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M&A 지연 등 경영권 침해” vs 학계·법조계 “기우”

2024.06.12 15:01 입력 2024.06.12 15:45 수정

이사 충실의무 대상 주주 확대 상법개정안 놓고 공방

이복현 “합리적 경영 판단 때는 이사의 민형사 면책 제도화해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2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기업지배구조 세미나에서 축사하고 있다.|금융감독원 제공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2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기업지배구조 세미나에서 축사하고 있다.|금융감독원 제공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뿐 아니라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놓고 찬반 여론전이 본격화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상법 개정이 추진되는 상황에서 재계는 회사의 정상적 경영 활동이 위축되고 인수합병(M&A)이 지연될 수 있다며 반발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재계 우려를 의식한 듯 경영진을 보호하는 면책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학계와 법조계에선 재계 우려가 과도하다고 본다.

현행 상법상으론 물적 분할 후 상장과 같은 소액주주 이익을 침해하는 회사의 의사결정이 나와도 책임 추궁을 할 수 없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은 주주가 아닌 회사로만 상법에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충실의무 대상을 확대하는 법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

이 원장은 12일 열린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기업지배구조’ 정책세미나 축사에서 “쪼개기 상장과 같이 전체 주주가 아닌 회사나 특정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례가 여전히 빈번하게 발생한다”며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 및 주주의 이익 보호’로 확대하는 방안 등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이 원장은 그러면서도 “이사의 충실의무 범위 확대가 배임죄가 적용되는 형사적 이슈로 번짐으로써 경영 환경이 과도하게 위축될 수 있는 한국적 특수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합리적으로 경영판단을 한 경우 민·형사적으로 면책받을 수 있도록 ‘경영판단원칙’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재계를 중심으로 상법 개정이 경영권을 침해한다는 우려가 나오자 경영권 보호장치를 전제로 한 상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날 대한상공회의소는 상법 개정안이 상장사 경영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재계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내 상장기업 153개사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이사의 충실의무가 확대되면 M&A 계획을 재검토하거나(44.4%) 철회·취소(8.5%)하겠다는 응답이 절반 이상이었다. 제도 도입 시 주주대표소송과 배임죄 처벌 등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도 61.3%에 달했다.

그러나 학계와 법조계 일각에선 충실의무 대상이 넓어져 경영진에 대한 민형사 소송이 남발할 것이란 우려는 과도하다고 본다.

천준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변호사)은 이날 세미나에서 “(재계에선) 배임죄가 우려 된다고 말하는데, 충실의무를 정확히 이해하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며 “이사는 주주에 대해 충실의무를 질 수 있지만 위임 관계는 아니기 때문에 배임죄가 적용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합병과 분할 같은 자본거래가 지속되고 일반주주들이 지속적으로 손해를 보는 구조에서 누군가는 ‘주식을 팔고 다른 걸 사면 된다’고 하는데 그게 바로 코리아디스카운트”라고 했다.

김우진 서울대 교수도 “일반적인 경영 상황에선 선관주의(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를 충족하면 투자 실패에 대한 책임을 면책할 수 있어 일각의 (남소)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상법 개정을 통해, 지배주주와 일반주주간 이해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미국과 유사한 수준의 완전한 공정성을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

나현승 고려대 교수도 “지배주주가 적은 지분을 보유하고도 계열사 지분을 활용해 모든 계열사에 절대적 지배권을 행사하며 사익을 추구하고 소수주주의 이익을 침해한다”면서 상법 개정과 더불어 감사위원 전원의 분리선임, 이사 선임 시 집중투표제 확대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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