각도 적잖다.

12일 자동차업계와 국토교통부 말을 종합하면 이런 내용의 개정된 ‘자동차관리법’이 내년 1월부터 시행된다. 레몬법이란 상큼한 ‘오렌지(멀쩡한 차량)’인 줄 알고 샀더니 시큼한 ‘레몬(고장이 잦은 차량)’인 경우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미국의 법을 일컫는 말이다.

대전의 한 자동차 수리업체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전의 한 자동차 수리업체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 자동차관리법은 인도된 지 1년 이내이고 주행거리가 2만㎞를 넘지 않은 새 차의 고장이 반복될 경우 자동차제작사가 교환 또는 환불해주도록 했다.

부품별로 적용 방식이 다르다. 일단 원동기(엔진)와 동력전달장치(변속기), 조향(핸들링)장치, 제동장치(브레이크) 등 주요 부위에서 똑같은 하자가 발생해 2번 수리했는데도 문제가 또 발생한 경우 3번째부터 교환·환불 대상이 된다. 일명 삼진아웃에 해당한다.

또 이런 주요 부위가 아닌 구조와 장치라도 똑같은 하자가 4차례 발생하면 역시 교환이나 환불을 받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어떠한 부위라도 1차례만 수리했더라도 수리 기간이 30일을 넘었는데 고장이 나면 교환·환불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같은 하자가 반복되면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위탁 운영하는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가 중재에 나선다. 자동차 분야 전문가들(최대 50명)로 구성될 자동차안전심의위는 필요한 경우 자동차제조사에 자료 제출을 요구하거나 성능시험을 통해 하자 유무를 밝혀낼 수 있다.

새 자동차관리법이 시행되면 소비자 권익 보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제조사로서는 품질 개선, 관리에 더 엄격한 잣대를 만들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문제가 반복되더라도 새 자동차로 교환받거나 돈을 돌려받기란 극히 드물었다. 소비자들은 국내에 미국 같은 레몬법이 없어서 제조사들이 소극적으로 대응해왔다고 지적해왔다. 소비자들은 그동안 자동차제조사에 문제제기해 들어주지 않을 경우 개별 민사소송이나 한국소비자원의 조정 외에 길이 없었다. 2015년에는 메르세데스 벤츠 소비자가 반복된 결함에 불만을 품고 골프채로 2억원대 자가용차를 부수는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기까지 했다.

국토부 당국자는 “자동차는 부품이 2만∼3만개나 돼 일반 소비자는 차량의 하자 여부를 정확히 알기 힘들다”며 “자동차안전심의위는 차량 전문가들로 구성돼 소비자와 제조사 간 이 같은 정보 비대칭을 해소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새 차 고장 반복 땐 교환·환불 ‘레몬법’...실효성 얼마나

<결함차 환불·교환, 한국은 왜 안 되나>

이번 한국판 레몬법은 하자의 입증책임을 기본적으로 소비자가 아닌 제조사에 둔 점이 의미가 상당하다. 그동안은 하자 여부를 문제를 제기하는 소비자가 증명해야 해 한계가 많았다.

새 자동차관리법은 ‘6개월 입증 전환 책임’ 조항을 뒀다. 차량이 소유자에게 인도된 지 6개월 이내에 하자가 발견됐을 때 이는 당초부터 있었던 하자로 본다는 것이다. 즉 6개월 안에 결함이 생기면 소비자 잘못이 아니라 원래 차를 잘못 만들어서 그랬다는 뜻이다. 국토부 당국자는 “앞으로는 소비자가 하자가 있었음을 입증해야 하는 게 아니라, 자동차제조사가 하자가 없었음을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법 시행을 앞두고 자동차안전심의위의 구성 등 막판 실무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 레몬법이 시행되면 제조사들은 소비자가 자동차를 살 때 ‘하자 발생 시 신차로 교환 또는 환불해준다’는 내용이 담긴 서면계약서를 써야 한다.

다만 한국판 레몬법이 미국 등 다른 나라 만큼 위력을 발휘할지 회의적 시각도 있다. 혹시나 또 ‘레몬 같은 레몬법’에 그칠 지 모른다는 우려다.

자동차안전심의위가 조사를 거쳐 내린 중재 판정은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은 있다. 또 제조사가 교환·환불을 해주지 않을 경우 이를 강제집행할 수는 있지만 실효성은 아직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법률 형식상 원칙적으론 환불·교환 규정에 강제성이 약한 전문가집단의 중재이다. 소비자가 납득하지 못하거나 제조사가 반발하면 결국 지금처럼 민사소송으로 가서 법정 다툼을 해야 한다. 특히 국내는 미국 같은 집단소송제가 없는 구조적 한계도 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소비자 권익보다 기업 활동의 자유를 강조하는 정부가 들어설 경우 당국자들이 앞장서 제조사 측에 유리한 행태를 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경우 자동차안전심의위는 결국 모양새만 갖추게 되고 소비자는 개별 소송에 의지해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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